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검색

필로우 토크 샤오즈키 새우깡 아마긴 One step 파경 leefail 스올시티 체리슈슈 불건전 삼촌 극야 Layer spindle 하얀나비 역린 찬스 텐시엘 이지환 로맨스

[헤이어] 푸른 용의 마법사 1-2 - 1

  • [헤이어] 푸른 용의 마법사 1-2.txt (811kb) 직접다운로드

    푸른 용의 마법사

    희고 얇은 달이 뜬 밤이었다. 린테이어의 젊은 여왕 아이레느 벨라 테이어는 어쩐지 오지 않는 잠에 발코니로 나왔다. 한 겹으로 느슨한 잠옷이 밤바람에 살며시 흔들렸다. 길게 늘어진 은발을 어깨 뒤로 젖히며 그녀는 가느다란 숨을 내쉬었다. 어두운 밤을 올려다보며 묘한 감상에 빠진 그녀의 귀에 갑작스런 밤인사가 들려왔다.

    “좋은 밤이에요, 여왕님.”

    아이레느는 반사적으로 흠칫거리며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발코니의 좁은 난간에 위태로이 서있는 젊은 청년. 밤처럼 검은 그의 눈동자가 붙임성 좋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 태평한 미소에 아이레느의 표정이 짐짓 굳어졌다.

    “이봐요, 세르. 야밤에 여왕의 침실을 무단침입 하다니. 굴지의 대마법사라 해도 실형이에요?”

    세르는 아하하, 하고 곤란하게 웃었다.

    “그것만은 봐줘. 이제 곧 가야 하니까.”

    “가다니, 어딜 말이지요?”

    그녀의 물음에 세르는 잠시 침묵하다가 어딘지 모르게 허무한 미소를 띠었다.

    “작별인사를 하러 온 거랍니다, 나의 여왕님.”

    “말해요.”

    “친구를 되찾으러요.”

    아이레느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그녀는 세르가 서있는 난간으로 바싹 다가서며 호통에 가까운 어조로 단언했다.

    “힐페리어는 이미 죽었어요!”

    그래, 죽었다. 무척이나 강하고 아름다웠던 푸른 용은 인간들의 공포와 탐욕 아래 목숨을 잃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신체는 각국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영혼은 심연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세르는 아이레느의 굳건하지만 희미하게 떨리는 눈동자를 애정을 담아 내려다보았다. 아직 어린 소년 때부터 자그마한 연정을 품었던 사랑스러운 그녀다. 그때는 평민이었던지라 조용히 접어야할지 고민하며 괴로워했던 마음이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이룰 수 있었다. 대마법사로서의 힘과 명성은 가장 높은 신분을 지닌 여인의 옆자리라도 동등하게 설 수 있을 정도니까. 하지만.

    가장 사랑스럽고 소중한 여자는 눈앞의 여왕이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다. 자신 때문에 목숨까지 내놓은 소중하고 소중한 친구.

    세르는 여왕의 뺨에 가만히 손끝을 가져다대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아이레느는 놀람보다 안타까움이 강한 얼굴을 해보였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남아요! 세르, 나는-.”

    “하지만 저는 힐페리어를 선택했습니다.”

    아이레느의 말을 막아서는 단호한 음성이었다.

    “저를 미끼로 해 그를 살해한 자들에 대한 복수심은 오래전에 접었습니다. 지금의 저라면 아직 약했던 그때완 달리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보복이 가능하겠지요. 하지만 수명을 깎아가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은 복수 때문이 아닙니다.”

    세르의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 셋이다. 대마법사라는 것 자체도 수백 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한 존재였지만 이토록이나 젊은 나이라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평범한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니, 뼈를 깎는 노력에서도 이루기 힘든 경지였다. 게다가 8년 전만 해도 그는 정식 마법사도 아닌 희망만 비치는 수련생이었다. 어쩌다 여러 가지 일에 휘말려버리긴 했지만 원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그런 세르의 과거를 알고 있었기에 그의 각오의 굳건함을 짐작할 수 있었던 아이레느는 입술을 슬프게 닫은 채 눈을 숙였다. 세르는 난간 위에서 한쪽 무릎을 꿇어 그런 그녀의 이마에 살짝 키스했다.

    “그 녀석, 다시 데리고 와야지. 걱정하지 마, 아이렌. 반드시 함께 돌아 올 테니까.”

    “…….”

