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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어] 레모네이드 마법관 이야기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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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모네이드 마법관 이야기 - 파란색 문지방

    치료, 소환, 보조, 각 속성 등 다양한 분야 주문 자격증을 무려 마흔 네 개나 지니고 있는 뛰어난 마법사이자 레모네이드 마법관(마법관의 이름은 전통적으로 음료수에서 따온다) 관장인 시스 벨테온은 어느 날 문득 중얼거렸다.

    “문지방이 너무 더럽군.”

    그는 혼잣말처럼 말하곤 문지방을 넘어 세마이드 백작부인이 보낸 마차에 올라탔다. 그냥 그렇게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필 그때 아직 자격증을 딴 주문이 채 열이 못 되지만 시골 소도시에 오려하는 마법사가 없어 부관장의 자리를 덜컥 차지해버린 내가 문 바로 옆의 창문을 닦고 있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수습 마법사 일렌 루치아는 상관 시스의 중얼거림을 똑똑히 들었다. 그 수습 마법사인 나는 어제 로돈 씨의 꽃양배추에 색을 예쁘게 입히는 마법을 쓰다가 되레 탈색시키는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하얗다 못해 반투명해져버린 꽃양배추의 뒤처리는 시스 관장이 해야 했고 때문에 나는 죄책감을 느껴 아침부터 창문을 닦는 둥의 집안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한결 깨끗해진 창문에서 걸레를 떼며 문지방을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하는 마법관에는 매일같이 다양한 종족이 드나들곤 했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였기에 대도시만큼 고객이 많진 않았지만 온갖 신발과 발들에게 짓밟힌 문지방은 많이 닳아 칠이 거의 벗겨져 있었다. 확실히 너무 더러웠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걸레를 창틀에 내려놓고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러나 수습 마법사용 춤추는 채찍나무 마술 지팡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지팡이를 어디에다 뒀더라? 팔짱을 낀 채 머릿속을 뒤져 어제로 거슬러 올라가자 실패 한 마법 때문에 쪽팔리고 분해하며 지팡이를 내던진 것이 떠올랐다. 시스 관장이 알면 경을 칠 노릇이었다. 나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급히 이층 자신의 방으로 뛰어올라갔다. 다행히 관장은 내 허리춤에 지팡이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알았더라면 백작부인의 부름에 늦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마법사의 자세에 대한 길고 긴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테니까.

    방안을 한참 뒤진 끝에서야 옷장 위에서 간신히 지팡이를 찾아냈다. 이게 어떻게 그 위에까지 올라간 거지? 지팡이를 허리춤에 꽂은 나는 다시 일층으로 내려와 문지방 앞에 섰다. 문지방은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고 죽은 나무는 개나 고양이와 달리 여전히 식물로 분류되었다. 즉 어제 실패 한 식물에게 색을 입히는 마법이 통한다는 뜻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나는 지팡이를 검처럼 앞으로 쑥 내밀었다. 시스 관장이 보았다면 틀림없이 잔소리 할 웃기지도 않는 자세였지만 버릇이 든 품새는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나는 문지방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지팡이 끝을 빙글빙글 돌렸다. 내가 주문 읊는 소리는 초보자 티가 확확 나는, 갓 말을 배우는 어린애와 비슷한 웅얼거림이었다. 시스 관장처럼 뛰어난 마법사들은 주문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거나 노래처럼 부드러웠다.

    자아, 주문까지는 무사히 끝이 났다. 이제 지팡이를 크게 휘두르며 원하는 색상을……

    “아차!”

    또 무슨 색을 입힐 것인지 생각해두지 않았어! 어제도 똑같은 실수를 하는 바람에 무색, 즉 색이 탈색되어 버린 것이었는데! 나는 주문이 끝나자마자 펄떡거리며 빠져나가려는 마력을 억지로 붙잡아 두고는 급히 머리를 굴렸다. 아무 색이나, 일단 아무 색이나! 입힌 색을 바꾸는 건 쉬워도 사라진 색을 불러오기는 어려웠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하늘에 나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파, 파란색!”

