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판타지   무협   BL   기타

작품 검색

파란오렌지 유마 뽀루래기 하유 탄산 주키 side 눈의여왕 아무 drop 비마중 Field Sky walker 루인스 모카커피 siesta 봄에 묻다 타란 가면무

[주해온] 악녀의 정의 1-207완 - 1

  • [주해온] 악녀의 정의 1-207완.txt (2623kb) 직접다운로드

    악녀의 정의 - 주해온

    =======================================

    악녀의 정의 1화

    1장.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미안해. 나 소정이랑 사귀기로 했어. 우리 그만하자.”

    남자 친구가 말했다.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했다. 사귀기로 했다니? 한소정을 좋아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미 사귄다는 거야?

    그는 그 말만 남기고 멀어졌다. 한소정이 그에게 안겨 들었다. 망연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한소정이 날 돌아봤다. 그리고 웃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도 안 나왔다. 곧 천천히 속에서 열이 끓어올랐다.

    박태준과 헤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가 날 무려 1년이나 쫓아다니며 구애한 것은 과를 넘어서 전교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했다. 오죽했으면 경영학과 명물이라고 불렸을까.

    그런데 그 박태준이 바람을 피웠단다. 그것도 내 친구랑.

    하필이면 한소정이라니!

    순진하게 웃던 얼굴과 아까의 미소가 번갈아 가며 떠올랐다. 모든 게 다 박태준을 차지하기 위한 연기였어?!

    울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니 이미 익숙한 상경대 화장실 칸에 들어와 있었다. 심호흡을 해 봤지만 좁은 공간 안에 혼자 있으니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내가 한소정보다 못한 게 뭐지? 날 사랑한다고 했던 건 다 거짓이었나? 대체 언제부터 그랬을까?

    나는 진흙처럼 질퍽거리는 생각을 애써 떨쳤다. 이럴 때가 아니다. 땅속으로 파고 내려가기 전에 나가자. 한숨을 삼키고 문고리를 잡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와, 대박. 한소정이랑 박태준 사귄대.”

    “헐. 그럼 유화영은?”

    “깨졌겠지. 아, 어떻게 깨졌는지 궁금하긴 하다. 이따 만나자고 할까?”

    목소리에 짙게 배인 웃음기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잘게 떨렸다.

    “술 마시자고 하자. 걔 내가 남친이랑 깨졌을 때 술 마시고 우니까 니가 찼으면서 왜 우냐고 했잖아. 걔도 당해 봐야 해.”

    “걔 좀 공감 능력 떨어지잖아.”

    “맞아, 맞아.”

    깔깔 비웃는 높은 웃음소리가 화장실 벽에 이리저리 반사되어 크게 울렸다. 당장에라도 문을 열어젖히고 그게 무슨 소리냐며 따지고 싶었지만 몸이 망부석처럼 꼼짝도 안 했다.

    “한소정 여우 짓 하는 거 다들 뭐라 그럴 때 혼자 감싸더니.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좀 고소하지 않냐?”

    “야, 우리 화영이 불쌍하게 왜 그래.”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꾸며 낸 것처럼 과장되어 있었다. 아무리 봐도 놀리는 걸로밖에 안 보였다.

    “근데 한소정이 박태준 뺏을 생각인 줄은 몰랐다. 걔도 참 대단해.”

    “내 말이! 이거 아무도 몰랐을걸? 한소정이 유화영한테 오죽 잘했어야지. 차별 쩔었는데.”

    “한소정도 짜증 나지만 유화영도 좀 그렇지 않냐?”

    “맞아. 잘난 척 너무 심해.”

    “솔직히 걔가 잘난 게 뭐 있냐?”

    “얼굴?”

    “그것도 성형 아냐?”

    “설마.”

    짓궂은 웃음이 내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폭력과도 같은 비소는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점점 멀어졌다.

    “…….”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막혔던 숨이 거칠게 터져 나오고서야 내가 숨도 못 쉰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질 나쁜 호기심과 흥미 본위에 내 불행은 난도질당했다. 겨우겨우 화장실 밖으로 나오니 여자 세 명이 과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때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상대는 그렇지 않다는 걸 이런 식으로 깨닫고 싶지 않았다.