    우는 듯 어깨를 약하게 떨던 아이레느가 갑자기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보다 약간 위에 있는 세르의 뺨을 향해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렸다. 따귀도 아니고 주먹이다. 여린 여성의 힘이라지만 방심한 남자를 휘청이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다. 십 수 미터 아래로 떨어질 뻔 한 세르가 붉어진 뺨을 감싸며 울상 지었다.

    “아, 아이렌! 여기서 떨어지면 죽는다고!”

    “대마법사님이? 자살이라도 하려 들지 않는 이상 그럴 리 없잖아!”

    버럭 소리친 그녀가 뺨을 감싼 세르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겹쳐진 손의 온기에 세르의 눈동자가 쑥스럼을 감추지 못하고 슬쩍 맴을 돌았다.

    “걱정은 안 해요. 세르라면 어떻게든 해낼 테니까.”

    상냥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미소 지었다.

    “방금 그건 멋진 여자를 뻥하고 걷어 찬 것에 대한 보답. 남자에게 지다니, 충격이라고요.”

    “거, 걷어차다니….”

    우왕좌왕하던 세르가 몸을 일으켰다. 요요히 흐르는 달빛이 그의 등을 적셨다.

    “그럼, 다녀올게.”

    “…네. 무사히.”

    지금부터 세르가 어떠한 방법으로 힐페리어를 부활시킬지는 그녀로선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죽은 자를, 그것도 영혼조차 심연에 떨어진 자를 되살리는 일이다. 아이레느는 등을 돌리는 세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양손을 꽉 쥐었다. 다녀온다고, 말했지만…… 이번 생에서 다시 그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기어이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지막 용이 사라지고, 천년의 세월이 조용히 흘러지나갔다.

    아득한 옛날, 천 년 전의 세계에는 용이라 불리우던 생명체가 존재했다. 누구보다 강하며 고고하고 아름다웠던 종족. 하지만 그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멸족당했다. 그들의 힘이 낳은 공포와 그들의 육체가 낳은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그러나 인간들은 용 종족의 분노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용이 사라지고 수백 년 간 어마어마한 고가에 거래 되던 용의 사체로 만들어진 물품들. 그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작은 용으로 변화했다. 사체의 일부에서 태어난 용들은 원종보다는 훨씬 작고 약했지만 인간보다는 강했다. 또한 그들은 원종과 달리 인간들처럼 무리를 짓고 교활하게 움직였다. 새로운 용 종족이 처음 태어나서 한 일은 사체로 만들어진 물품의 주인들을 하급 용종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용의 사체로 만들어진 물품은 엄청난 고가였고, 당연히 신분도 재력도 높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다. 상인, 영주, 귀족, 왕족에 일국의 왕까지. 새로 태어난 용 종족을 죽이고 무사할 수 있었던 나라도 많았지만 그러지 못한 나라도 상당수였다. 그렇게 용의 손에 떨어진 나라와 인간의 나라 간의 오랜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화의 불길이 타올랐다 꺼지길 반복한 수백 년. 원종 용이 사라지고 천년의 세월이 흐른 이 세계에 푸른 용이 태어났다.

    린테이어의 왕성에는 외따로 떨어진 탑이 하나 있었다. 그 탑의 길고 긴 계단을 올라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맨 꼭대기의 방은 대대로 왕족을 유폐하기 위한 감옥으로서 사용되어졌다. 큰 죄를 저질렀지만 신분 상 평범한 감옥에 가둘 수 없는 왕족을 위한 탑. 그곳은 십여 년 전부터 한 명의 어린 주인을 쭉 품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 흑색은 불길한 색이라 하지만 그래도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일국의 왕의 장자, 훗날 왕위를 이어받을 왕세자로 태어난 아이의 작은 등에는 새카만 한 쌍의 날개가 붙어있었다. 용종과 인간의 혼혈인 용인종. 그것도 죽음을 부른다는 검은 용인이었다.

    고귀한 왕비는 순식간에 저주받은 용과 정을 통한 창녀로 매도되었다. 허나 대대적으로 알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아이를 보고 미쳐버린 그녀는 왕비의 자리를 빼앗기고 목숨만 살려 먼 시골 별장에 조용히 유폐되었다. 죄의 증거인 용인종의 왕자 또한 감추어야만 했다. 왕은 어미의 광증이 왕자에게도 옮겨갔다 발표했다. 광증 역시 수치스러운 병명이었지만 불륜으로 인한 저주받은 검은 용인종이라는 사실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리하여 본디 왕이 되었어야 할 아이는 계승권을 박탈당하고 왕성의 외탑 꼭대기 방에 갇히게 되었다.

