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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시즌]코드네임아나스타샤 2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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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de name anastasha 2

    솔로 콘트라베이스

    외톨이, 코시체이

    Hide and seek

    체크메이트

    Honey trap

    솔로 콘트라베이스

    "고작 이런 곳이 네 토굴인가?"

    느른하게 집무실 내부를 훑어보며 묻는다. 별 볼일 없는 것을 대강 둘러보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가히 작위적이다. 놈에겐 여전히 범상치 않은 느긋함이 흘러넘쳤다. 그 여유는 권택주의 담력을 좀먹는다.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울려대던 위험 신호는 이제 손끝까지 저릿저릿하게 점령해 나갔다. 온몸을 휘돌던 피가 삽시에 졸여지는 것 같다.

    "더 많이 팠어야지.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게."

    제냐는 비릿하게 중얼거리며 의자에서 몸을 뗐다. 그 순간, 굳어 있던 권택주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거린다. 크게 떠진 두 눈은 감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본능마저 억누르는 경악감에 속눈썹이 부르르 경련한다. 양쪽 귀 어귀에서 연방 시끄러운 사이렌이 울리는 듯하다. 실상 그것은 대사관의 담장 밖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는데도.

    뚜벅.

    놈의 걸음이 떼어진다. 놈은 성급히 굴지 않았다. 미소가 뒤섞인 눈동자로 권택주를 직시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왔을 뿐이다. 덜컥 숨이 막혀왔다.

    지금 달아나도 늦지 않는다. 전속으로 도망치면 놈의 손아귀에 잡히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담장 밖에는 무수한 경찰 병력이 포진 중이다. 그럼에도 이 순간을 견디느니 차라리 그들에게 포위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놈은 또 한 걸음을 좁혀왔다. 송곳처럼 꼿꼿이 일어선 청각세포가 그 발걸음소리를 유난히 크게 빨아들인다. 쿵. 쿵. 한순간 멎은 듯했던 심장이 미약하나마 육중하게 뛰기 시작했다. 맥박은 변죽을 부리며 극렬히 날뛴다. 도무지 정신을 온전히 붙들고 있을 수가 없다.

    놈이 막 한 걸음을 더 떼려던 찰나였다.

    탕.

    말끔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어떤 예고도 없이 가해진 일격이었다. 움직이지 말라든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사전 경고가 먹힐 대상이 아니다.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놈에겐 아무런 위해도 끼치지 못했다. 정확이 놈의 머리를 겨냥했지만 총탄은 뒤쪽 벽에 가서 박혔다. 고개를 살짝 트는 것만으로도 총탄을 피한 놈이 히죽 웃는다. 권택주는 가늘게 떨리는 총신을 꽉 움켜쥐고 또렷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가까이 오지 마."

    그러자 제나가 보란 듯이 한 걸음 더 다가온다. 놈의 얼굴이 이제 어쩌겠느냐는 조소가 어린다. 권택주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놈 쪽으로 돌려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이를 물며 으름장을 놓듯 한 발만 더 와라, 한다.

    "이 사진, 전송해버릴 테니까."

    덧붙여진 협박에 제냐의 시선이 휴대폰 액정으로 옮겨진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 잘 보이진 않았으나 익숙한 느낌의 방 내부 사진이 찍혀 있는 듯 했다. 틀림없었다. 그 사진은 '아나스타샤'의 설계도를 파노라마로 촬영한 것이다. 권택주의 검지 끝은 이미 전송 버튼에 닿아 있었다.

    사진은 180도 파노라마 형식으로 설계도의 절반만 촬영한 것이며. 나머지 절반은 살만이 가지고 있다. 권택주가 한국 행 비행기에 무사히 오르게 되면 마저 전송해주기로 약속했었다. 살만이 받은 또 하나의 지시가 임무 완수 후 권택주를 제거하는 것이었으므로 목숨 부지의 수단으로 강구해낸 방법이다. 그걸 여기에서 이렇게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위협이 먹힌 건지 네나는 더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약점을 잡힌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당황하거나 크게 놀란 것은 아니다. 그저 놈은 긴장한 권택주를 물끄러미 응시했을 뿐이다. 그러다가도 곧 가소롭다는 듯이 픽 웃어 버린다. 놈이 느긋하게 팔짱을 끼며 권택주에게 물어왔다.

    "그게 '아나스타샤'의 설계도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거지?"

    느닷없이 제냐의 질문에 권택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찍힌 사진 자체가 '아나스타샤'의 설계도인데 무슨 증명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의문 가득한 권택주의 얼굴을 즐겁게 보며, 놈이 부연해 말했다.

