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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야]the day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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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야] The day

    The day 1

    -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요?

    잠에서 막 깨어나는 이의 눈가로 아침 햇살이 내려쬐었다. 눈가가 찡그려지고 낮은 신음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강한 햇살이다. 며칠 동안 줄기차게 비가 내리며 가을 장마라는 말이 나올 만큼 궂은 날씨가 이어졌다. 새벽의 어스름함과는 달리 그나마 동이 터오는 아침을 모르고 지나칠까, 그래서 지각이라도 할까봐 커튼을 묶어둔 채 자버린 탓이었다. 10년째 머리맡을 지키는 알림시계가 고장만 나지 않았어도, 동유가 아침부터 햇살 공격을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으으."

    이불에 파묻혀 있던 이가 몸을 꿈틀댔다. 모로 누운 채 이불 밖으로 삐죽하게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부스스했다. 이불 안에 놓여 있던 팔이 빠져나와 머리맡을 더듬으며 휴대폰을 집었다. 6시 30분, 이제 슬슬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몇 분이라도 더 이불 속에 있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아침시간 5분만 빨리 준비해도 얼마나 시간을 버는지 잘 알고 있기에 동유는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벽에 걸린 수건을 챙기고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미닫이문을 익숙하게 열었다. 10월이라 이른 아침이면 마당에 불어드는 바람이 찼다. 마루 아래에 놓인 슬리퍼를 신자 발을 타고 찬 기운이 엄습해 동유의 발가락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발은 시리고 몸은 춥다. 추위를 타기는 해도 작년까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이 이기는 장사 없다더니 한 해가 지나기 무섭게 추위도 더 타는 모양이다. 그래도 씻고 얼른 준비해야 하기에 동유는 마른 어깨를 움츠렸다 펴며 부엌 옆에 있는 간이 욕실로 들어갔다.

    출근 준비를 마친 동유는 어제 저녁에 남겨둔 밥을 도시락에 옮겨 담았다. 밥 양이 얼추 되겠다 싶었는데 도시락 그릇에 담으니 반이 조금 넘는 양 밖에 되지 않았다. 반찬은 깻잎 장아찌에 햄 몇 조각, 그래도 오늘은 특별히 고추참치 캔도 하나 끼여 있었다. 어제 마트 장을 보는데 10개 묶음으로 싸게 파는 것을 보고 고심에 고심을 하다 집어든 것이었다.

    동유는 부엌 한쪽에 자리한 선반 앞에 쭈그려 앉아 참치 캔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반찬이 늘어난 것은 좋은데 오늘은 밥이 적어 참치를 다 먹지도 못할 듯 했다. 괜히 시무룩해지는 기분에 캔을 만지작대던 동유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쭈그려 앉아 있던 동유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주머니에 들어 있는 폰을 꺼내 시간을 보았다.

    "아!"

    밥과 반찬 때문에 고민하다 버스를 놓치는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도시락을 넣은 크로스 가방을 매고 집 열쇠를 챙겨든 동유는 늦을 새라 서둘러 집을 나섰다. 동유는 가방 안에 든 도시락이 들썩이지 않도록 단단히 움켜쥐었다. 7시면 출발하는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동유의 발걸음이 더 빨라지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과 고불고불한 골목을 돌아 내려오니 동네 입구에 서 있는 정류장 팻말이 동유의 시야로 들어왔다. 정류장 팻말 옆에 걸린 시계의 바늘이 7시 0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만 더 뛰면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하아, 하아."

    목구멍 끝까지 차오른 숨이 뱉어지며 10월의 이른 아침 공기에 하얀 김이 서렸다. 버스가 코앞인데 그 길이 왜 이리도 먼지 평소 체력관리 좀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먹고 살아야 하는 생활에 쫓기니 여력이 닿지 않았다. 조금만 더, 놓치면 지각하는데. 동유는 불안한 마음에 버스의 뒤꽁무니를 애타게 쳐다보았다. 그때 동유의 불안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빵빵, 하고 버스 크락션이 울렸다. 출근길에 늘 보는 기사 아저씨가 동유의 편의를 봐준 것이다. 그 소리에 동유는 살았구나 싶어 잰 걸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오늘 김 군 지각이다."

    "하아, 죄송…, 죄송해요. 고맙습니다."

