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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니스트] toxin-완결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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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배달국(倍達國)은 인류 태고의 문화가 깃들어 있는 방대한 대제국이었다. 배달국을 건국한 한인의 명맥을 이어받은 후손들은 주변 제후국을 모조리 평정하며 수 천년동안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광활한 영토에는 시공을 초월해 인간과 미물들이 함께 조화를 이뤄 살고 있었다. 그곳에 자리한 비옥한 땅에는 이매(?魅)들이 살고 있었다. 이매는 수피아나 아리아들과는 약간 다르게 붉은 눈과 머리 양쪽에 흰색 뿔을 가진 특이한 외향이었다. 그러나 그 특이한 외모와 더불어 몸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로 인간을 홀린다고 해서 우리를 적안의 요괴, 백각의 귀신이라 부르기도 했다. 인간들은 날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이매의 독특한 식성을 경멸했고 종족에 대한 자긍심이 강했던 이매 족 역시 그런 인간들에게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내 어머니는 이매이고 내 아버지는 인간이었다.

    아버지는 배달국 사람으로 궁에 직속된 유명한 화원(畵院)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평생 동안 사람만 그리던 것에 신물이 나 충동적으로 자연으로 떠났고 하나루 산의 절경을 화폭에 담던 중 그곳에서 우연히 어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두 분은 한눈에 서로의 영원한 반려임을 알아봤지만 종족을 뛰어 넘은 미래가 순탄했을 리가 없었다. 요괴를 아내로 맞았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집안에서는 이곳에 찾아와 불을 질렀다. 그때 큰 봉변을 당할 뻔했던 이매들은 어머니를 완전히 추방 시켰고 아버지는 집안과 연을 완전히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서로를 선택했고 그 결실로 나를 낳았다.

    그러나 세상엔 한 가지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 하나가 있었다. 이매의 몸에는 그들만이 가진 특유의 독소가 있어 만약 다른 종족과 몸을 섞으면 그것에 점차 중독 돼 결국엔 생명을 다하고 만다. 어머니는 망설였고, 아버지는 믿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나를 잉태하고 얼마 후, 아버지는 끝내 돌아가시고 말았다. 이매 독의 무서움을 아버지가 똑똑히 증명 해 주었던 것이었다.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낙인을 가슴에 지닌 채 혼자의 몸으로 모진 세월을 감당하기 버거웠던 어머니는 결국 자신의 종족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반반의 피가 섞인 나에게 평생 동안 이름을 가지지 못하게 할 것을 다짐 받고 나서야 어머니를 받아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겐 아직 이름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있어선 안 되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던 나는, 이름도 갖지 못한 채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며 열아홉 해를 맞았다.

    “윽… 하윽…….”

    “헉 헉… 미치겠다…! 헉… 미치…겠어… 헉… 크윽…!”

    더러운 움막 한 귀퉁이에서 난 엉망으로 휘둘리고 있었다. 밀려드는 고통으로 내벽을 꽉 조이자 오루문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허리 짓도 빨라졌다. 완전한 성체인 그의 기력은 도무지 식을 줄을 몰랐다. 뒤를 꿰뚫어 오는 거근이 끝까지 빠져 나갔다가 고환이 엉덩이에 닿을 만큼 깊이 박혀 들자 벽에 구겨진 내 머리가 반으로 접힐 것 같았다. 저절로 입속에서 신음소리가 튀어 나올 뻔했지만 꾸역꾸역 삼켜 버렸다. 잠시 후 내장이 모두 짓이겨지는 끔찍한 고통이 파고들면서 엄청난 양의 토정액도 쏟아져 들었다. 건장한 상체가 반쯤 노출된 내 등 위로 무너지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나도 담벼락 아래로 쭉 미끄러져 내렸다.

    “하아, 하아…. 네 뒷구멍 말이야. 혹시 무슨 꿀이라도 발린 게냐? 한번만 맛보면 끊을 수가 없다고. 끈적거리고 달아 죽겠는 걸? 예쁜이?”

    오루문이 이를 드러내며 내 귓가에서 사포로 갈 듯 껄껄한 목소리를 흘리며 코를 킁킁거렸다.

    “그거 알아? 이매에겐 독특한 냄새가 난다지만 넌 좀 다른 냄새가 나. 그게 나를 더 환장하게 만들지…….”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도 몇 시간째 내 뒤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아 아랫배며 안쪽은 그가 토해낸 정액으로 질척였고 엉망으로 욱씬거렸다. 내 목덜미로 오루문의 눅눅한 숨을 퍼트리며 약간 쏟아 오른 젖꼭지에 두꺼운 손가락을 노골적으로 비벼댔다.