    거무칙칙하던 문지방이 순식간에 산뜻한 파랑색으로 변했다. 성공이다. 기쁨으로 무심코 활짝 웃으며 문지방을 발로 툭툭 건드려보았다. 냄새가 지독하며 마르는데 시간이 걸리는 페인트와 달리 식물에 색을 입히는 마법은 식물이 지닌 색 자체를 바꾸는 것인지라 색 이외의 변화는 없었다. 완벽해! 나는 성공을 자축하며 예쁜 파란 문지방 위에 우뚝 올라섰다. 손가락을 살짝 베인 것만으로도 마법사를 찾아오는 극성맞은 다렌 씨가 오지 않았더라면 계속 기뻐했을 것이다.

    언덕 위 커다란 목장의 주인인 다렌 씨는 암소와 씨름하다가 다친 손목을 부여잡고 마법관 울타리에 들어서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깜짝 놀랐다. 그는 기쁨에 들뜬 젊은 수습 마법사를 향해 커다랗게 외쳤다.

    “당장 문지방에서 내려오게!”

    나는 반갑게 인사를 하려다말고 갑작스런 외침에 놀라서 파드득 문지방에서 내려섰다. 그 기세가 조금 지나쳐 비틀, 낮은 현관 계단 아래까지 내려오고 말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영문몰라하는 내게 다가온 다렌 씨가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파란색 문지방을 밟으면 삼일 간 재수가 없다는 걸 모르나?”

    “재수가… 없어요?”

    “그래! 특히 마지막 날은 지옥이 따로 없지. 당장 색부터 바꾸게.”

    그런 건 미신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마법관 단골 고객인 다렌 씨의 심기를 어지럽혀서 좋을 건 없었다. 게다가 시골에는 미신을 믿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다. 찾아오는 손님들이 문을 넘나들기를 거부하는 건 곤란했기에 나는 문지방으로 괜찮은 색을 질문한 뒤 다시금 마법을 사용해 이번에는 보라색으로 바꾸었다. 다렌 씨의 말에 따르면 보라색 문지방은 재물을 불러들인다고 했다.

    내가 문의 색을 바꾸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다렌 씨가 마법관을 찾아 온 용건을 꺼내들려다가 주춤거렸다. 그리곤 다른 질문을 꺼내들었다.

    “벨테온 선생은 외출했나?”

    “네. 세마이드 백작부인의 그리폰이 또 날개를 다쳤나 봐요.”

    남편을 잃고 시골 별장으로 이사 온 세마이드 백작부인은 개보다 약간 큰 미니 그리폰을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귀족치고는 무척이나 사람 좋은 노부인이었지만 애완동물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 곧잘 그리폰을 과도비만상태로 만들곤 했다. 그러면 그리폰의 덩치에 비해 작은 날개는 무게를 못 이기고 추락하거나 뒤로 꺾어졌다.

    내 말에 다렌 씨는 못미더운 표정으로 젊다 못해 어린 수습 마법사를 쳐다보았다.

    “손목을 다쳤는데 말이야….”

    “제가 봐드릴까요?”

    마법은 사용할 때마다 주문세를 내야한다. 때문에 연습을 통해 능숙하게 마법을 사용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의뢰의 경우는 의뢰자가 대신 내기에 공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다렌 씨는 연습기회를 얻은 나의 반짝거리는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아니, 뭐, 심한 것도 아니라서. 약간 삐었을 뿐이라네.”

    “걱정 마세요! 치료주문 중 외상에 관한 분야는 자격증을 땄습니다.”

    외상 분야는 치료주문 가운데 가장 쉬운 분야였다. 여전히 머뭇거리긴 했지만 자격증을 땄다는 말에 다렌 씨가 그럼… 하고 다친 손목을 내밀었다.

    “부탁하지.”