    "네가 날려버린 방이 실은 '아나스타샤'의 설계도였다는 걸 아는 자는 거의 없어. 기껏해야 나와 내 혈육 정도지. 그들이 순순히 '아나스타샤' 설계도를 도난당했다고 인정할 것 같나? 그렇게 순진하진 않거든, 그 인간들이. 물론 도망친 네 진짜 동료가 '아나스타샤'를 손에 넣었다고 떠들고 다닐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의 말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출 거라고 생각하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호시탐탐 러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암적 무리의 수장인데 말이야. 도리어 이 나라의 권위를 깎아내리려는 수작으로 치부되고 말 거다. 그러면 비밀을 폭로할 딱 한 사람이 남는데…… 그것도 걱정할 필욘 없지. 그 한 놈은 결코 여기에서 살아나가지 못할 테니까."

    깔아보는 놈의 시선에 그 한 놈이 누구인지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 콜트를 쥔 권택주의 손에 더 바싹 힘이 들어간다. 힘의 우위를 점한 놈이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권택주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껏 여유를 부리는 놈을 비웃으며 침착하게 응수해 주었을 뿐이다.

    "설계도가 폭파되고 유출되는 게 정말 아무 일이 아니었으면 네놈이 여기까지 달려오지도 않았겠지. 그게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자가 거의 없었다는 건 그것의 실존 여부를 확인한 사람도 없단 거잖아. 그런데도 단지 네놈 손에 설계도가 있다는 소문 때문에 날 경외했던 거라고, 이 나라가. 만약 네가 설계도를 도난당했더라는 소문이 돌면 어떻게 될까. 네놈 말대로 믿지 않는 자가 대다수겠지. 하지만 네 입지도 지금 같지는 않을 거야. 말이라는 게 무서운 거거든. 계속해서 돌다보면 없던 것도 만들어내고 허구도 진실로 굳혀 버리지. 네놈이 신나서 지껄였던 아나스타샤 황녀처럼 말이야."

    "재미있군. 하지만 그 상황을, 네가 지켜볼 수나 있을까, 몇 분, 몇 시간 후의 미래를 생각하기 전에 당장 몇 초 후의 일이나 걱정하지 그래?"

    "내 걱정이라면 붙들어 매. 죽더라도 혼자는 안 죽어."

    권택주가 휴대폰을 다시 자신 쪽으로 당겨오며 대꾸했다. 새카만 눈동자가 옅은 경계심과 함께 어떤 투지가 치솟는다. 제냐가 미동이라도 보이면 곧장 어떤 행동을 개시할 것처럼, 모든 감각 세포가 온전히 그의 동태에 집중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마저 잊었다. 장난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지켜보던 제냐에게서 또다시 피식 실소가 터진다. 지금까지와는 엄밀히 그 의미가 다른 웃음이었다. 그의 긴 손이 허공으로 느슨하게 뻗어진다. 까딱까딱, 문제의 사진이 담긴 휴대폰을 요구하는 손끝이 거만하게 움직인다. 권택주는 어깨를 굳히며 발을 반발자국쯤 뒤로 뺐다. 두 개의 시선이 틈 없이 맞물린다. 끊어질 듯한 긴장감과 무언가 기어이 터질 듯한 압박감이 팽팽히 대립했다.

    두어 번 까딱여지던 제냐의 손끝이 돌연 움직임을 멈춘다. 그와 동시에 시종일관 실실거리면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걷혔다. 또 나왔다. 놈 본연의 자아. 놈의 매끈한 이마 옆쪽에서 전에 없던 핏대가 불끈 일어선다.

    이윽고 놈은 권택주의 날 선 경고를 무시한 채 성큼성큼 다가왔다. 황당해 물러섰지만 둘 사이의 거리는 급격히 좁혀졌을 뿐이다. 등 뒤로 벽이 툭 와닿은 순간, 휴대폰의 전송 버튼이 눌린다. 전송 완료를 알리는 특유의 발신음이 들리자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던 제냐가 잠시 멈칫한다. 얼결에 전송 버튼을 누른 권택주도 놀라 굳었다.

    "……."

    "……."

    주변의 소음이 완전히 증발된다. 그 자리에 숨 막힐 듯한 긴장이 자리 잡았다. 제냐에게서 목숨을 보존해줄 생명줄이 부질없이 사라져 버렸다. 최후의 패를 놈에게 보였으니 이젠 양쪽이 파국으로 치닫는 치킨게임만이 남은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제냐의 마지막 신경줄도 툭 끊기고 말았다.

    저벅. 저벅. 저벅.

    놈은 망설임 없이 권택주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실제로는 다소 큰 보폭으로 걸어왔을 뿐인데 풍기는 위압감이 저절로 그리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목덜미를 물어뜯길 것 같았다는 거다. 생존에의 위협을 느낀 권택주가 연달아 콜트의 방아쇠를 당긴다.

