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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취향 A76072A1-6925-4CA3-9C1F-9C421488DA2D 2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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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1945년 12월 5일 5AM

    포트로더에일 기지, 버뮤다 지역.

    “제기랄, 전쟁도 끝났는데 이 시간에 훈련이라니…….”

    누군가 투덜대는 소리에 다른 장교들 모두 긍정의 의미로 입을 다문 채 전투기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길고 처참했던 2차 대전이 얼마 전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훈련의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새벽부터 소집명령이 내려질 줄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전날, 모처럼 휴가를 받아 부대 근처 유흥가에서 여자들을 끼고 밤새 뒹굴었던 데미안 브라운 역시 아직까지 숙취가 가시지 않는 상태인지라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멍한 기분에 모자를 고쳐 쓰며 고개를 휘휘 젓자, 곁에 있던 동료 장교 제임스가 데미안의 팔을 쿡 하고 찔렀다.

    “어제 진탕 퍼마셨나 보지?”

    짓궂은 표정으로 물어오는 제임스의 말에, 피곤이 가득한 와중에도 데미안은 한쪽 입 꼬리를 슬며시 들어올렸다.

    “다음번에 한번 같이 가자고……. 벨라라고 새로 온 이탈리아 종업원 있는데 몸매가 아주 죽여주지. 밤새도록 내내…….”

    말을 하다 말고 그가 음흉한 표정으로 알아듣겠냐는 듯 눈을 휘며 은밀한 시선을 던졌다. 제임스는 그런 데미안을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때때로 제임스는 이 탕아, 데미안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신입 장교들 가운데서도 데미안은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프랑스어를 비롯해 몇 개 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정도로 언어에 능숙하고, 군대에서 적응하는 속도도 빨랐으며, 무엇보다도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문가 브라운 가문 출신이었다.

    과연 미국 최고의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집 자제라 그런지 평상복을 입은 그를 단 두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세련되고 우아한 패션 감각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놀라웠다. 똑똑하고 잘생긴데다 언변까지 뛰어난지라 부대 내에서 동료는 물론, 상관 중에서도 그를 싫어하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물론 처음엔 돈 많은 집 자식이 대전이 한창인 시기에 어째서 해군에 지원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시기와 질투도 끊임없이 이어졌었다. 그러나 수완 좋은 데미안은 그 현란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매혹시키기 시작했고, 점점 모두가 그의 편이 되어 급기야 그의 단 하나의 단점인 난잡한 사생활마저도 옹호해주는 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재주가 부럽고도 놀라운 제임스였다.

    “늦을 것 같다더니 그래도 시간 맞춰 들어왔군.”

    제임스가 아침에 들은 이야기를 꺼내자 데미안이 꼼꼼하게 옷깃을 정리하다 눈썹을 휘었다.

    “아, 들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데미안은 어깨를 으쓱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글쎄, 술집을 나와 길을 건너려는데 어떤 미친놈이 곁으로 다가오더라고. 옆길에 보안관도 있었는데 말이야. 느낌이 이상해서 놈이 가까이 오자마자 무의식적으로 후려갈겼지.”

    “천하의 데미안에게 강도짓을 하려고 했단 말이야?”

    “뭐, 그런 얘기지. 붙잡을 틈 없이 도망가서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정신 나간 놈이군.”

    “그러게나 말이야. 그것보다도 놈이 입은 옷과 모자가 어찌나 병신 같던지 마음 같아선 하나 새로 사주고 싶을 정도였다고.”

    어이없어하는 제임스의 말에 데미안도 맞장구치듯 킬킬대자 그 웃음소리를 들은 편대장 찰스 테일러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그러나 소리의 장본인이 데미안이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는 짤막한 한숨을 내쉬며 못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알아듣겠나, 제군들? 이건 실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자네들의 안일한 실수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단 말이다! 훈련이라고 해도 이 사실을 간과할 시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예!!”

