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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e]붕우유신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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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 붕우유신(朋友有身)

    으슬으슬 찬 기운이 몰려오는 시각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모두 덮고 나른하게 늘어질 때였다. 어둠을 틈타 소리 없이 다니는 삵처럼 한 남자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움직임에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은, 그가 조심스러워서가 아니었다. 행여 누가 볼까 두려워 살금살금 걸음을 딛는 짐승과 달리 남자는 들킬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발걸음에 소리는 나지 않지만 주위의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남자의 평소 걸음걸이도 그러한 모양이었다.

    남자는 천천히 곳간으로 향했다. 꽤 부유한 이 집에는 광만 네 곳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안쪽에 있는 광으로 간 남자는 분명 안주인이 가지고 있어야 할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끼긱거리는 문소리가 다소 거슬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안에는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아 감으로만 앞에 장애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남자는 그림자조차 없는 어둠 속에 가만히 서서 눈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으나 남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것이 남자가 밤에 몰래 이곳에 온 목적임이 분명했기에,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그것 또한 익숙한 듯 곧바로 남자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등 뒤에서 천천히 손을 뻗어 남자의 허리를 안았다. 남자는 서서히 조여 오는 힘이 불편하여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불쾌함을 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남자는 무언가에 대한 기대로 조금씩 몸이 달뜨기 시작했다. 남자의 뒤에 몸을 바싹 붙인 그것은 젊은 사내의 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은 남자의 허리를 억세게 끌어당겼다. 흑, 하는 소리를 신호로 사내의 숨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사내는 하반신을 남자의 뒤에 대고 비볐다. 천과 천이 버석거리며 비벼지는 소리에 남자는 감질이 나 서둘러 바지춤에 손을 댔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내도 거기에 맞춰 자신의 옷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살과 살을 맞대었다. 남자의 허연 살갗을 뚜렷하게 볼 수는 없지만, 손에 닿는 감촉은 어느 비단보다 부드러웠다. 또 그만큼 차가웠다. 밝은 태양 아래에서 볼 수 없는 남자의 맨살을 그저 느낌만으로 상상하며, 사내는 그 촉감을 마음껏 느꼈다. 자신이 닿을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었다. 남자는 한 번도 전신을 자신에게 드러낸 적 없으며,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랜 노동으로 다져진 사내의 몸은 견고하고 다부졌다. 단단한 그 가슴만큼이나 딱딱한 사내의 부분을 알고 있는 남자의 몸 한구석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 사내의 그것은 불에 달군 쇳덩어리처럼 뜨거웠다. 때리면 때릴수록 단단해지는 쇠처럼, 그것은 닿으면 닿을수록 딱딱해졌다. 이러다 어느 순간 툭 부러져 버리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사내의 것은 단단하고 뜨거웠다. 혹 만지면 데지 않을까. 그러나 남자는 그것이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오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기에 두려워하면서도 기대에 떨고 있었다. 그것이 어서 자신의 몸을 꿰뚫어 그 안을 휘저어 놓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오히려 옷 안으로 들어와 점점 위로 올라가는 사내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었다. 다른 부분을 건드리지 말라고 아무리 주지시켜도, 사내는 늘 그 말을 어겼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남자가 냉랭해지는 것을 느낀 사내는 움직이던 손을 거둬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교접하는 짐승처럼, 뜨겁게 달아올라 불끈거리는 자신의 것을 남자의 안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돌아서서 벽을 짚고 있는 남자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거대하고 뾰족한 덩어리가 남자의 입구를 비집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조금씩 들어오던 그것은 어느 순간 가장 굵은 부분은 다 들어갔다고 생각했는지 한꺼번에 콱 밀려왔다. 갑자기 들어오는 그것에 남자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지만 사내는 그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뜨거운 덩어리가 안으로 쑥 들어왔다 밖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에 남자는 몸서리를 쳤다. 허리를 붙잡고 움직이고 있는 사내를 원망하며, 그것이 밖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의 내부를 채우고 있는 불덩이가 그 안을 계속 태워주길 원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그의 바람을 희롱하듯 천천히 뺐다 격하게 안으로 처넣었다. 사내가 움직이며 허리를 흔들 때마다 살이 부딪히는 차진 마찰음이 남자의 귀에 와 박혔다. 쩍쩍 붙었다 떨어지는 그 소리는 남자의 음심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사내에게는 보이지 않는, 남자의 앞은 이미 흥분으로 탁액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남자는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사내는 억눌린 신음을 내뱉으라고 재촉하듯 자신의 것을 안으로 더 깊이 찔러 넣었지만, 남자는 끝끝내 사내가 원하는 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짐승처럼 거친 숨소리가 아무리 튀어나와도, 그것은 숨소리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지독하게 소리를 누르는 남자에게 벌을 주고 싶어 사내는 허리를 크게 돌려 안으로 격하게 자신을 찔렀다. 그러나 아무리 활처럼 허리를 휘어도, 남자는 작은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어떻게든 소리를 내게 하려는 사내와 그것을 참는 남자는 끝없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퍽, 퍽, 후려치듯 거칠게 집어넣어도 남자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크, 흑!”

