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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진] 소실점 -116 완전판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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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심에 비해, 정보는 심히 적었다. 미국지사에서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둔 것은 알려졌지만 그를 공략하는 방법이나, 성격, 약점, 그 외 잡다한 여러 가지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유병진은 이번 HS 자동차 기획 건을 그가 맡는다는 말을 듣고 그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을 사방으로 알아보았으나, 결국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배우를 그에게 밀어 넣고야 만 것이다.

    ‘알아서 잘하겠지. 똑똑한 놈이니까.’

    “거기 앉아요.”

    최 전무는 자연스럽게 소파 반대편 자리를 권했다. 그가 상석에 앉을 거라 생각했던 이준은 다소 어색한 몸놀림으로 그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한쪽 구석에는 양주 병 하나와 컵, 그리고 얼음통이 놓여 있었지만 최 전무가 잡은 것은 커피 잔이었다. 이제 막 내린 것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차가운 거?”

    “아뇨, 따뜻한 것도 괜찮습니다.”

    최 전무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 올린 것을 그 앞으로 놓아 주었다.

    “…….”

    그가 말을 걸어오지 않자, 이준은 조금 불편하게 허리를 세우며 자세를 유지했다. 스타가 되었다고는 해도 연예인병이 오기에는 아직 제대로 인기 실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그인지라, 아직은 이렇게 예의를 차리고 있는 편이 더 나았다. 이준은 먼저 말을 꺼내지 않고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에게 침묵은 견딜 수 없는 공백이 아니었다.

    “이름이 뭐예요?”

    “……예?”

    “아까 대표 하는 거 못 봤어요? 인사를 안 하네.”

    그 말에 이준이 크게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곰곰이 되짚어 보니 대표가 이른바 폴더 인사를 할 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준은 허리를 깊게 숙이며 단정한 목소리로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아, 저, 죄송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강이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앉아요.”

    “예.”

    그때야 비로소 최 전무가 서류에서 눈을 떼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준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어떻게 생겼는지 그저 이름과 생김새를 연관 짓기 위해 잠깐 보는 시선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은 얼굴이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스타로서의 매력을 찾는가, 아니면 HS 자동차의 새로운 세단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지녔는지 확인하는가. 이준은 잠시 머뭇거렸다.

    “오랜만이네요.”

    “……제가 전무님을 뵌 적이 있었나요?”

    기억하기로는 없었다. 방금 전의 시선은 혹시 제 얼굴에서 그가 아는 다른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일까. 이준이 최 전무를 바라보며 묻자 그는 그저 작게 웃었다. 마치 만난 것을 기억 못하는 체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그런 웃음 소리였기 때문에, 이준은 조금 불쾌해졌다.

    “나 기억 안 나요?”

    최 전무는 재킷을 벗어 소파 팔걸이에 대충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안을 뒤져 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이준은 조용히 시선으로 그의 모든 행동을 좇았다. 그런 제스처로 말미암아 그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파악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아직도 잘 벌어져요?”

    “……네?”

    “이준 씨 구멍 말입니다.”

    ‘구멍’이라는 말과 동시에 이준은 헛숨을 삼켰다. 바닥에서 수십 마리의 벌레가 제 발을 타고 온몸으로 기어 올라오는 것 같은 소름이 돋아났다. 갑자기 저를 뒤덮은 감각에 몸을 내맡기고 있던 그는, 제가 대답할 적절한 타이밍을 이미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잠시간의 유보는 정말로 할 말이 없어서거나, 아니면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였거나. 그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기 마련이었다. 이준은 후자에 기대어 보기로 했다.

    “구멍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봤잖아요, 미국에서. 난 딱 알겠던데.”

    점점 최 전무의 타겟이 좁아지고 있었다. 구멍, 미국에서 본 구멍, 그 다음에는…….

    “재밌었잖아. 마리화나 피우면서. 지금은 끊었을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욕적으로 들릴 뿐입니다.”

    이준은 짧게 일축했다.

    “나 거짓말 하는 사람 싫어해요.”

    최 전무가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케이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잘 말린 담배가 들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담배처럼 보이는 마리화나였다. 이것을 알아 볼 수 있는 까닭은 역시, 이준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랑 잤잖아. 미국에서.”

    최 전무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를.

    그는 과학고 출신으로 19살 때 대학 새내기가 되었는데, 그때 교양 때문에 관람했던 연극을 시작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관심에 불과한 수준이었고, 그는 공부만 하고 자랐던 학생답게 공부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전공이 썩 적성에 잘 맞는 것은 아니었다. 과학고에 진학했던 당시까지는 제 적성에 딱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학교에 입학해서 하는 공부는 재미가 없었다. 물론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과학고 학생들이 그랬다. 1학년 과목에 어려움을 느낄 만한 실력들은 아니었다. 쉬운 공부라면 설렁설렁 하고 노는 데에 몰입할 만도 하건만, 이준은 그것도 싫었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었다.