    “어때? 내가 몰래 이름을 지어 줄까? 갈 때 네 이름 부르면 더 죽일 거 같으니까. 물론 내가 지어줬다는 건 비밀로 하고 말이야.”

    “… 됐습니다.”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 세우자 놈의 것이 쑥 빠져 나갔다. 그 감촉에 진저리가 쳐졌다.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오루문의 붉은 눈동자에도 일원임을 알리는 그의 이름이 어렴풋이 비췄다.

    이매가 태어나면 이름을 짓는 명명식(名銘式)을 하게 되어 있는데 생명에게 이름이 지어지는 순간 그 이름이 눈동자 안에 그대로 새겨진다. ‘새겨진다.’고 해서 뭔가 예리한 것으로 파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갓 태어 나 아직 세상에 눈뜨지 못한 영혼에게 의미를 부여하면 그 영기가 글자로 형상화 돼 눈동자에 새겨지는 것이었다. 여느 생명들과 같이 보통 부모가 지어주는 게 대부분이지만 이매들 사이에선 만약 혈육 외에 다른 이가 이름을 지어주면 그자의 혼백과 영원히 묶이게 된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것은 배필이 된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수용할 생각 따윈 없는 그들이 부족원의 상징이기도 한 그 표식이 내게 새겨지는 것을 허락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아무리 이름을 원한다고 해도 놈이 지어주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바지와 저고리를 추스르자 그는 쩝쩝 입맛을 다시다가 움막 한편에 있던 작은 꾸러미를 내 앞으로 던졌다.

    “병든 어미 때문에 네 팔자도 더럽게 꼬였구나. 뭐, 나야 덕분에 극락 구경을 실컷 하지만 말이야.”

    난 무릎께에 떨어진 꾸러미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왜 이것 밖에 안 됩니까?”

    “요샌 배달국 놈들이 세금으로 모조리 거둬 가는 바람에 약초도 구하기 어렵게 됐거든. 나도 아버지 눈에 발각 되지 않게 어렵게 빼돌린 거라고.”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틀 밖에…….”

    “조금 전에 말했지만 요새 약초 구하기가… 아니, 불쌍해서 거저 줬더니 어디서 까탈이야? 싫으면 관두던가!”

    두꺼운 손이 다시 빼앗아 가려하자 나는 재빨리 약 꾸러미를 움켜쥐었다. 오루문은 거무잡잡한 피부와는 상반되는 허연 이를 번뜩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말만 잘 들으면 네 어미와 너, 여기서 살 수 있도록 해 줄 테니까.”

    오루문은 이틀 뒤에 보자는 말을 끝으로 움막을 빠져나갔다. 그는 이매 족장의 아들이었다. 차기 족장 될 녀석의 입김 때문인지 우리 모자는 용케 이 마을에서 쫓겨나지 않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처음 그에게 이런 식으로 약값을 치르게 된 건 어머니가 병석에 누운 이후였다. 그때 내 나이는 너무나 어렸고 어머니를 잃는다는 두려움에 오루문의 제의가 얼마나 독약 같은지, 내 육신과 혼을 갉아먹는 것인지 판단 할 순 없었다. 오로지 삽입하고 흔들기에 바쁜 놈의 행위에 제대로 된 입맞춤 같은 것도, 쾌감 도 느껴 본적 없었다. 그렇지만 그쪽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오루문과의 이런 관계는 내게 약초를 구하고 식량을 구하는 노동과 같아야 했다. 그냥 고용주와 고용자처럼. 시간이 지나면 그만 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가혹한 배곯음과 어머니의 깊은 병세는 내 바람을 허무하게 무너트렸다. 난 다시 약 꾸러미를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역시 요즘 들어 눈에 띄게 양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래서 부쩍 오루문과 만나야 할 일이 빈번해졌다.

    내가 철이 들 무렵, 아버지의 재주를 물려받은 건지 마을 부족 원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고작 일이라고 해봐야 일주일에 한번정도 들어올까 말까 해서 어머니와 내가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운 상황이었다. 뭐든 되는대로 일을 하고 싶었으나 내게 선뜻 일자리를 내주는 이는 없었다. 어머니는 내가 그림을 그려서 식량과 약초를 사오는 줄로만 알고 계신다.

