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어]_내_침실에_원시인이_산다_내_정원~외전 - 4

163일전 | 432읽음

분노와 질투가 봄바람에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흐물흐물해진다. 예쁜 것. 어찌 이다지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인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비페르는 속으로 알파벳 A부터 Z까지 천천히 외웠다. 프랑스식으로. 참기 힘들지만 어젯밤에, 또 오늘 낮에. 연약한 엉덩이로서는 버티기 힘들 만큼 연속으로 했다. 또다시 덮쳤다간 몸상할지도 모른다. 참자. 참고 참고 또 참지 덮치진 말자.



"크윽…."



갑작스런 신음성에 성무가 눈 뎅그랗게 뜨고 비페르를 쳐다보았다. 설마 정신적인 원인으로의 발작?!



"왜, 왜 그래요?"



비페르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니가 너무 귀여워서. 정신적인 원인이기는 하다.



"잠시, 샤워…."



찬물이라도 뒤집어써야겠다. 비틀비틀 욕실로 걸어가는 비페르의 뒤를 성무가 쪼르르 쫓아갔다. 으아, 어떡해. 진짜 어디 아픈가봐!



"괜찮아요? 도와줄까요? 진짜 괜찮아?"



종알종알 거리며 쫓아오는 성무를 비페르는 기쁨과 사랑스러움, 안타까움, 슬픔, 각고의 인내 등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걱정해서 따라오는 것은 고맙도록 기특하지만… 그렇지만… 젠장!"


"Fesse!"


"어, 엉?"



비페르는 어금니를 아득 갈았다. 이걸 두고 참으라니!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못할 짓이다. 무리다. 고문이다. 엉덩이, 과하게 귀여운 것도 죄야. 비페르는 한 마리 짐승으로 화해 똘망똘망 눈을 깜박이는 원시인을 덮쳤다. 으아아악! 엄마야! 이놈이 발작해! 후욱, Fesse! 야, 자, 잠깐! 잠-아읏! 아! 흣…아아!



결국 욕실에는 둘이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 다만 사람은 둘이지만 들어 갈 때 다리는 한 쌍이었다고 말해두겠다. 나올 때도 한 쌍이었다.






미친놈이 힘은 장사다. 성무는 그 말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네놈은 피로라는 것을 모르느냐. 몸속에 피 대신 우루사라도 흐르고 있는 건지. 곰 같은 힘이여 솟아라!



"끄응… 아이고 허리야……."



목욕하다 한 번, 샤워하러 들어가다 한 번, 자기 전에 또 한 번. 성무는 좌로 세 번, 우로 세 번 데굴데굴 굴러다녀도 끝이 안 보이는 넓디넓은 침대 위에서 끙끙거렸다. 아이고 나 죽네. 자신을 이 꼴로 만들어 놓은 놈은 아침밥 떠먹여 주더니 일이 있다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하기야 사업가니까 바쁘겠지. 지금처럼 아파서야 없는 편이 더 속시원하다. 시도 때도 없이 덮쳐드니. 빌어먹을 짐승.



"참, 이거 TV도 된다고 그랬지."



성무는 우로 데굴데굴 굴렀다. 침대 옆 탁자에 TV리모컨이 놓여 있었다. 심심하면 보라고 비페르가 나가기 전에 준 것이다. 짧은 단어의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알아듣기엔 무리 없었다. TV, 리모컨, 채널, 코리안, 숫자 XX키. 한국 땅에 영어가 얼마나 많이 침범해 들어왔는가. 도넛 놓고 O자도 모르는 성무도 저 영어단어들은 다 알아듣는다. 일상회화는 바닥이었지만 의외로 영어단어는 아는 것이 제법 되는 그였다. 토마토, 컴퓨터, 보트, 핸드폰, 컵, 치킨, 피자, 햄버거 등등등.



"보자… 켜는 게 이거고, 한국 채널이 이거 눌리면 된댔지?"



소중한 엉덩이를 위하여 한국 위성방송도 끌어다 왔다. 성무는 침대를 향해 세워진 스크린을 향해 리모컨을 눌렀다. 꾹꾹. 그리운 한국어가 와그르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 그립다, 한국."