    그러한 이준의 고민을 알고 있는 부모님은 1학기 정도 교환학생을 가 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물론 거기 가서도 공부를 해야겠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경험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말했다. 이준 역시 차라리 그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교환학생에 지원했고, 합격하여 곧 UCLA로 떠났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말이 좀 안 통하는 때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다 알아들었다. 학술 영어는 어려웠지만, 못 알아 듣는 말이 그리 많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럭저럭 잘 지냈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 한두 주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외국어로 한다고 해도 적성에 안 맞는 것은 안 맞는 것이었다.

    그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저녁마다 작은 술집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바텐더와 꽤 친해졌다. 하소연을 하면 다 들어 주고, 맞장구도 꽤 잘 쳐 주었다. 이제는 공부하는 것보다는 그 바텐더와 떠드는 게 더 좋아서, 밤새 그와 이야기하고 놀다가 학교에 출석하지 않은 것도 부지기수였다. 집에서 이따금 잘 지내느냐고 연락이 왔지만, 숙취에 절어 받지 못할 때에는 “밤새 공부하고 이제 잠 들었어요.” 하고 거짓말을 했다.

    바텐더와 한참 어울리다 보니 그가 자주 피우는 마리화나에 관심이 생겼다. 원래부터 흡연자였던 이준에게는 마약이라는 바운더리만 깨면 그것을 피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평생을 모범생으로만 살았던 이준에게 때늦은 ‘탈선’에의 유혹은 꽤 강렬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준은 끝까지 모른 체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대놓고 퇴폐적으로 놀았던 것도 아닌데.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만 제외하면 그저 공부 안 하는 게으른 학생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이준은 늘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하곤 했다.

    제가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바텐더뿐이었다. 그리고 그 바텐더는 죽었다. 그러니 이준이 의도적으로 은폐하지 않아도 스스로 입만 닫고 있으면 그 사실은 드러날 수가 없었다. 가끔 불안할 때도 있었지만, 곧 기우라고 생각하며 내려놓았다. 소속사 대표에게도 그래서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제가 미치지 않고서야 ‘난 사실 마약을 했습니다.’ 하고 공석에서 말할 리도 없거니와, 앞으로는 마약에 손 댈 일이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대표에게 미안한 점이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고 스스로 몇 번이나 자위했다.

    그런데 지금.

    “담배 피워요?”

    “……예.”

    “그럼 한 대 피워요.”

    최 전무가 케이스에서 대마초를 하나 꺼낸 후, 이준의 앞으로 밀어 주었다. 한 번도 마약을 접해 본 적이 없다면 피우기 전까지는 구별할 수 없는 생김새이었다. 이준은 고개를 들어 최 전무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느새 불을 붙이고 연기를 뱉고 있었다.

    “제가 피우는 게 따로 있어서요.”

    “왜, 이거 담배 아닌 것 같아서요?”

    “……전무님. 저한테 원하시는 게 뭡니까? 대체 왜 계속 무례한 말씀과 행동을 하시는 겁니까.”

    “강이준 씨. 난 눈썰미가 좋아요. 한 번 본 사람 잘 안 잊어버리지.”

    최 전무는 머리를 쓸어넘기며 이준과 눈을 마주쳤다. 이준은 알 수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거의 빈사상태가 될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고, 마리화나를 너무 많이 피워서 제정신도 아니었고, 무어라 말을 하기는 했지만 무어라 말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없는 와중에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던 것만 생각났다. 백인이었는지, 흑인이었는지, 동양인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 강이준 씨 브리핑에서 봤을 때는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고 생각했었죠.”

    최 전무는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는 클리어 파일을 열었다. 소속사에서 공개한 그의 정보와 프로필 사진 몇 장이 인쇄되어 있었다.

    “사진이 실물을 다 못 담네요.”

    “전무님.”

    “난 궁금한 걸 잘 못 참아요. 어디서 봤을까 생각도 해야겠고, 직원들이 강이준 씨를 워낙 모델로 밀어서 영화 한 편 봤어요. 연기 잘하던데?”

    그 문장 자체는 칭찬이되 목소리와 합쳐지면 좋게 들리지 않았다. 이준은 여전히 당황으로 뭉친 얼굴을 풀기 위해 계속 안면근육에 힘을 주었다. 그래도 배우인데, 표정관리는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영화에서 있었던 키스신을 봤는데. 그때 갑자기 생각난 겁니다.”

    “…….”

    “저 사람과 키스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딱 떠오른 거예요.”

    술에 완전히 취해 필름이 끊겼음에도 단편적으로 한 장면 한 장면, 마치 사진처럼 생각나는 감촉들이 있었다. 온통 어두웠던 방 안, 그리고 제 골반을 세게 쥐었던 악력, 몇 번이고 사정하며 느꼈던 오르가즘. 그리고 울면서 했던 말 몇 마디. 최 전무는 그 모든 기억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이냐고 물었을 때, 처음이라고 계속 그랬죠. 여자랑도 안 해 봤다고.”