    항상 그렇듯, 먼저 자제심을 잃은 사내가 지고 말았다. 사내가 마지막으로 깊이 집어넣고 짧은 신음을 내뱉는 순간, 남자도 그에 맞춰 거세게 토정했다. 그 안을 다 채우려는 듯 몸을 떨며 내부로 자신을 쏟아내던 사내가 마침내 남자의 몸 위에 무너졌다. 그러나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남자는 몸을 뒤틀어 사내의 것을 빼내었다. 잠시라도 그것을 품고 있으려 재촉하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듯,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옷을 추스르고 있었다. 제 역할을 다하고 풀이 죽어버린 물건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는 사내를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론 그 표정이 사내에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던 모습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광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문을 잠그기 위해 서있는 남자를 보고 사내는 서둘러 옷을 올리고 밖으로 나왔다. 쾌감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다시 밤을 더듬어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야 한다. 애틋한 포옹도, 다음에 언제 만날까 하는 약속도 없었다. 사내는 그저 돌아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아직 못 나눈 정을 그리워할 뿐이었다.

    원평에서 이긍익, 혹은 이 대감이라 하면 그 근방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 스물넷에 문과에 합격하여 정 3품까지 올랐고, 마흔일곱에 스스로 관직을 물러나 낙향하여 살고 있었다. 혹자는 당파 싸움에 밀려 몸을 피하였다고도 하고, 혹자는 정치에 염증을 느껴 그만두었다고도 했으나, 이유야 어떻든 많은 사람이 그를 존경하며 그 집안을 명문가라 칭하였다. 청백리라 불리기에는 재산이 많아 의심을 하는 이도 적지 않았으나, 부인인 서씨의 친정이 부유한 집안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재산이 적은 편이었다. 부인 서씨는 넉넉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자식은 아들과 딸 하나만을 두고 있었다. 딸 희원은 어머니를 닮아 후덕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으나 아들 시원은 양친을 조금도 닮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키가 작달막하고 풍만한 체격에 느긋한 인상을 주는 이 대감과 달리 시원은 잘 갈아놓은 칼처럼 날카롭고 차가웠다. 화가 나면 번뜩이는 매서운 눈매 또한 빛에 반사되는 칼날의 그것과도 같았다. 조그마한 얼굴에 그리 크지 않은 눈, 윗부분이 얇은 입술을 보면, 빈말로라도 사내답게 생겼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용모만 보면 남에게 얕보이기 딱 쉬운 인상이었으나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과 탁탁 끊어지는 말투, 그리고 틈을 보이지 않는 행동을 보면 누구에게든 결코 녹록한 상대가 아니었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부인 서씨가 아들을 낳지 못하여 양자를 들였다, 혹은 다른 첩의 자식이다, 하고 수군거렸지만 입 밖으로는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양반가의 얘기를 근거도 없이 함부로 했다가는 당장 관아로 끌려가 치도곤을 당할 것이 분명하기에, 사람들은 속으로만 그리 생각하였다.