    “예!”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손목이나 발목을 삔 것을 치료하는 주문은 치료 분야에서 아주 기초적인 주문이다. 때문에 나는 분명히 성공하리라 확신했고, 아마도 확신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붉은 박쥐족인 헹글프 씨가 머리위로 떨어지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바보, 멍청이, 천하의 둔재 같으니라고…….”

    나는 대낮부터 침대에 둥글게 엎드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중얼거렸다. 박쥐족답지 않게 훤한 해 아래서 비행하던 헹글프 씨는 내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고, 때문에 나는 막 펼치려던 마법을 실패하고 말았다. 흐트러진 마력은 다렌 씨의 손목을 평소보다 3센티 쯤 길게 늘려버렸고 마법에 의한 부상 치료주문 분야는 아직 초보였던 나로선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늘어난 다렌 씨의 손목과 헹글프 씨의 불면증은 연락을 듣고 급히 돌아 온 시스 관장이 치료하는 중이었다. 지금쯤이면 치료가 다 끝났겠지. 나는 베개에 머리를 내리누르듯 깊숙이 파묻었다.

    “……또 사고만 치고.”

    언제까지 시스 관장에게 폐만 끼칠 것인지! 나는 그리 길지도 않는 머리칼을 마구 쥐어뜯었다.

    시스 벨테온 관장은 이런 시골 도시에 머무른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였다. 그는 스물 중반으로 나보다 고작 너덧 살쯤 더 많았지만 석 달 전에 지방 마법 대학을 겨우 졸업한 수습 마법사와는 비교가 무색했다. 수재들만이 입학 가능하다는 수도의 황금 독수리 마법 대학원을 갓 성인이 된 열여덟 살 때 입학, 정규 교육기간의 절반 만에 졸업하는 기록을 남긴 것으로도 모자라 주문 자격증도 모두 마흔 네 개! 마지막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 대학원 졸업 직후로 실 능력은 원로 마법사급인 백 개 분야의 주문을 다룰 정도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 천재 마법사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땐 정말이지 기절할 정도로 놀랐었다. 실력이 모자란 데다 가난으로 대학원 진학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시골 소도시의 마법관에 겨우 자리를 얻어 오게 되었고 당연히 비슷한 처지의 삼류 마법사가 관장자리에 앉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법사 일간지에서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시스 벨테온이라니. 놀람 뒤에는 기쁨이 찾아왔고 그 후에는 부담감이 양 어깨를 내리눌렀다. 그 시스와 함께 일하면서 수습 딱지도 못 뗀 형편없는 실력이라니…… 자괴감에 고개를 못 들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소도시 사람들의 대부분은 시스 관장이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인지 까맣게 몰랐다. 덕분에 나는 아무도 몰라주는 무거운 부담감에서 느릿느릿 벗어날 수 있었다…… 라는 게 지금의 현실인데.

    그런 상황에서 연이은 실수라니! 물러나가 싶었던 부담감과 자괴감이 배로 늘어나 뒤통수를 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쪽팔려서라도 여기 더 못 있겠다. 더욱 구석진 시골 촌동네로 야반도주를 해 버릴까. 갈 때 가더라도 편지 한 장은 써 놓고 도망쳐야겠지. 시스 관장이 이제껏 뒤처리 하느라 고생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신세를 너무 많이 졌잖아.

    복잡한 상념의 구렁텅이에 빠진 나는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도, 나직한 노크소리도 듣지 못했다. 때문에 갑자기 이불이 확 들춰졌을 때, 심장이 입으로 튀어 올라 나올 만큼 놀라고 말았다. 시스 관장의 부루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치아 군. 대낮부터 뭐 하는 건가.”

    “과, 관장님!”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관장의 무뚝뚝한 얼굴에 이불을 빼앗아야 할까, 아니면 사과를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얌전히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합니다, 이틀 연속으로 어이없는 실수를 해버리다니…….”