    “…….”

    “그래서 내가 처음인데 이렇게 잘 벌어지냐고 물어 봤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너무 좋아서 그런가 봐요. 어색한 영어로 그렇게 대답했다.

    “이제 기억나나 봐요. 얼굴이 빨개졌네.”

    그 말에 이준이 마른세수를 했다. 그의 말처럼 얼굴에 체온이 다 몰려 있었다. 저 사람이 더 이상 떠들지 못하도록 무어라 대응을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도저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본래도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그가 말을 그만두게 할 몇 문장 정도는 뱉을 수 있을 텐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날 잘 벌어지던 친구는 왼쪽 목덜미에 점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기억나요. 크기도. 그게 귀여워서 내가 많이 빨아 줬거든.”

    최 전무의 시선이 이준의 왼쪽 목덜미로 향했다. 셔츠 칼라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고개 오른쪽으로 기울여 볼래요?”

    이준은 의식적으로 목덜미가 드러나지 않도록 어깨를 움츠렸다. 말로 맞설 수 없다면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게 차라리 나았다.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잇는 최 전무의 눈에는, 이준이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이 아닐 것이다. 20살의, 옷을 다 벗은 채로 울며 헐떡이는 어린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전무님. 그만 가겠습니다. 저는 오늘 HS 자동차 CF 건으로 미팅을 하러 온 겁니다. 전무님에게 음담패설을 들으러 온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술을 드신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술이 과하셨던 거라고 생각하고 오늘 일은 잊겠습니다.”

    이준이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앞이 시커멓게 변하는 것 같았다. 평생 무덤에 혼자 가지고 갈 비밀이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설사 이야기가 돌게 되더라도 스타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서 누군가가 루머를 퍼트리는 것이라고 치부해도 될 정도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준에게는 그런 터무니없는 뜬소문이 조금씩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그만두고 싶어졌다. 마약을 했다는 것도, 그날 그렇게 남자와 섹스를 했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도 가까이 있지 않은가. 다 때려치우고 은둔하고 싶어졌다.

    “녹음기.”

    “…….”

    “녹음기 떨어트렸어요. 펜처럼 생겼네요.”

    그 말에 이준은 그만 다리에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불순한 목적으로 녹음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배우 혼자 들어가는 데 중요한 이야기들 다 놓치고 올 것 같아서, 나중에 녹취록을 들으면서 계약 건을 정리하려고 대표가 준비해 준 것뿐이었다. 대놓고 녹음하겠다고 하면 그쪽에서 불쾌하게 여기고 이준을 나쁘게 볼까 봐 그냥 몰래 주머니에 넣어 놓기만 한 것이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전무님.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최 전무는 대답하지 않고 그저 이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해를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이준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아마도 저와 오래 전 잠자리를 했던 남자라고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가 무슨 행동을 하든 우습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준은 가까스로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불쾌하시다면 녹음은 모두 지우겠습니다.”

    “내가 불쾌하지 않아도 지워야할 텐데요.”

    “…….”

    대답하지 않고 녹음기를 줍는 이준을 최 전무는 계속해서 시선으로 좇았다. 그가 있는 쪽을 보고 있지 않아도 그 시선이 느껴졌기에 이준은 고개를 돌리고 싶지 않았다.

    “……이건 데이터를 지우고 부숴서 버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이준은 녹음기 상단에 delete 버튼을 꽉 누르며 재빨리 대답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마치고 방을 나서려고 했다.

    “있네요.”

    “…….”

    “왼쪽 목덜미에 점.”

    이준은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덮었다.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그가 확인한 뒤에 가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고 손을 내렸다. 굳이 직접 보지 않아도 포털에 이름으로 이미지 검색만 돌리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렇게 무의미한 행동을 하게 만든 것이다. 오히려 가리려고 하는 것이 더 의심스럽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는 체 말아 달라, 숨겨 달라 부탁해야 하는 걸까. 무언가를 부탁하는 사람은 반드시 작아지게 되어 있다. 상대방의 약점 하나 쥐지 못한 채로 당당한 부탁은 할 수 없다. 이준은 다시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차분히 착석했다.

    “9년 전의 일입니다. 전 그때 많이 취해 있었고, 그래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흠결 있는 이가 흠결 없는 척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누군가 한 명 쯤, 나는 네 과거를 안다고 말해 주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자위는 늘 그런 식이었다. 이왕 벌어진 나쁜 판이라면 차라리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것 말이다. 최 전무도 생각이 있으면 이것을 공개적으로 터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 전무의 행적까지 같이 공개되고, 그 역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연예인 아닌 기업인이라고 해도 HS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합하는 그라면.

    세상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최태한의 얼굴은 한 번씩은 보았을 수밖에 없다. 그가 지금 HS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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