광고다. 그것도 치킨 광고다. 늘씬한 여가수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생글생글 미소 지으며 치킨을 사먹으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아아, 그래. 나도 먹고 싶어. 당장이라도 전화 걸고 싶어. 돈은 없지만 시계랑 바꾸자고 하고 싶어. 하지만 여기까지 배달 올 리가 없겠지! 성무는 안타까움에 가슴을 쥐어뜯었다. 물론 보통은 오지 않을 것이다. 마라도도 아니고. 하지만 두 개 합쳐 시가 20억 이상의 파텍 필립과 바쉐론 콘스탄틴을 주겠소, 하면 열에 열은 달려오지 않을까. 거기가 어디든 일주일 내로 날아갑니다! 반반무많이요? 쿠폰 백 개 덤으로 드릴게요! 다만 사장은 바뀌었을 겁니다. 열대 섬까지 갈 배구해요! 대여로 1억 드립니다! 나는 따불 2억 따따불 급구!



이어 커피 사라고 하는 건지 솔로들 염장 지르는 건지 모를 광고가 흘러나온다. 커피 광고면 커피를 중점적으로 보여줘야지 왜 캔만 저만치 나뒹굴고 있고 커플이 두 손 맞잡고 눈빛 교환하는 것만 집중적으로 찍는 건지. 성무는 쩝, 하고 채널을 돌렸다. 비록 상대가 여전히 멀고먼데다가 옛날 여자 친구가 될 뻔 했던 사람 앞에 새 여친도 아니고 남친을 데리고 가서 나 사귀는 사람 생겼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생각만 해도 자다가 하이 킥 할 시추에이션이다. 고이 가지고 왔던 미숙이 사진도 이제….



"아!"



맞다, 배낭! 성무는 갈라진 틈 사이에 그대로 버려두고 왔던 배낭을 뒤늦게 떠올렸다. 미숙이는 그렇다 쳐도 가족사진이 그 안에 들어있다. 그의 손에 남은 유일한 가족사진이다. 성무는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가 허리 잡고 두어 바퀴 굴렀다. 으아아, 나 허리 나갔어! 엄살 좀 피우다가 더듬더듬 비페르가 주고 나간 핸드폰을 찾아 들었다.



"그러니까… 단축 번호 1번이랬지?"



핸드폰을 가져본 역사는 없다. 기계가 공짜면 뭐 하냐, 매달 나가는 기본료가 최소 만 원 이상인데. 어차피 딱히 필요도 하지 않아 눈길 한 번 안 주고 살아왔다. 그렇다고 해도 사용법을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전화기니까. 숫자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성무는 블랙 칼라의 얄팍하게 잘 빠진 핸드폰을 살펴보았다.



"……이거 왜 버튼이 없어?"



앞에는 커다란 액정이요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돌려봐도 안 되고 밀어 봐도 안 되고 열어보려 해도 안 된다. 그러다가 액정을 건드려 불도 들어오고 잠금장치도 풀렸지만 보이는 것은 기본 바탕화면과 그 아래 메뉴와 전화부 버튼뿐이다. 심지어 둘 다 영어다. 메뉴까지는 식당가서도 흔히 보이는 것이니 알아보겠다만 전화부는 모르겠다. 성무는 미간 사이를 좁히며 액정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대체 어딜 누르라는 거야? 어딜?"



숫자가 없잖아! 숫자야 아라비안 숫자이니 1번 찾아 누르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문제는 그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무는 머리를 잡아 뜯었다. 배낭 찾아야 하는데! 가족사진!



"1번 어딨냐, 1번!!"



휴대폰에다 대고 소리쳐봤지만 묵묵부답이다. 만약 성무가 영어로 원! 하고 외쳤으면 폰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또는 비페르, 라고 이름을 불렀어도 곧장 연결이 되었을 것이다. 혹은 넘버, 나 메뉴로 들어가 숫자 키패드를 찾아 들어갔다면 액정에 여는 폰처럼 숫자 버튼이 떠올랐을 것이다. 허나 그는 몰랐다. 손에 들고 있는 요 자그마한 놈이 영어와 불어 한정 음성인식 작동되는 핸드폰이라는 사실을. 그냥 몇 번 바동거리고 성질내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젠장! 그냥 직접 찾아가서 말하고 말지!"