    쾅, 문 닫히는 소리가 텅 빈 복도에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 * *

    소주를 새로 깠다. 이걸로 벌써 세 병째. 먹은 것도 없는데 소주가 잘만 넘어갔다. 알코올은 배 속에서 불로 변했다. 강바람이 매섭게 온몸을 할퀴었지만 그 덕에 하나도 춥지 않았다.

    검게 일렁이는 한강 물이 내 마음 같았다. 물그림자 위로 박태준과 한소정이 보였다. 이가 뿌득뿌득 갈렸다.

    박태준도 한소정도 나에게 이럴 순 없다. 오늘 낮까지만 해도 둘은 내 남자 친구와 절친이었다.

    주량을 훨씬 넘어섰는데도 취하지 않았다. 눈앞이 핑핑 돌지도 속이 울렁이지도 않았다.

    모든 것이 멀쩡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술에 취해 발광을 하든 미친년이 되든 순간이나마 모든 것을 잊어버리든…… 뭐라도 좋으니 멀쩡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이렇게 멀쩡하게 떠올리고 싶지 않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진동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무슨 내용일지 뻔했다.

    낮에 왔던 뒷담화 삼인방의 연락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애쓴 티가 팍팍 나는 카톡에 헛웃음만 나왔다. 차라리 헤어졌냐고 묻는 눈치 없는 연락이 나았다.

    오늘 하루 그 어느 때보다 카톡이 많이 왔었다. 어쩌면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들끓는 회한에 눈을 감았다. 과 내엔 소문이 빨리 돌았다. 안 좋은 소문은 더 빨랐다. 그 속에서 나 홀로 자유로울 거라고 믿진 않았다. 그래도 정도는 지킬 거라고 생각했다.

    난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다. 딱히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편한 성격도 아니다. 똑 부러진다, 객관적이다, 냉정하다. 면전에선 이런 말이 오갔지만 등 뒤로 가면 잘난 척하는 중립병 환자에 이해심이 없다는 말로 바뀌었다.

    그리 생각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사람과 사람이 지내는데 불만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애인과 친구에게 배신당한 상황에까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

    공정한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존심이 세긴 했지만 더 센 사람은 널렸다. 누구한테나 사랑받을 성격은 아니지만 이렇게 욕먹을 정도는 아니지 않나?

    모든 것이 서러웠다. 나는 쭈그려 앉은 그대로 무릎을 안았다. 눈앞에는 한강의 검은 물결이 주홍빛으로 물든 채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을 흘러가는 강물만 바라보았다.

    뒷담화 삼인방도 한소정도 모두 강물 따라 흘러갔다. 모든 것이 떠내려간 자리에 오직 박태준만이 단단한 바위처럼 머물러 있었다.

    “나쁜 놈…….”

    슬픔을 분노로 바꿔 보려 했지만 계속해서 박태준의 얼굴만 떠올랐다. 헤어지자던 얼굴이나 다툴 때 화내던 얼굴이면 그나마 나을 텐데, 눈앞에 아른거리는 건 ‘화영아!’ 하고 부르며 다정히 웃는 얼굴이었다.

    결국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준이 내 이름을 부를 때, 그 부드럽고 따뜻한 울림을 다시 들을 수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타들어 갔다.

    얼굴을 무릎에 묻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나 생각보다 그 개자식을 좋아했구나. 그것도 훨씬. 뒤늦은 깨달음이 후회처럼 찾아왔다.

    외로웠다. 싸늘한 한기에 팔을 감싸 보지만 역부족이었다. 춥다고 하면 항상 태준이 곁에서 품을 내주었는데. 하지만 이제 더는 식은 몸을 감싸 줄 사람이 없다.

    추위도, 고독도, 적막도 온전히 홀로 감당해야 했다.

    * * *

    겨우 울음을 그친 건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여전히 태준이 미우면서도 그리웠다. 그와 한소정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한테 받은 상처도 여전히 아팠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마음이 가벼웠다. 실컷 울어 본 게 대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막연하게 오늘보단 내일이, 내일보단 모레가 조금 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박태준 이 개자식! 나 없이 얼마나 잘 사나 보자!”

    시원하게 소리를 지르고 나니 더 가뿐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우울한 생각 없이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다리가 휘청했다.

    순식간에 무게중심을 잃은 몸이 강으로 쏠렸다. 팔을 휘저어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그대로 강물에 빠졌다.