    동유는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빈자리로 가 앉았다. 점퍼 주머니에 들어 있는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서야 동유는 마음이 놓인 듯 바싹 긴장했던 어깨 근육을 풀었다.

    7시면 마을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동유였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동유를 볼 때면 늘 생각했다. 버스 기사 생활 30년에 꾸준히 같은 시간에 마을버스를 타고 아침을 시작하는 김 군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었다. 동유가 이 마을버스를 타고 다닌지도 어느새 10년이 되어가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었다.

    동유가 조금 더 어린 청년이었다면 기사 아저씨는 동유의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반해 동유의 나이는 그렇게 어리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만이 가져다주는 분위기가 동유에게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동유는 완전히 풀리지 않은 피로감에 의자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출근길 몇 분이라도 달콤한 잠을 자고 싶었다. 혹시 졸다가 내릴 곳을 지나칠까 신경을 곤두세우며, 오늘은 출근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규현이나 형태에게 휴대폰으로 알람 맞추는 법을 꼭 배우리라 동유는 마음먹었다.

    20분 버스를 타고, 다시 10분을 걸어 일터에 도착한다. 늘 이맘 때면 동유가 회사 입구를 지난다는 걸 알기에 수위 아저씨가 동유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딸이 하나 있었다면 사위 삼기 딱이라고, 수위 아저씨는 동유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다. 늘 듣는 말인데도 들을 때마다 동유는 숫기 없는 성격에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다.

    8시 30분까지 출근이다 보니 이른 시간 회사는 적막마저 흘렀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지만 마음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이 시간 밖에는 없었다. 크로스 가방 끈을 고쳐 매는 동유의 발걸음이 제도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온갖 화학 먼지와 함께 한바탕 뒹굴고 난 뒤 먹는 점심식사는 꿀맛 같았다. 따뜻한 밥도 아니고 어제 먹다 남은 찬밥 덩어리였다. 반찬은 늘 먹는 것에 고추 참치 캔 하나 추가 되었을 뿐이지만 동유의 고픈 배에는 상다리 부러질 것 같은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점심메뉴였다.

    "형 그렇게 먹고 힘쓰겠어요? 밥이 왜 그것밖에 안 돼요."

    점심식사로 김치찌개를 시켜서 자리로 온 규현이 동유의 도시락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규현과 형태가 오기를 기다리던 동유는 덩그러니 놓인 도시락 그릇을 주춤대며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다.

    "괜찮아. 이만하면 충분해."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그렇잖아도 말랐으면서. 야, 형태야! 밥 더 받아와."

    "어? 밥?"

    식권을 들고 줄을 서 있던 형태가 규현의 목소리에 목을 쭉 빼고 이쪽 방향을 향했다.

    "어. 수북-하게 받아와."

    규현이 팔을 들어올려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이만큼 받아오라고 하자 동유는 괜찮다며 형태를 향해 손을 들어 내젓기 바빴다. 자신은 괜찮다고 소리내 이야기해야 하는데 목소리를 크게 내면 사람들이 쳐다볼까 동유는 그것이 부끄러워 입만 벙긋댔다. 동유와 규현의 모습을 지켜보던 형태는 대충 파악이 된 눈치다. 잘 알았다는 OK 사인이 형태의 목소리를 타고 나왔다. 동유는 애꿎은 도시락 뚜껑의 락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똑딱이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구내 매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은 동유의 맞은편에는 늘 같이 점심을 먹는 규현과 형태가 있었다. 규현과 형태는 동유와 9살 차이가 나는 동생들이지만, 이곳 일터에서는 동유보다 1년 더 배운 선배이기도 했다. 처음 동유가 이곳에 취직을 했을 때 숫기가 없고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좀처럼 사람을 사귀는 것이 쉽지 않았었다. 거기다 대부분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는 이들인 반면에 29살이라는 늦깎이 나이에 취업을 했으니 나이 터울 때문에 어울리기란 더 어려웠다. 그런 동유에게 처음 이야기를 건 것이 규현이었고 같이 밥을 먹자고 부른 건 형태였다.