    등허리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그중 얼마는 앞으로 내려 눈을 가리며 거리로 나왔다. 반반의 피가 섞인 내 외모는 순수한 혈통의 이매와는 조금 달랐다. 까무잡잡한 그들에 비해 난 피부가 유난히 창백한 편이었고 그들에 비해 몸집도 작은 편이었다. 그리고 가장 도드라진 건 바로 눈이었다. 선명한 붉은 색인 그들과는 달리 내 눈은 어두운 보라색에 가까웠다. 그래서 귀찮은 시선을 받지 않으려면 눈에 띄지 않도록 가려야 했다. 난 그길로 푸줏간에 들려 주인에게 약초를 조금 내어주었다. 오늘은 모처럼 어머니에게 고기를 가져다 드릴 수 있을 거 같다.

    “고기 좀 주십시오.”

    “전에 분명히 돈으로 가져 오라 한 말 못 들었냐?!”

    “귀한 약초니까 아마 손해 보는 건 아닐 겁니다. 다음엔 꼭 돈으로 가져 올 테니 한번만 사정을 봐주십시오.”

    이런 물물교환을 노골적으로 싫어하던 푸줏간 주인에게 대신 이곳에서 일이라도 하겠다고 말한 적 있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주인은 못마땅한 듯이 어딘가로 가더니 들고 온 닭 모가지를 비틀어 내게 던졌다.

    “내 분명히 말하겠는데 다음부턴 이런 풀떼기 갖곤 어림도 없을 줄 알아!”

    말로는 저러지만 역시 오루문이 준 약초는 꽤 고가인지 항상 이렇게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내주었다. 그때 멍하게 서 있던 내 어깨를 툭 치며 웬 사내가 들어섰다.

    “어이. 배달국 놈들이 떴다던데 준비해 놨어? 이번엔 흑무천왕의 27번째 생일이라 거하게 걷어가나 본데 말이야.”

    “우라질! 생일이고 나발이고! 전에도 소를 있는 대로 뺏어 가질 않나! 몰라! 배 째라 그래! 요샌 세금으로 모조리 거둬가는 통에 고기는 구경도 못하고 사는데……!”

    “거참 들을라. 입 조심해!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야 내 놓으라면 내놔야지. 얼마 전에도 그런 식으로 버팅기다가 골나루 족이 전멸당했다는 소리 못 들었어?”

    “배달국 놈들, 되도 안한 꼬투리를 잡아서 주변국을 죄다 삼켜 버리고 있다는 거 모르는 놈도 있나?”

    “그러니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참아야지……. 이번에 꽤 많이 걷어 갔으니까 당분간 우리도 편안할거야. 족장님도 괜히 가만있는 게 아니라고.”

    푸줏간 주인이 마구 투덜거리자 사내는 그를 달래주며 내 쪽을 힐끔 곁눈질했다. 나는 피를 뚝뚝 흘리며 날개를 퍼덕거리는 닭을 대충 한 손에 그려 쥐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어렴풋이 내 뒤통수로 조소 어린 목소리가 달라붙었다.

    “이매도 아니면서 억지로 날고기를 먹는 척 하는 것도 못 봐주겠구먼.”

    나는 능숙하게 귀를 닫고 걸음을 옮겼다. 길거리는 배달국에 바칠 세금을 옮기느라 눈에 띄게 부산스러웠다. 내가 사는 곳은 하나루 산 아래 자리 한 배달국의 속국인데 이매 족을 비롯해 주변국에 달마다 가혹한 징수가 내려져 부쩍 마을 민심이 흉흉해져 있었다. 물론 그들이 풍요로웠을 때도 내게 나눠줄 인심 같은 건 없었다. 또 요즘 들어 인간들에게는 이매의 뿔이 귀한 보약으로 알려져 있어서인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이매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뚜렷한 증거도 없거나와 배달국이란 거대한 유세를 등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의 횡포에도 나서서 대항 할 수 없었다.

    빠악―――――!

    멍하니 길을 걸어가다가 난데없이 날아든 돌덩이가 내 머리를 강타했다. 볼 위로 뜨끈한 피가 콸콸 흘러내렸고 나는 익숙하게 소매 단으로 다친 곳을 꾹 누르며 돌이 날아왔음직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콧잔등 아래까지 훌쩍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길 한 가운데서 서 너 명의 놈들이 보였다. 경멸과 무시로 가득 찬 눈을 이글거리던 놈들은 내 몸에 손대기조차 싫어해서 항상 이렇게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하곤 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발을 들여?!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니라고 하지 않았냐?!”