    좀 전에 느꼈던 추위와 비교도 안 되는 추위가 전신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얼음장 같은 강물에 온몸이 저리고 아팠다. 당황한 입과 코에 물이 잔뜩 들어갔다. 숨이 막혔다.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이자 수면 위로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기 무섭게 몸이 가라앉았다. 다시 파닥여 보지만 물 위로 떠오르는 시간은 더 짧아졌다.

    공포가 온몸을 잠식했다. 몸에 힘이 들어가 사지가 뻣뻣하게 굳었다. 아무리 팔다리를 움직여도 몸은 점점 가라앉았다.

    워낙 야심한 시각인 데다가 혼자 술 마시며 추태를 부릴 생각에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 잡았다.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빌었다. 제발, 누가, 누가 좀 도와주세요. 제발!

    하지만 내 기도는 물살에 흩어져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시커먼 물속에서 나는 점점 아래로 떠내려갔다.

    격렬하게 움직이던 팔다리가 서서히 둔해졌다.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을 때, 눈이 감겼다. 마지막 숨이 파랗게 질린 입에서 새어 나와 위로, 더 위로 올라갔다.

    나 홀로 찬 강물 바닥에 남겨 둔 채.

    2장. 내가 악녀라니!

    몸이 무겁다. 내쉬는 숨결이 뜨거워 마치 불에 델 것 같은데 동시에 너무 춥다. 나는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웅크렸다. 전신이 축축했다.

    ‘더는 싫어.’

    그냥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홀로 컴컴한 어둠 속에서 추위에 떨고 싶지 않았다. 익사는 아마 죽는 방법 중에 최악일 것이다. 아무도 없는 칠흑 속에서 혼자 떠는 것은 비참하고 쓸쓸하다.

    산소가 부족해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외로움이 칼날처럼 깊게 심장을 찔렀다. 날 혼자 두지 마. 날 홀로 죽게 하지 마.

    하지만 난 혼자였다.

    흐느낌이 절로 새어 나왔다. 눈가를 문질렀다.

    ‘어? 물속인데 목소리가 나오다니?’

    물론 소리야 낼 수 있지만 입안으로 물이 들어차는 느낌도, 목소리가 멍멍하게 울리는 느낌도 없었다. 꼭 공기 중에 있는 것처럼.

    자각한 순간 색색대는 숨소리가 귀를 할퀴었다. 나는 숨을 깊게 내쉬고 들이마셨다. 폐가 한껏 부풀며 공기가 들어차는 게 느껴졌다. 무의식중에 숨결이 뜨겁다고 생각했으면서 정작 지금까지 숨을 쉰다는 자각은 없었다.

    온몸이 미끄럽고 축축했지만 몸을 감싸는 건 물이 아니라 천이었다. 아마도 침대 위. 물에 빠졌을 때의 충격 때문인지 외부 상황이 뒤늦게야 머릿속에 들어왔다.

    ‘아…… 나 살았구나.’

    기쁨도 슬픔도 아닌 애매한 탄식이 먼저 나왔다.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인식하자 곧 생존에의 환희가 온몸을 휘감았다.

    ‘살았어! 살았다고!’

    무거운 몸은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흘렀다. 하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눈물이었다. 여전히 사위가 컴컴하고 추웠지만 더 이상 먼 곳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은 없었다.

    나는 이불을 끌어안았다. 몸이 축축한 건 식은땀 때문이었는지 마른 이불에 닿은 부분이 보송보송했다.

    ‘병원인가…….’

    안심되니 몸이 나른해졌다.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팠지만 이 정도는 곧 나을 수 있을 것이다. 병원이니까.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둠도, 추위도 더는 무섭지 않았다.

    =======================================

    악녀의 정의 2화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화려한 장식이었다. 천장은 아니고,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하지? 캐노피 받침…… 님?

    뭔지는 몰라도 존칭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것은 물론, 물질적 가치도 상당해 보였다.

    한마디로 비싸 보였다. 그것도 엄청.

    캐노피 받침님은 천장화를 중심으로 암술을 감싼 꽃잎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양각된 장식을 보고 있자니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저거 진짜 금은 아니겠지? 하다못해 도금일 거야.’