성무는 조금 끙끙대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이름도 이젠 알겠다, 엘리베이터타고 내려가서 밑에 있는 사람 붙잡고 비페르 씨 어디 있냐고 물어물어 찾아가면 된다. 그는 방을 가로질러 가 아직도 하드디스크가 잠겨있는 해파리 수조에 눈총 한 번 던져 주곤 엘리베이터 앞에 우뚝 섰다.



"응? 위로 가는 버튼도 있네?"



여기가 꼭대기 층이 아니었나보다. 성무는 생각했다. 위층 사는 사람은 비페르보다 더 부자겠지. 아무튼 남의 집에 놀러갈 생각이 아니었기에 그는 아래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빠르게 상승한 엘리베이터가 제 뱃속을 활짝 열어보였다. 성무는 냉큼 그 안에 탔다. 층을 나타내는 버튼은 총 네 개였다. 1층과 2층, 3층, 4층. 각 층의 옆에 무어라 영어로 쓰여 있었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성무는 그가 머무는 방이 관찰실이라는 사실 역시 알아차릴 수 없었다.



"1층!"



소리치며 버튼을 꾹 눌렀다. 성무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여긴 온통 외국인만 득시글거리니 비페르를 찾아 나서는 데에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 의사 아저씨랑 딱 마주칠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하지만 의사니까 바쁘겠지. 그 즈음 닥터 박은 노집사와 체스 설욕전을 펼치고 있었다. 한 번만 물러! 어허, 무르기 없다네.



소리 없이 고요하게 엘리베이터가 아래로 하강했다. 1층까지 다다르는데 눈 몇 번 깜박이면 끝이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성무는 밖으로 내려갔다. 아니, 내려가려 했다. 덩치 큰 떡대들이 앞을 가로막고 서지 않았다면 말이다. 성무는 약간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자신의 앞을 막아선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어, 저기……."



복장으로 봐선 경호원이다. 처음 엘리베이터 탔을 때도 봤다. 비싼 아파트 같은 데에도 경비가 철저하다 그러니까 여기도 그런 거겠지. 하지만 왜 나가려는 사람을 막아서는 것일까.



"저기, 저 나가는 건데……."



보통 들어오는 사람만 검사하고 막아서지 나가는 사람은 건드리지 않는 게 아니던가. 성무는 우물쭈물 하면서 덩치 큰 아저씨들을 힐끔거렸다. 우씨, 도로 올라가야 하는 건가? 어쩌나 고민하고 있는데 우글우글 엘리베이터 앞을 포위하고 있던 떡대들이 모세 만난 홍해처럼 좌우로 촤자작 일사분란하게 갈라졌다. 모세, 아니 비페르가 그 갈라진 사이를 척척척 걸어온다. 성무는 반갑게 한 손을 들어올렸다.



"오, 마침 오네- 어?"



척척척 걸어 온 비페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성무의 뒷덜미를 낚아 채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도로 상승한다. 여전히 뒷덜미를 잡힌 채 성무는 비페르를 힐끔 쳐다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다. 뭐지, 회사 주가라도 떨어졌나. 동중부터 번쩍 안아 들린 성무는 다시 관찰실 침대 위로 옮겨졌다.



"얌전히 있어."



노기어린 비페르의 목소리에 성무가 움찔거렸다. 멋대로 나가면 안 되는 거였나 보다. 하기야 자신은 정식 입주자도 아니니까. 그는 약간 기가 죽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비페르가 굳었던 표정이 살짝 풀렸다. 그‹š를 틈타 성무가 용건을 내뱉었다.



"내 가방 찾아야 하는데… 어, 백, 이요."



백, 가방. 핸드백 말고 빅백. 비페르는 성무의 말을 유심히 듣고는 전자 사전을 두드렸다. 통역시 사용은 여전히 금하는 중이었다. 직접 들으며 대화하고 싶기도 했고 그런 거 사용하면 한국어가 잘 늘지도 않기 때문이다. 편리란 발전을 저하시키는 법이다. 어차피 녹음 및 녹화가 다 되고 있으니 못 알아들은 건 따로 번역요청하거나 후에 한국어가 익숙해지고 나서 확인해보면 된다.