    해군 제 19중대 편대장 테일러의 말에 모두가 우렁찬 목소리로 응답한 뒤 재빨리 조종석에 올라탔다. 곧 데미안이 모는 어벤져를 포함해 5대의 비행기가 창공 위로 떠올랐다. 훈련 목표는 비미니 섬 전방의 폐선이었다.

    각각의 어벤져(어뢰기, 주로 군함을 공격하는 어뢰를 장착한 해안 전투기)가 폐선을 향해 다가갔다. 거대한 폐선을 폭파하기 위해 다량의 어뢰가 출하되었고, 다섯 대의 뇌격기 안에서 조종사들도 장착된 총을 발사했다. 1시간가량 펑펑 울려 퍼지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마침내 커다란 폐선이 반쯤 바다 속으로 가라앉자 시뮬레이션은 끝이 났고 한동안 장교들은 근처 섬에서 짧은 휴식을 가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지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들려왔다.

    뇌격기를 돌려 기지로 돌아가던 그때였다.

    훈련이 성공했다는 만족감보다는 숙취로 인해 어서 빨리 잠이나 잤으면 하는 생각에 열중해 있던 데미안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짙고 거대한 먹구름이 순식간에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곧 휘몰아치는 폭우가 기체의 유리를 사정없이 때려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된 데미안은 뒷좌석에 앉아있는 중위를 향해 소리쳤다.

    “중위님! 태풍이 몰려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젠장!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재빨리 나침반을 확인하던 데미안의 눈이 점점 더 커져갔다. 마치 고장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바늘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침반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 순간 번개가 번쩍였다. 그와 함께 데미안의 머리가 터질 듯 아파왔다. 끔찍한 소음들이 머릿속을 휘젓는 느낌이었다. 기절할 것 같은 상황에 머리를 휘저으며 전방을 주시하려 노력했지만 앞에서 몰아닥치는 무시무시한 먹구름에 압도당한 나머지 소름이 돋고 온 몸이 굳어버렸다.

    문득 시선을 내려 아래쪽으로 향한 데미안은 기겁하고 말았다. 검푸른 바다가 있어야 할 공간에 커다란 대륙이 있는 것이었다!

    손끝이 덜덜 떨려올 정도로 거대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조종이 불가능한 비행기는 금방이라도 추락할 것만 같았다.

    “항로를 이탈한 것 같습니다. 기지에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데미안의 말에 테일러가 무전기로 기지에 접속을 시도했다.

    “Mayday, mayday. 여기는 Eagle no.1. 응답하라. 응답하라.”

    그러나 교신이 끊어졌는지 지지직거리는 소리만이 무전기를 타고 울렸다.

    “나침반이 고장난데다 항로를 이탈한 것 같다.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엄청난 크기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응답하라!!”

    포기하지 않고 테일러가 무전기를 손에 쥔 채 소리쳤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조종간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고 그들은 순식간에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맙소사!!!”

    맨 뒤에 앉은 제임스가 비명을 내질렀다. 제 아무리 훈련받은 장교들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그들도 배운 적이 없었다.

    데미안은 말을 듣지 않는 조종간을 움켜쥔 채 눈을 질끈 감았다. 비상탈출을 해야 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탈출 후 낙하산을 펼쳐 봤자 꼼짝없이 죽을 거란 걸 알기에 그 누구도 섣불리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밖의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이가 딱딱 부딪치기 시작하며 이것이 마지막 비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 유리창이 박살나는 소리와 동시에 뇌격기가 반으로 부서지는 것이 고스란히 귀로 파고들었다.

    무전기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끊임없는 비명 속에 뒤쪽을 돌아보자 산산이 깨져버린 유리창 너머 바로 뒤에 앉아 있던 테일러가 괴성을 지르며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오, 하느님!!”

    자신도 모르게 믿지도 않는 신의 이름을 외치는 순간, 쿵 하고 뭔가가 날아와 데미안의 머리를 가격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는 의식을 잃었다.