    이 엄청난 부조물은 침대 위에 자리했고 그 가장자리로 커튼이 매달려 있었다. 캐노피라고 생각한 것은 이 때문이다.

    커튼도 장난 아니게 화려했다. 내가 보고 있는 안쪽면은 차분한 녹색이었지만,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며 보이는 겉면에는 장미꽃이 화려하게 만발해 있었다. 이불과 같은 문양이었다.

    나는 멍하니 날 둘러싼 풍경을 바라보았다. 고작 침대뿐인데도 어쩜 이렇게 볼 게 많을까.

    확실한 건 여기가 병원은 아니라는 거다. 병원 특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런…… 음, 비싸신 침대님―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은 없을 테니까. 여긴 병원보다 호텔에 가까웠다.

    아직 몸을 일으키긴 힘들었다. 나는 커튼이 살짝 열린 틈을 응시했다. 각도 때문에 잘 안 보이지만 그림자가 졌다 사라지며 누군가가 부산스레 움직였다.

    아무런 기척도 없어서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 있었다니. 저렇게 움직여도 자그만 소리 하나 나지 않는 게 신기했다.

    우선 깨어났다고 알려야겠다. 감사 인사도 하고 여기가 어디인지도 물어봐야지.

    그러나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커튼을 비집고 사람이 나타났다.

    ‘외국인?’

    생각지도 못한 외국인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그런 나를 보고 그녀 역시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외국인이라 눈이 큰데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일단 영어로 말을 해야 하나? 학습된 혓바닥이 본능적으로 ‘헬로하우아유암파인땡큐앤쥬’를 외치려 했다.

    가까스로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이겨 내는데, 외국인 아줌마가 비명 지르듯 외쳤다.

    “아가씨!”

    그러더니 갑자기 풀썩 무릎을 꿇었다. 아, 진짜 놀랐다. 나는 인사도 잊고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올려다보는 얼굴에서 아까의 놀란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애잔함과 그리움 그리고 뭔지 모를 대견함이 주름진 얼굴에 어려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모르는 사람의 목숨을 구해 준 것치고는 너무 지나친 반응이었다. 살짝 불안해졌다.

    이 격한 반응은 뭐지? <미저리>를 찍게 되는 건 아니겠지? 기회를 노린 감금! 비뚤어진 사랑!

    하지만 난 유명한 소설가도 아니고 하물며 연예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대학생일 뿐이다. 저 아줌마가 날 감금하며 스토킹할 일은 없다.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사이, 아줌마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깨어나셨군요! 전 아가씨께서 깨어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간 병치레 한 번 없으셨던걸요. 암요, 이렇게 건강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줄 믿고 있었습니다.”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아줌마는 마치 날 아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볼 것도 없이 초면이었다. 저런 외국인이라면 한 번 보고 잊을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아가씨라니. 뭐, 미혼의 여성이니 따지고 보면 아가씨가 맞긴 하지만 그렇게 불린 적이 없어 낯간지러웠다.

    가장 이상한 것은 아줌마의 말을 모국어처럼 알아듣는 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발음이며 구조며 한국어가 아닌데 태어날 때부터 써 온 말처럼 자연스러웠다.

    “저, 누구…….”

    말을 끝맺기도 전에 아줌마에 대한 정보가 뇌리에 스쳤다. 그녀는 내 유모였다.

    뭐지? 언제부터 나한테 그런 부르주아의 산물 같은 게 존재했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동공이 신명 나게 탭댄스를 추고 있으리라.

    나는 평범한 집안의 평범한 딸이었다. 이 ‘평범’의 범주에서 굳이 따지자면 가난한 편이었다. 밥을 굶고 겨울에 연탄을 땔 정도는 아니어도 항상 아껴 가며 빠듯하게 살아야 했다.

    유모라는 건 내게 아주 먼 단어였다. 그것도 외국인 유

작품 리스트

요청게시판

옵션



Business Adress : Hannam-dong, Yongsan-gu, Seoul (Daesagwan-ro 961gil)

Headquarter Adress : 97 Lillie Rd, Earls Court, London SW71 1UD UK

CEO : Edward Choi

Business Number : 211-17-34675 (KR)

Company Name : LL Company

CS center : 21:00~05:00 (GMT+9)

CS number +44) 20 7610 0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