    창살이 쳐진 창이었지만 손을 내미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저주받은 왕자인 세르네긴 벨라 테이어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지나가는 바람을 조심스레 끌어당겼다. 하지만 바람은 창살 사이를 통과하지 못하고 흩어져버렸다. 세르네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여기서 발목 잡힐 줄은 몰랐는데.”

    자신이 만든 감옥에 자신이 갇히게 되다니. 린테이어의 외탑은 사실 천 년 전 대마법사라 불리우던 세르가 만든 감옥이었다. 소중한 친구이자 연인이 될 수도 있었던 여왕의 삼촌, 대공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고위 마법사인 그를 가두기 위해 특별히 결계를 친 탑이다. 원래라면 극형에 처해야 했을 터지만 아직 여린 마음이 남았던 여왕이 어릴 때부터 잘 따랐던 삼촌을 차마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대마법사가 고위 마법사를 확실히 가두기 위해 만든 탑이다. 당연하게도 왕년의 대마법사 쯤 되지 않는다면 빠져나가기란 불가능했다. 세르네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너 살 즈음부터 떠오르기 시작한 옛 기억은 이제 완전히 되찾았다. 그러니 마법사로서의 지식은 이 탑을 만들 때, 아니 그 이상의 수준이었지만 몸이 그걸 따라잡지 못했다. 지금 세르네긴의 나이는 과거로 치면 겨우 마법의 길에 입문한 열다섯 소년이다. 물론 지식의 수준이 현격히 다른 이상 그때보다야 훨씬 나았지만 기껏해야 좀 뛰어난 정식 마법사 수준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과거처럼 금술을 써 생명을 깎아가며 수련해야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목숨을 오래오래 보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에휴.”

    그걸 감안하자면 언제쯤 이 탑에서 벗어 날 수 있을는지. 아마 못해도 삼사십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즉 이전을 포함 오십년 가량 좁은 탑에 갇히게 된 형편이지만 세르네긴은 답답함만 제외하자면 별 불만이 없었다. 아니, 불평을 늘어놓을 자격이 못되었다. 자신이 한 짓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을 생각하자면 인간들에게는 그를 가두어 벌줄 이유가 충분하고도 남았으니까. 물론 자세한 사실을 아는 자는 지상에는 없다. 그래도 죄책감은 있었기에 세르네긴은 얌전히 감금생활을 받아들였다. 사실이 알려졌다간 감금이 아니라 오체분시라도 당할 테니까.

    세르네긴은 창살 너머의 새파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빨리 만나고 싶었는데.”

    천년을 기다렸는데 수십 년을 못 기다리겠느냐만, 그래도 애가 타는 것은 사실이다. 이곳만 빠져나갈 수 있다면 한달음에 달려 갈 텐데. 물론 우선 어디 있는지부터 찾아야 하겠지만 세계를 다 뒤진다 하더라도 수년이면 충분하다. 창가에 들러붙어 있던 세르네긴은 비척비척 침대로 가 엎어졌다. 감옥이라곤 하나 왕족만 가두는 곳이었기에 가구는 왕실 못지않게 호사스러웠다. 하지만 태생이 서민이며 왕족으로서의 대우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는 세르네긴으로선 되레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했다.

    “명색이 감옥인데, 이건 진짜 돈지랄이지. 아아, 심심해 죽겠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몇 없었다. 버림받은 왕족의 능력을 키워주고 싶지 않았던지 공부는 기본적인 몇 가지만 어렸을 때 가르쳐주곤 그걸로 끝이었다. 책도 들어오는 수가 한정되어 있었으며 마법을 쓸 수 없었기에 이미지 수련만 가능했다. 그나마 소일거리로 하는 것이 곁붙은 작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었다. 왕족이, 그것도 남자가 요리를 배운다는 것은 추문이 되면 추문이 되었지 득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쉽게 허락이 떨어진 덕이다. 하지만 주방에 드나드는 것도 타인의 감시가 있을 때만 가능했기에 평소에는 심심하기 그지없었다.

    세르네긴은 책장으로 걸어 가 가득 꽂힌 책들을 뺐다 넣었다 하기를 반복했다. 모두 한번은 물론이요 열 번은 넘게 읽은 것들뿐이다. 몇몇은 하도 읽어서 제목만 봐도 내용이 세세하게 떠오를 정도였다. 차라리 진짜 감옥에 갇혔더라면 기회 봐서 탈출할 수 있었을 텐데. 세르네긴은 이제껏 수백 번은 해왔던 내가 왜 이런 걸 만들었을까 또는 좀 느슨하게 만들걸 하는 후회를 또다시 곱씹었다. 아니면 만약을 대비해서 탈출구 하나쯤은 만들어 뒀어야 하는 건데.