    타앙, 탕.

    총구에서 튕겨나간 탄환이 제냐를 향해 빠르게 날아든다. 그러나 놈은 큰 움직임 없이 - 고개를 슬쩍 들거나 옆으로 조금 비껴나는 것만으로 - 파고드는 총탄을 피했다. 몇 발을 쏴도 마찬가지다. 마치 총탄이 솟구칠 방향을 미리 아는 것처럼. 놈은 매순간의 위기를 가뿐히 모면했다. 그리곤 점차 경악스럽게 구겨지는 권택주의 얼굴을 관조하여 거들먹거린다.

    "몇 발이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끝을 보는 게 좋을 거야."

    탕. 탕. 탕.

    제냐의 여유 만만한 충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긴다. 연달아 튕겨진 탄환은 무심하게도 놈의 머리카락이나 옷깃을 스칠 뿐이다. 그 사이 놈과의 거리가 숨 가쁘게 줄어들었다. 급기야 전방의 시야가 놈의 모습으로 꽉 차오른다.

    권택주는 황급히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탄환이 채 발사되기도 전에 총부리가 덜컥 놈의 손에 붙들린다. 삽시에 총구를 허공으로 쳐들렸다. 연달아 깔끔한 총성 한 발이 울려 퍼지며 천장의 마감재 일부가 후드득 떨어진다.

    놈의 짙은 그림자가 일거에 권택주를 집어삼켰다. 놈에게서 풍기던 특유의 체취가 물씬 짙어진다. 제 존재감을 과시하듯, 매캐한 냄새는 콧속 점막을 진득하게 점령해나갔다. 그대로는 질식할 것 같아 고개를 들었다. 숨마저 참는 권택주를 고요히 굽어보며 놈이 말했다.

    "벌을, 받아야겠지."

    어절 사이에 부러 겨를을 둔다. 히죽 입매를 들추며 웃는 놈의 두 눈에 비상한 기대감이 꿈틀거렸다. 불길한 예감이 어지러이 흐려진 머리를 날카롭게 꿰뚫는다. 온몸에 파릇하게 소름이 돋아났다. 그 순간, 놈의 손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다음에 일어날 사태에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몸이 캐비닛으로 날아가 가차 없이 처박힌다.

    쿵.

    "……으윽."

    캐비닛 위에 꽂혀있던 파일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격하게 충돌한 등이 두 가닥으로 쏘개어지는 것만 같다. 권택주는 나직이 신음하며 두 다리를 버르작거렸다. 어서 일어나야 하는데 몸이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경찰 인력을 따돌리던 와중에 접질린 발목에서 지끈한 통증이 올라왔다.

    떨어진 콜트를 찾아 서둘러 바닥을 더듬었지만 무심한 놈은 맞은편 벽까지 굴러가 있었다. 덜컹거리는 캐비닛에 의지해서라도 억지로나마 일어서려 해봤으나 어느새 다가온 제냐의 그림자가 단숨에 덮쳐왔다. 놈은 구둣발로 권택주의 오른쪽 어깻죽지를 꽉 짓밟았다.

    전신이 캐비닛으로 가감 없이 밀쳐진다. 한순간 어깨 위로 묵직한 정이 와서 처박힌 듯했다. 벗어나기 위해 놈의 다리를 밀쳐냈으나 눌린 어깨에의 압박만 강해졌을 뿐이다. 가해지는 힘이 조금만 배가돼도 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다. 저절로 이가 악물린다. 고통에 겨운 권택주에게 대고, 제냐는 마치 노래라도 부르듯 한들한들 속삭여 물었다.

    "뭘 그렇게 얼어 있지? 이 정도 각오도 없이 벌인 짓, 아니잖아?"

    "……크윽, 순전히 네놈의 오만이 자초한 결과다."

    태연자약하게 대꾸하며 어깨를 마구 짓뭉갠다. 관절이 뒤틀리는 통증에 권택주의 미간이 왈칵 일그러졌다. 어느덧 이마는 땀에 흥건히 젖었다. 견갑골이 위태롭게 휘어져 부들부들 떨려왔다. 악 다문 이가 서로 맞부딪치며 연거푸 딱, 딱 소리를 냈다.

    뒤틀린 뼈와 관절이 한계에 다다랐을 무렵, 제냐의 구둣발이 떨어져나간다. 그러나 다음 순간, 권택주의 중심부가 꾹 압박됐다. 악어의 주둥이를 연상하는 구두코가 그의 남근을 마구잡이로 짓이긴 것이다. 한껏 젖혀졌던 권택주의 상체가 급격히 앞쪽으로 움츠러들었다.

    "크학……."

    "그런 깜찍한 짓은 저지를만한 인사가 아니라고 단언했는데. 정정해야겠군."