    찬밥 덩이를 도시락 한쪽에 밀어버리고 형태가 받아온 따뜻한 밥으로 동유는 점심을 먹었다. 형태가 밥을 얼마나 많이 받아왔는지 오랜만에 마음먹고 산 참치 캔을 다 먹고도 남을 정도였다. 출근길에 생각했던 것과는 180도 다른 점심식사에 동유는 꽤 만족스러웠다. 자신보다 동생 뻘이지만 늘 챙겨주는 규현과 형태가 고마웠다. 동유는 도시락 뚜껑을 닫으며 갑자기 생각난 듯 주머니에 든 휴대폰을 꺼냈다. 규현과 형태에게 한 가지 더 도움 요청할 것이 있었다.

    "저기, 휴대폰 알람 맞추는 거 가르쳐 줄 수 있어?"

    벌써 식사를 끝내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규현이 고개를 내밀며 동유의 휴대폰을 보았다. 요즘 얼마나 좋은 휴대폰이 많이 나오는데 동유의 폰은 '나 구닥다리요' 라고 광고를 하고 있었다. 굳이 신제품에 비싼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짜 휴대폰만 해도 좋은데, 동유는 고장이 난 것도 아니고 제 기능을 다 한다는 이유로 6년째 같은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형, 메뉴 눌러봐요."

    "메뉴? 이, 이거?"

    동유의 손가락이 키패드 위를 더듬더듬 움직였다. 규현과 형태는 동유의 휴대폰을 넌지시 보며 천천히 설명을 해주었다. 동유가 휴대폰이라는 것에 많이 서툰 사람임을 알기 때문이다.

    "형 그거 말고, 그 밑으로 내려와요. 키패드에 아래로 내려오는 방향키 있잖아요."

    "방향키? 이거 말하는 거야?"

    손바닥 위에 휴대폰을 놓고 하나하나 꾹꾹 누르는 동유의 손놀림이 사뭇 진지했다. 규현과 형태에게는 아무 것도 아닐지 몰라도 동유는 하나를 더 배웠다는 것에 뿌듯함이 들었다. 점심시간이 5분 남짓 남은 것을 보고 세 사람은 몸을 일으켰다. 입이 심심하다고 늘 먹을 것을 달고 다니는 형태가 과자를 사려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동유를 보았다.

    "아, 동유 형 그 책 다 봤어요?"

    "응? 무슨… 아, 제도 순차 책? 아직 덜 봤는데. 오늘, 오늘까지 다 보고 내일 꼭!"

    뻘뻘 땀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이야기를 하는 동유의 입가로 형태의 손가락이 닿았다. 쉿, 이라는 제스츄어와 함께 형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무슨 말을 못해. 형 숨 넘어가겠어요, 진짜. 책 아직 덜 본 거면 천천히 보고 줘요. 난 그냥 다 봤으면 다른 것도 더 빌려줄까 해서 물어본 거예요."

    "급한 거… 아니었어?"

    "급하긴요. 우리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은 뺀질거려서 다 지가 잘난 줄 알고 책을 안 봐요. 그게 아니면 책마다 먼지가 그렇게 쌓였겠어요?"

    "응, 그렇구나."

    "난 오히려 형이 책 볼 때마다 먼지 털어줘서 고마운걸요."

    형태는 잠깐이지만 긴장감이 맴돌았던 동유의 어깨를 감싸며 괜찮다는 신호로 투욱 두드렸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규현은 그러게 바로 이야기를 하지 왜 낚시질해서 형 놀라게 하냐고 형태를 타박했다. 형태는 동유 앞에선 잘 챙겨주고 마음 좋은 싹싹한 동생이 되지만, 같은 나이이자 고등학교 동창인 규현의 앞에서는 철없고 꽥꽥 대는 천방지축이 되었다. 두 사람의 투닥투닥 거리는 모습에 동유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규현과 형태는 20살 때 처음 동유와 만났다. 동유는 조금 전 점심을 먹었던 그 자리에 늘 혼자 앉아 밥을 먹었다. 너무 조용조용히 먹어 존재감도 잘 느껴지지 않았었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형태가 낯선 얼굴에 혹시 아는 얼굴이냐고 규현에게 물었고, 규현은 자신이 일하는 건설자재 파트에 새로 들어온 신입 형이라고 형태에게 동유를 설명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이었다. 그 전날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 형태가 일찍 출근을 했고, 제도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음을 알았다. 누가 이렇게 빨리 출근한 건가 싶어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넓은 책상 한쪽 귀퉁이에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적고 있는 동유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얼마나 집중을 하고 있었는지 누가 들어온지도 모른 채 동유는 책장 수북하게 쌓여 있던 제도책 중에 하나를 가져와 노트에 옮겨 적고 있었다.