    “아이렌, 여왕님, 살려줘요오…….”

    세르네긴은 지금은 없는 사랑하는 그녀를 그리워하며 다시 침대 위에서 흐느적거렸다. 나 이 나라의 천 년 전 여왕님의 남편 될 뻔 한 사람이야! 라고 말해봤자 미친 놈 취급만 당하겠지. 그녀가 이 꼴을 봤더라면 얼마나 비웃었을까. 고고한 여왕님의 자태로 품위 있게 비웃었을 것이다. 그래도 꺼내주긴 할 터인데. …아니, 며칠쯤은 놀리며 가둬두려나.

    -똑똑

    그때 나직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세르네긴은 의아해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가 올 시간이 아닌데. 탑에 갇힌 몸으로서 시간 외의 누군가의 방문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 대부분이었다.

    “들어오세요.”

    세르네긴은 떫은 표정을 지으며 들어오라 말했다.

    왕성의 외탑에 갑작스런 방문이 있기 하루 전. 린테이어 왕성에 타국의 사신이 찾아왔다. 현 세계의 정세는 다섯의 용의 나라를 통합한 용국 시에멘, 그 시에멘과 동맹을 맺은 일곱의 용의 나라와 나머지 인간의 나라가 대치중인 상황이었다. 허나 용국 시에멘의 국력이 다른 나라들을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강력했기에 인간측이 먼저 평화협정을 제시하고 나섰다. 다섯 차례에 걸친 평화협정 끝에 용국 시에멘은 인간측에게 향후 10년 간 먼저 전쟁을 선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약속해주었다. 대신 각국의 왕족을 볼모로서 시에멘에 보낼 것이며, 볼모인 왕족의 처분에 대해서는 설사 목숨을 앗아간다 하더라도 간섭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패국에게 내미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요구였으나 직계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하였기에 각 나라는 시에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지위 낮은 첩의 자식이나 실수로 태어난 왕족이야 어느 나라든 한둘쯤은 있을 뿐만 아니라 여의치 않으면 만들어 낼 수도 있으니까. 그런 왕족들은 얼마든지 제공 할 수 있는 버림 패였다.

    그리고 린테이어에는 태어날 때부터 버림받은 왕족이 한 명 있었다. 시에멘의 사신이 도착한 당일 이루어진 회의는 길게 끌 것도 없이 세르네긴 왕자를 볼모로 보낼 것을 결정했다. 그는 죽일 명분이 없어서 살려두고 있는 쓸모없는 패였으니까.

    린테이어의 왕 브로덴은 시에멘의 사신을 불러들였다. 시에멘의 사신은 용인종이었기에 왕실의 기사가 옆에 따라붙었다. 용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용종보다는 약했지만 용인종도 평범한 인간쯤은 무기 없이도 순식간에 살해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짐승의 발톱을 그 손에 드러내고 날개를 펼쳐 덤벼들면 아차 할 순간도 없이 상대의 목을 날릴 수 있기에 기사들은 검에 손을 댄 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사신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허리를 굽혔다.

    “린테이어의 왕을 뵙습니다. 어느 왕족을 본국에 보내시기로 결정하셨는지요. 대충 짐작은 가지만.”

    예의는 차렸으나 무례한 어조였다. 허나 약소국의 왕으로서 대국의 사신에게 조차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왕은 별 반응 없이 미간만 찌푸리고 말았다.

    “짐의 장자를 그대의 나라로 보내기로 결정했소. 내일까지 준비를 마쳐 줄 터이니 오늘 하루 여독을 풀며 편히 쉬시오.”

    사신은 과장되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린테이어 국의 적장자를 보내주시다니. 이야아, 이거 큰 결심을 하셨군요.”

    비꼬는 것이 분명한 감탄사에 왕이 헛기침을 짧게 내뱉었다. 사신이 나가고 나자 왕은 호위 기사를 가까이로 불러들였다. 알현실에는 두 사람 외엔 없었지만 왕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낮고 조심스러웠다.

    “시르도엔이네.”

    시르도엔. 그곳은 린테이어 국경 밖의 작은 도시로 시에멘 용국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길목이다. 호위 기사는 그 짧은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했다. 그곳은 바로 왕자를 살해 할 장소였다. 시에멘 용국으로 세르네긴 왕자를 볼모로 보내게 된다면 그가 용인종이라는 사실을 머지않아 들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작품 리스트

요청게시판

옵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