    그러나 분명 시원은 서씨의 친자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 유모가 분명 아이를 받았다. 서씨 역시 떠도는 소문을 한두 번 들었지만 굳이 나서서 진실을 밝히지는 않았다. 가끔은 서씨 자신조차 내 아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닮지 않았지만 어쨌든 자신의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분명하니 말이다. 다른 여자를 돌아보지 않는 이 대감을 떠올리면, 첩의 자식이라는 것은 더더욱 말할 가치가 없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서씨의 속을 끓이는 소문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의 집 노비인 ‘진조’에 관한 것이었다.

    진조는 땀이 배어나오는 손을 뒤춤에 닦으며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흘끔흘끔 눈치를 보며 앞에 있는 여자가 빨리 자신을 놓아주기를 원했지만, 상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방긋방긋 웃기만 했다. 서춘은 희원의 몸종으로 이 집안에서는 가장 인물이 반반한 계집이었다. 아니, 기실은 집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꽤 알아주는 얼굴이었다. 동글동글한 희원과 달리 여우처럼 암팡지게 생긴 서춘은 자신의 외모에 꽤나 자신만만하였다. 종으로 태어나지만 않았으면 여러 사내 간을 빼먹었을 게 분명했고, 지금도 서춘에게 목을 매고 있는 사내는 여럿이었다. 때때로 서춘은 희원과 자신을 속으로 비교하며 내심 뿌듯해했다. 둘이 있으면 사내들의 시선은 모두 자신에게 쏠릴 게 분명하다고, 양반도 별반 나을 것이 없다고 조롱하였다. 그러한 서춘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 하여 서씨가 몇 번 혼을 냈으나, 바람난 짐승은 무엇으로도 막지 못한다고, 몰래몰래 나다니는 서춘을 막기는 힘들었다.

    그런 서춘이 자신을 추앙하는 열 남자 마다하고 관심을 쏟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진조다. 진조는 서춘에게 관심이 없는 몇 안 되는 사내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무시하던 서춘도 오기가 발동하여 적극적으로 그를 꼬여보려 했으나, 전생에 미색과 원수라도 졌는지 시선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자존심에 금이 간 서춘은 엉덩이를 은근히 들이밀어도 보고 실수인 척하며 엎어져도 보았으나 조금도 관계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따라다니다 보니 애초의 목적과 달리 마음이 동하여 지금은 진조가 정말 좋아진 것이 문제였다.

    사실 진조만한 인물을 찾기도 힘들 것이다. 진조는 이 대감이 직접 데리고 온 아이였다. 돌쇠나 떡쇠 같은 부르기 쉬운 이름이 아닌, 진조라는 이름을 준 것도 다름 아닌 이 대감이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혹 진조가 이 대감의 아들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지만 역시 근거가 빈약했다. 진조는 시원과 동갑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시원과 진조가 태중에 있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이 대감이 도저히 그럴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쁘던 때였다.

    또한 자식이 노비면 노비 신분인 어머니가 있어야 할 것인데, 당시 이 대감의 집에는 젊은 여종이 있지 않았다. 더구나 집안의 종을 건드렸다면 부인이 모를 리 없을 테고, 비록 반쪽 신분이라 해도 진조가 완전히 노비로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후덕한 부인이라 해도 낳아온 자식을 곱게 봐 줄 리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낳자마자 바로 데려온 것도 아니고, 이미 자랄 만큼 자란 일곱 살짜리 애를 뒤늦게 데려올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 진조가 이 대감의 아들이라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희박한 소문이었다. 진조는 노비 문서가 있었으며, 아비의 이름은 김 아무개, 어미의 이름은 박 아무개, 라고 되어있을지언정 그 부모의 이름은 확실히 적혀 있었다. 그마저도 위조라는 소문이 나돌기는 했지만.