    ~Tastes of the Aristocracy~

    귀족의 취향

    2013.10.20

    By Queen(Ruins)

    Chapter 1

    1734년 12월 8일

    London, England

    “한 푼 줍쇼.”

    커다란 마차가 뒷골목 딱딱한 돌바닥에 멈춰 서자 말쑥한 옷차림의 사내가 마차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최신 유행 옷차림은 뒷골목 창녀들의 눈을 뒤집어 놓기 충분했다. 부유해 보이는데다 눈부실 정도로 잘생긴 외모에, 가슴을 드러낸 채 술주정뱅이들을 유혹하던 창녀들마저 홀린 것처럼 하나둘씩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길가에 널브러져 있던 비렁뱅이가 손을 내밀어 자비를 애원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내는 가슴 쪽에서 은화 한 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동전의 색깔을 확인한 남자는 구원이라도 얻은 듯 더러운 손으로 사내의 신발을 움켜쥔 채 거침없이 입맞춤을 해갔다. 사내는 잘생긴 미간을 찌푸리며 그에게 붙잡힌 신발을 슬그머니 뿌리쳤다. 동전 따위야 쉽게 줄 수 있지만 더러운 손이 자신의 수제화에 닿는 건 질색인 기색이었다.

    “아름답고 고귀한 신사분, 오늘 저와 하룻밤을 보내신다면 제 모든 걸 드릴 수 있어요.”

    젖가슴을 출렁대며 음탕한 눈길을 건네는 창녀들이 유혹적으로 속삭이자, 사내는 그녀들을 향해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미안, 약속이 있어서 말이야. 하지만 이런 미인들이라니……. 다음번을 기약하지.”

    그 말과 함께 그는 은화를 하나씩 꺼내 각각 풍만하게 드러난 가슴골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기쁨과 욕망으로 얼룩진 미소가 그녀들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그들에게 윙크를 한 사내는 마차에서 따라 내린 시종을 데리곤 어두운 뒷골목으로 더 깊숙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술집 안으로 들어서자, 시끌벅적한 중앙에 앉아 술을 마시며 있지도 않은 자신의 모험담을 떠벌리던 남자가 단숨에 사내를 알아보곤 허겁지겁 입구 쪽으로 달려왔다.

    “나으리, 오셨습니까요.”

    “모자가 멋지군.”

    사내의 칭찬에 남자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푸른빛 챙이 좁은 모자를 벗어 슬며시 만지작거렸다.

    “아, 눈치 채셨습니까? 얼마 전 큰맘 먹고 나으리의 가게에 들렀습죠. 어찌나 비싸던지 많이 망설였지만 그래도 이놈을 포기할 수가 없더라굽쇼.”

    “말만 하면 선물로 줬을 텐데.”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미 나으리께 받을 만큼 충분히 받고 있는걸요. 아무리 멋진 모자를 쓴다고 해도 전 나으리같은 멋쟁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될 수 없나 봅니다요.”

    굽실대며 띄워주는 남자의 말에 사내는 딱히 부정도 하지 않은 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들어가시겠습니까요?”

    그 말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재빨리 술집 여주인에게 눈짓을 건넸다. 2층에선 그의 방문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작부들이 저마다 들고 있던 천박한 부채를 팔락이는 것과 동시에 모조 속눈썹을 연신 휘날리며 유혹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사내가 방문할 때마다 얼마나 즐거운 일이 가득한지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흥분의 속삭임은 멈추질 않았다.

    화려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천박한 장식으로 꾸며진 방 안에 들어서자 남자, 톰 워커는 의자를 끌어당겨 사내의 앞에 다소곳이 내려놓았다. 작은 호롱불 아래에서 남자가 가져다놓은 의자에 무심히 자리를 잡은 사내는 품속에서 엽궐련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나리께서 부탁하신 일은 착착 진행 중에 있습니다. 다만 와그너 쪽에서 나으리를 벼르고 있다는 얘기도 종종 들려오고 있으니 한동안은 몸조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자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네만…….”

    돌연 차가워진 목소리에 톰은 황급히 말을 바꿨다.