    아마도 20분은 족히 더 있었을 것이다. 형태는 왠지 방해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동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보기에는 낯선 제도 책이었다. 하지만 동유는 내용을 알아보고 노트에 옮겨 적고 있었고, 그 모습에 형태는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김동유라는 사람이 제도에 대해 기본 지식이 있다는 것, 두 번째는 무엇보다 제도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더 노트에 옮겨 적던 동유가 그제서야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지 주춤대며 고개를 들었다. 동유는 자신을 보고 있던 낯선 이의 모습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형태는 규현을 통해 나이가 자신들보다 9살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른이라는 느낌은커녕 오히려 자신이 동유를 괴롭히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옆에 놓인 가방에 펜과 노트를 집어넣는데 손은 또 왜 그렇게 떠는지, 괜찮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동유는 형태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얼른 나가겠다는 말만 반복하며 서두르는 동유의 모습에 형태는 되레 자신마저도 초조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사무실을 나서며 큰 죄를 지은 아이마냥 허리를 숙여 몇 번이고 사과를 하는 동유의 모습에 형태는 저도 모르게 마주 허리를 숙였었다. 그 날이 형태가 동유를 지켜보게 된 것의 시작이었다.

    늘 단촐한 남방에 면바지, 안경을 쓰고,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내 밥을 먹고 언제 다 먹고 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하던 사람이었다. 하루 보고, 이틀 보고, 일주일이 지났다. 3주가 다 되도록 그 흔한 이야기 상대 하나 없이 혼자서 다니던 동유였다. 너무 소심하고 왕따 같은 기질이 있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가만히 보니 서툴러도 꼼꼼하게 움직이는 손놀림이었다.

    행동이 재빠르지 못하고 천성이 낯을 가릴 뿐, 주위가 시끌시끌하면 시선을 두고 저도 모르게 한참을 쳐다보던 동유였다. 혼자 있고 싶어서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서툰 모습이 자신들보다 9살이나 많은 형이지만 형태와 규현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고 귀엽게 비쳐졌다.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며 규현은 동유와 말을 트기 시작했다. 대답을 할까 싶었는데 규현의 물음에 동유는 작은 목소리로 "응." 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과 이야기를 하더라는 규현의 말에 탄력을 받은 형태가 당장에 같이 밥을 먹자고 나선 것이다. 동유에겐 곁에 있기만 해도 충족감을 주는 두 사람이었다. 자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중심에 있으면서 늘 동유를 잊지 않고 챙겼다. 이 두 사람이 없었다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에 자리를 잡고 계속 일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10월이 되고 해가 짧아서인지 하루가 금방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어둑하게 밤이 내린 회사를 빠져 나가는 동유의 옆에는 규현이 있었다. 늘 세 사람이 같이 퇴근하는데 오늘은 일이 끝나고 어디 갈 곳이 있다며 형태가 먼저 가버린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규현이 갈림길에서 인사를 하려다 무언가 생각난 듯 동유를 불렀다.

    "동유 형, 형태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무슨 이야기? 나 못 들었는데."

    "이 자식 또 잊어 버렸나 보네. 금요일 저녁에 별 다른 약속 없으면 비워둬요."

    "시간은 괜찮은데. 어디 가게?"

    "형태 아는 사람 중에 건설 쪽으로 유명한 사람 있다고 했잖아요. 그 사람이 한 번도 작품전 같은 걸 한 적이 없는데 이번에 하나 봐요. 작품전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지인들을 모아서 설명회를 한대요. 그동안 했던 제도 공개도 하고. 그러는데 형 관심 많으니까 같이 가자고 하던데요?"

    "내가, 내가… 가도 괜찮을까?"

    정말 가도 되는지 묻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는 일이 없는 동유가 유일하게 들뜬 마음으로 하고 싶다고 의지를 내비치는 영역이었다. 더군다나 그쪽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형태가 먼저 가자고 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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