    아마도 진조가 진짜 이 대감의 아들이었다면, 그는 시원보다 한층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시원보다 큰 키에 단단한 체격, ―노동으로 더 단련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골격이 튼튼했다.― 그리고 여느 무관보다 강해 보이는 얼굴. 거친 얼굴선과 다른 이보다 길고 오뚝한 코가 척 보기에도 남자다웠다. 옷을 갖춰 입고 조금 다듬으면 어느 풍채 좋은 양반도 대지 못할 정도로 사내다운 용모였다. 그러면서도 성격은 급하지 않고 오히려 무던하며, 불의에는 나서지만 약자에게는 관용을 베풀 줄 아는 온후함을 지니고 있었다. 한마디로, 시원과 모든 것이 정 반대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서춘은 그러한 진조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짝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외모로 보아도 잘 어울리거니와, 게으르지 않고 일도 잘하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래서 오로지 진조 한 사람에게만 자신을 걸기로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생각만큼 그리 쉽지는 않다. 허나 본디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에 더 애착이 가는 법. 서춘은 반드시 그와 혼인하고 말리라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해서 지금도 그를 불러내어 곶감과 떡을 내민 것이다.

    눈을 새치름하게 뜨고 곶감을 반으로 갈라 내미는 서춘이 진조는 참으로 곤란하였다. 알았다고, 가져가 먹겠다고 하는데도 서춘은 기어이 자기 손으로 먹여주어야 직성이 풀릴 요량인가보다. 서춘이 살짝 어깨까지 자신에게 부딪혀가며 아양을 떠는데, 진조의 손바닥에는 자꾸 땀이 비어져 나왔다. 하나 받아먹으면 그걸로 끝이 아닐게 분명하고, 혹 누가 지나가다 보기라도 하면 오해하기 딱 좋은 광경이 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으니 서춘이 토라져 입을 삐죽거린다. 마치 진조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눈을 흘기는 걸 보니 진조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진조의 표정을 재빨리 잡아낸 서춘은 상대가 미안해하는 틈을 적절히 이용했다.

    “참말 팔 떨어지겠네. 이거 하나 받아먹으면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오?”

    “아니, 그게 지금은 별 생각이…….”

    “누가 다 먹으라나. 맛만 보시오. 딱 한 입만 먹고 나머지는 이따 밤에 먹던가.”

    서춘은 곶감을 입에 쑤셔 넣을 기세로 가까이 들이밀었다. 속으로야 이 화상이 어디까지 버티나 한 번 보자는 심보였지만, 겉으로는 방실방실 웃으며 콧소리를 내었다. 결국 입술에 닿은 것을 다시 어떻게 할 수 없어 진조는 입을 벌렸다. 그리고 자신이 들고 먹으려고 곶감을 잡았는데, 서춘은 손을 빼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두 손이 맞닿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에구머니, 어딜 잡으시오.”

    “아니, 이건…….”

    서춘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는 척 했지만, 그럼에도 곶감을 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졸지에 음흉한 사내가 되어버린 진조는 재빨리 손을 내렸지만 입은 여전히 곶감을 물고 있었다. 결국 하나를 통째로 입 안에 다 넣고서야 서춘의 손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얼굴을 붉혀야 할 서춘은 입술을 살짝 올려 웃고만 있는데 오히려 당한 진조가 열 오른 얼굴로 서춘을 외면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 과정이야 어쨌든 여자가 더 민망해 하는데도 말이다. 그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라 더욱 민망하였다. 서춘이 입가에 묻은 가루를 털어주려 손을 올리자 진조는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잘못을 저지른 후 겁에 질린 아이 같은 진조의 표정을 보고 서춘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진조가 예상보다 순진하다는 생각에 더더욱 탐이 나기 시작했다. 한 발짝 더 진도를 나가볼까 작정하고 있는데,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조 게 있느냐!”

    진조를 찾는 시원의 목소리였다. 그 성품을 대변하듯, 분명 맑고 깨끗하기는 하나 예리함을 품고 있는 얼음 같은 목소리다. 서춘은 생각 외로 강한 방해꾼이 나타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다른 이라면 대충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나 상전의 부름에는 재깍 응해야 하는 것이 자신들의 처지였다. 게다가 성격 깐깐한 시원이었다. 농땡이를 쳤다고 매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붉은 기가 가라앉지 않은 얼굴을 하고, 진조는 서둘러 시원의 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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