    “아이고, 물론입죠. 다 방법이 있으실 텐데 저같이 미천한 놈이 괜한 참견을 했습니다요. 단지 염려가 되어 드린 말씀이니 괘념치 말아주십시오.”

    그러거나 말거나 원하던 답변을 얻은 사내는 후우 하고 짙은 연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벌써 가시게요? 계집년들이 다 나으리 오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는데 잠시나마 들러주심이…….”

    “거사가 눈앞이야, 워커. 코앞에 닥쳐왔다고.”

    사내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뒤에 서 있던 시종에게 눈짓을 했다. 시종은 재빨리 들고 온 작은 주머니를 사내에게 건넸다. 사내가 그것을 장난처럼 몇 번 던지고 받기를 반복하다 휙하고 톰에게 패스하자, 톰은 허둥지둥 짤랑대는 주머니를 받아 쥐었다.

    “계속해서 수고하시게나. 뭔가 사정이 바뀌면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 지는 잘 알 테고…….”

    “물론입죠, 나으리.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세련된 신사가 멋들어진 모자를 한 번 고쳐 쓴 뒤 딱딱한 지팡이를 경쾌하게 짚어가며 방을 나선 뒤에야 톰은 재빨리 그에게서 받은 주머니를 풀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빛나는 금화가 주머니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침이라도 흘릴 법한 얼굴로 한참동안 주머니 안을 바라보던 톰은 방 안에 그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한 번 은밀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내가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환락가에서 태어나고 자라 무뎌질 대로 무뎌진 톰의 거시기도 사정없이 벌떡댔다. 그것은 색욕이 아닌 탐욕에서 비롯되는 흥분이었다.

    사내는 금화의 제왕이었다.

    그 누구도 사내가 어디서 왔고, 어떤 것이 진짜 신분인지 알지 못했다. 항간에 들리는 이야기론 사내가 서유럽 어딘가의 몰락한 귀족의 자제라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가 남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를 미심쩍게 생각하던 뒷골목의 탁류들도 천한 자신들 무리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때에 따라 대가도 후하게 치르는 사내의 모습에 이제는 그를 숭배하기까지 하고 있었다.

    가끔 사내가 검은 마차를 타고 이 뒷골목에 나타나는 날이면 모두들 그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고자 버둥질했다. 그 사내는 영국 귀족의 작위는 갖고 있지 않았지만 손을 대는 무엇이든 황금으로 바꿔놓는 재주가 있었고, 그와 연줄이 닿는 이들에게 언젠가는 이 추악함만 가득한 뒷골목을 벗어날 수 있으리란 희망까지 품게 해주었다.

    톰도 그런 무뢰배들 중 하나였다. 할 줄 아는 것은 사창가의 갈보년들을 미끼로 푼돈 따위나 받는 포주 짓이 다였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다 죽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를 만난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것은 3년 전, 축축한 습기가 피부를 짓누르던 런던의 어느 4월이었다. 톰은 그 날 일을 어제 일처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음울한 바람을 뚫고 한 사내가 검은 마차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귀족처럼 느껴지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보통의 신사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차림, 행동거지, 말투 모든 것이 일반적인 영국신사의 것이 아니었다. 일반 귀족들이 즐겨 입는 뻣뻣한 검은 코트차림이었지만 그 안의 재킷과 실크 셔츠는 어딘가 모르게 특이하고도 화려했다. 그는 귀족들과 부유한 상인들이 즐겨 쓰는 가발조차 쓰지 않은 상태였다.

    사내는 육중한 목재 문을 덜컹 열고 들어와 당당한 몸짓으로 지팡이를 바닥에 탕탕 두 번을 부딪쳐 달큰한 아편에 취해 창부들의 젖가슴을 희롱하던 무뢰배들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끌었다.

    “톰이 누구지?”

    당당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묻는 그의 질문에 모두가 하나같이 톰을 응시했다. 때마침 우연히 어두운 창밖에 시선이 가 그가 오는 모습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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