    “어제는 자네 실수가 맞지만 오늘 일은 헹글프 씨가 머리 위로 떨어진 탓이라 들었네만. 다렌 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고 나도 동의한다네. 기절한 채로 마법에 성공했다면 관장자리는 자네가 맡아야겠지.”

    “하, 하지만, 관장님이셨다면…….”

    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도로 뒤집어쓰기 위해 시스 관장의 손에서 이불을 빼앗았다. 더블 스펠 자격증도 가지고 있는 그라면 헹글프 씨의 비명이 들려온 순간 방어막을 치거나 방향감각을 잃은 박쥐족의 낙하를 멈추게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처럼 어쩌지도 못하고 당황하다가 꼴사납게 머리를 맞고 기절하진 않았겠지.

    다시금 겨울잠 자는 새끼 곰의 모습으로 돌아간 나를, 정확히는 불룩 솟은 이불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이불 속에서 무어라 꿍얼거리며 움찔대던 내 위로 관장의 나직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루치아 군이 귀여운 건 잘 알고 있으니까 재롱 그쯤 떨고 일어나게나.”

    “……농담 할 기분 아닙니다.”

    “농담한 거 아니네만.”

    “그건 더 최악이에요!”

    “알았으니 오늘 하루 업무를 나 혼자 하게 내버려둘 생각이 아니라면 얼른 일어 나. 나무꾼들과 유니콘들이 벌목장 범위를 놓고 또 다투고 있다더군.”

    불평 많고 신경질적인 유니콘들이 자신들의 숲을 헤치는 나무꾼들에게 시비를 거는 일은 이곳에선 월례행사에 가까웠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조용히 처리가능한 일이 아니었기에 관장을 혼자 보내기엔 양심이 따끔거렸다. 때문에 나는 불만스레 낑낑거리며 이불을 그대로 덮어쓴 채 눈만 배꼼 내밀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비척비척 방을 나서는 이불뭉치의 모습에 시스 관장의 눈썹이 비스듬히 치켜 올라갔다.

    “유니콘은 자네 재롱을 보고 웃어 줄 만큼의 유머감각을 지니지 못한 종족이네만.”

    “재롱 아니라니까요!”

    대체 어딜 봐서? 나는 바락 소리치며 계단에 발을 디뎠다. 시선을 뒤로 향한 채 내딛은 발은 한단 아래 계단과 함께 이불을 당겨 밟았고, 덕에 앞으로 크게 기울어진 이불뭉치의 미래는 보나마나였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적당한 비명과 함께 발이 아닌 온몸으로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루치아 군!”

    시스 관장은 소리치며 계단 맨 아래에서 신음을 내뱉는 구겨진 이불뭉치, 즉 내게로 급히 다가왔다. 정신을 못 차리고 널브러진 채 꿈틀대는 내게 그가 물었다.

    “자네 살아있나?”

    “……죽었다고 생각해 주세요.”

    쪽팔려 죽겠다.

    “살아있군. 깜짝 놀랐다네. 구르는 것보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앞으로는 웬만하면 보편적인 방법으로 계단을 내려오게나.”

    “…명심하지요.”

    쑤시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이불을 벗어던졌다. 시스 관장은 대낮부터 침대에 기어들어간 벌이라며 타박상을 보이지 않는 곳만 치료해주었고 멍 지우는 주문을 아직 배우지 못했던 나는 눈두덩을 시퍼렇게 물들인 채로 마차에 올라야했다. 내 잘못이긴 한데, 치사하잖아. 벌목장으로 향하는 마차 속에서 나는 별 생각 없이 오늘 참 재수가 없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대낮의 박쥐족에게 머리를 맞고 이불을 뒤집어 쓴 채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은 앞으로 벌어질 불운들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린그레이의 벌목장에서는 이미 유니콘과 나무꾼의 대치상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얗고 까만 유니콘들은 날카로운 뿔끝을 번뜩거리며 불만스레 자기들끼리 푸르릉거렸으며 나무꾼들은 우락부락한 팔뚝에 힘줄을 세우며 묵직한 쇠도끼를 위협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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