    “케엑―퉤―! 잡종 새끼가 그 뿔을 가진 것부터가 기분 나쁘다고!”

    항상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놈들은 번번이 내가 무시를 하거나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더욱 미쳐 날뛰었다. 무서운 척이라도 하면 날 그냥 내버려 둘까…… 가끔은 일부러라도 그런 척을 해볼까도 생각 했지만 그건 내가 싫었다.

    “기분 나쁘면 내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돌아가면 되잖습니까.”

    “왜? 배달국 놈들이 왔다고 하니까 또 기가 사냐?”

    “무슨 소립니까?”

    “우리가 모를 줄 알아?! 누구는 한 달 내내 허리띠 졸라가며 모아 둔 걸 하루아침에 뺏기는데 저런 잡종새끼 따위는 눈감아 주다니…!”

    “뭐 저런 새끼를 일일이 상대해줘?! 야! 뿔을 겨냥해! 오늘 완전히 부러트려서 저승 구경이나 시켜주자고!”

    “던져! 죽여 버려…!!”

    빠악―――! 빡――――!

    매서운 돌팔매질이 시작 됐다. 지나가던 이매들도 덩달아 가세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몸을 웅크린 채 머리를 감쌌다. 이매의 뿔은 약점이어서 만약 잘리거나 치명타를 입으면 생명이 위험해 질 정도로 중요한 부위였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돌무더기에 살이 까지고 이마가 찢어졌지만 그들에게 대항 하진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그 여파가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꽤 오랫동안 끔찍한 통증이 온 몸에 쏟아졌지만 내가 끈질기도록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한 녀석이 흙바닥에 박혀 있던 돌덩이를 뽑아 들어 던졌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든 돌덩이는 정확하게 내 척추 위로 떨어졌고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숨이 턱 막혔다.

    “윽…….”

    내 입에서 튀어나온 소리가 맘에 드는지 놈들은 킬킬거리며 더욱 커다란 돌을 뽑아 올려 내던지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놈들이 낙엽처럼 턱턱 나뒹굴면서 바닥과 담벼락 위에 널려 버렸다.

    “으악――――!”

    “크악―――!”

    어떻게 된 상황인지 보고 싶었지만 흘러내리는 피가 머리카락과 뒤엉켜 눈을 찔렀다. 문득 나뭇가지가 밟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은 너희들 가족이 아닌가? 같은 피를 나눈 종족끼리 무슨 짓들이냐?”

    “마, 말도 안 됩니다! 라온힐조 나으리…! 저 녀석은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 놈은…!”

    놈들은 몸서리를 쳤지만 치가 떨리는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아무튼 나으리도 상관 마시고 그만 가보십쇼…….”

    “너희들이야 말로 그만 가보는 게 어때?”

    “…….”

    그는 부드러운 음성이었지만 간이 서늘해 질 만큼 짙은 경고성을 띠고 있었다. 놈들은 뭐라 말대꾸도 못한 채 불만스러운 곁눈질을 해대더니 이내 허리를 부여잡고 일어섰다. 놈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 무거운 발소리가 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어렵사리 회복한 시야로 배달국의 문양이 뚜렷하게 새겨진 금색 예복이 보였다. 뉘엿뉘엿 고개를 드니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장신의 남자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를 한 번에 말끔히 정리해 묶어 준수해 보이는 이목구비의 남자는 라온힐조라는 사람으로 배달국의 관직에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세금을 걷으러 와서 겸사겸사 주변국에도 상납 받기위해 이렇게 이매 마을에 머물기도 한다고 했다. 그가 이곳에 온건 불과 2년 전부터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라온힐조는 살짝 미간을 구기며 손을 내밀었다.

    “지독하군.”

    앞에 있는 손에서 시선을 거두며 일어서려 했는데 등뼈가 부서진 것처럼 엄청난 통증 때문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다시 재촉하듯 라온힐조의 손이 내 턱 언저리에 내밀어지고 시원한 풀 향기가 콧속으로 끼쳐 들어왔다. 곧이어 그 향기만큼이나 청량한 음성이 내려앉았다.

    “잡아.”

    “… 괜찮습니다.”

    거북했다. 이런 호의는 도무지 적응이 안 돼 있는 터라 어색한 표정이 그려졌을 것이다. 특별히 그가 인간이라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작 내가 숨 쉬고 존재 하는 이매 마을이야 말로 멀기만 한 타인으로 느껴졌으니까.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세우자 바로 앞에서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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