    어절 하나, 하나를 내뱉을 때마다 가해지는 압력이 증가된다. 권택주의 몸도 덩달아 수그러졌다. 두 손으로 다급히 제냐의 구두를 붙들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잔뜩 짜부라진 남근이 그대로 터질 것만 같았다.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선다. 숨은 너끈히 쉬어지질 않았다.

    제냐는 표정 없는 얼굴로 권택주의 샅을 잘근잘근 짓뭉갰다. 고통을 삭이려는 목덜미에 굵직한 핏대가 일어선다. 얼굴은 터질듯이 달아올랐다. 상황의 위급함을 퍼뜩 깨달은 이성이 생존 본능을 단숨에 밀쳐냈다. 권택주는 제 샅을 마구잡이로 짓이기던 제냐의 정강이를 힘껏 후려쳤다. 참기 어려운 고통이 달려들었을 텐데도 놈을 끄떡하지 않았다. 다만 느긋하게 웃고 있던 얼굴을 급격히 굳혔을 따름이다.

    빠악.

    그 직후 엄청난 소리와 함께 권택주의 얼굴이 돌아간다. 탁하게 터진 토막의 날숨이 비릿한 피 냄새가 뒤섞였다. 동시에 온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주르륵 빨려 나갔다. 약간의 저항도 허락하지 않는 무자비함에 일순 대항할 의지를 잃었다.

    잠시 허공으로 들렸던 구둣발은 이내 권택주의 하복부로 내려앉았다. 뾰족한 구두코에 셔츠 밑단이 걸린다. 제 발끝을 응시하던 제냐의 시선이 묘하게 꿈틀댄다. 좀 더 위쪽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그러자 구두 끝에 얽힌 셔츠가 볼룩해지며 단추 여밀 부위가 저절로 벌어졌다.

    "스파이 혐의는 기본이고 주택 무단 침입에 폭행, 테러, 절도, 공무원 사칭으로도 모잘라 공공기물 파손까지…… 다양하게도 들쑤시고 다녔군."

    권택주의 움직임을 뻔히 내다본 듯 죄명을 조목조목 열거한다. 내리뜬 시선은 한층 나른해졌다. 툭, 침입한 구두코에 의해 최대치까지 벌어졌던 셔츠 여밈 부위의 단추가 기어이 튕겨져 나왔다.

    일순 밑단이 헐렁해지면서 권택주의 매끈한 복부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제냐는 멈추지 않고 제 발길을 위로 들췄다. 힘겹게 들썩이던 복근을 지난 구두코가 명치에 닿는다. 셔츠 하단의 여밈 부위가 여지없이 꾸역꾸역 벌어졌다. 제냐는 터질 듯한 셔츠 밑으로 제 구두코를 좀 더 비집어 넣으며 비릿하게 중얼거렸다.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내 경고만은 주워섬겼어야지.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내 걸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그게 그렇게 어렵나?"

    툭, 또 하나의 단추가 날카롭게 튕겨 권택주의 턱을 때린다. 권택주는 눈을 치떠 제냐를 응시했다. 그러나 곧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제냐의 구둣발이 그의 가슴을 억누르며 올라왔기 때문이다. 덜컥 폐부가 압박되면서 숨쉬기가 녹록치 않다. 우악스레 짓밟힌 흉부에서 묵직한 통증이 연거푸 조달된다.

    투욱, 툭.

    서서히, 그러나 무지막지하게 올라오는 구둣발에 두세 번째 단추마저 연달아 떨어져 나간다. 이대로 놈이 발이라도 내차면 늑골이 골절되며 폐부를 누를 거다. 곧장 심장을 관통할 수도 있으리라. 삶과 죽음은 찰나의 경계에서 오고갔다.

    권택주는 연방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잠히 있었다. 배부른 호랑이가 흥미를 거두고 얌전히 지나가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런 권택주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제냐의 시선이 한없이 고요하다. 연방 번들거리는 눈동자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구두코는 이제 마지막 남은 단추를 위협하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떠밀린 단추가 부들부들 떨린다. 동시에 권택주의 속눈썹도 제어 없이 흔들렸다. 그 움직임을 좇던 제냐의 동공이 확 조여든다. 놈은 히죽 소리 없이 웃으며 한없이 다정한 어투로 속삭였다.

    "남의 껄 망쳐놨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지. 난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하거든."

    파앗.

    그때 마지막 단추가 튕겨져 나가며, 여밈 부위가 완전히 젖혀진다. 딱딱한 구두코는 삽시에 권택주의 턱에 쿡 닿아왔다. 자연히 턱이 들린다. 애매하게 시선이 엉겼다. 온갖 불안감을 가득 품은 눈동자로 자신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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