"가방, 말인가."



성무가 반색했다.



"맞아, 가방! 그때, 떨어졌을 때 떨어뜨린 거! 그거 좀 찾아줘요!"



성무의 말을 태반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가방을 원한다는 것만은 눈치 챌 수 있었다. 비페르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엉덩이가 가지고 있는 가방이라면 하나뿐이다. 아마 굴러 떨어졌던 장소에 있겠지. 그 주변에는 여기저기 균열이 많아 찾으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사람을 풀면 하루 내로 가능할 것이다. 비페르는 손을 뻗어 성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다려라."



금방 찾아다 주지. 그리고. 비페르는 또다시 전자 사전을 톡톡톡 두드렸다.



"내일 아침 떠난다."


"…뭐?!"



성무는 깜짝 놀랐다. 떠난다니, 어디로? 설마 벌써 내가 지겨워져서? 이미 할 일 다 했다고 버리려는 건가! 그는 울상을 지으며 양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각각 다른 쪽 손으로 감싸 쥔 채 뒤로 물러났다.



"한국행 비행기 표는 주고 가!"


"…뭐라고?"


"갈 거면 한국 보내주고 가라고!"



한국 어쩌고 하는데 무슨 소린지는 잘 모르겠다. 떠나자 그랬더니 한국에 가고 싶은 건가. 비페르는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그토록 가고 싶다면 한 번쯤 같이 가 주도록 하지.



"조만간 한국, 가지."


"……우…."



저놈 저거 봐라 저거 봐라… 진짜로 한국 가라 그러네. 그래도 보내준다니까 다행이다. 성무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비페르로부터 등을 돌렸다. 치사한 놈, 이제 좀 좋아 질려니까 쫓아내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도 한국 가서 잘 먹고 잘 살 테다! 니가 준 시계 팔아서 삼겹살이나 배터지게 먹을 테다! 삐진 기색이 역력한 성무의 모습에 비페르가 약간 난감하게 웃으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얼른 고향에 가보고 싶은 모양이다. 하기야 닥터의 말에 따르면 1년이 넘었다고 하니.



"최대한 빨리."



시간을 내 보마. 일단 본가에 들리긴 해야겠지만. 등 돌린 성무는 비페르의 매정한 말에 커다란 베개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훔쳤다. 흑, 망할 새끼. 최대한 빨리 내쫓는대. 썩을 놈, 거시기나 썩어서 떨어져버려라! 가슴이 욱신욱신 거려서 그대로 침대에 모로 쓰러져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얼굴도 보기 싫어! 꺼져!



"다시 오마."



비페르는 돌아누운 성무의 등을 상냥하게 쓸어주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귀여운 것. 어제 좀 많이 괴롭혔더니 피곤한 모양이다. 일이 꽤 밀려 바쁘긴 했지만 조만간 한국에 데리고 가주긴 해야겠다. 고향이 많이 그리운 모양이니.






성무가 소박맞았다고 착각한 그때로부터 하루하고 조금 후. 어두컴컴한 곳에 갇히게 된 여우는 생각했다. 나 이제 죽나보다. 옆으로 쓰러진 통에서 머리를 빼꼼이 내밀어 본 곳은 그저 깜깜하기만 했다. 타다 만 향초에 야자열매 속을 파 만든 그릇, 멸치 볶음의 냄새가 남아있는 통이며 어설픈 모양새의 숟가락과 젓가락. 짐승의 말린 가죽들이 여기저기 뒹굴어대고 있었다. 앞뒤좌우 위아래 모두 단단한 벽으로 막혔다. 심지어 이리저리 흔들리기까지 한다. 작은 여우는 꼬리를 앞으로 둘러 품어 안고는 고심했다. 튀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실 무작정 탈출을 시도하기에는 상황이 그다지 좋지가 못했다. 귀와 코가 보이지 않는 바깥 상황을 어렴풋이 알려주고 있었다. 밖에 덩치 큰 생물 최소 넷. 꼬마 여우는 무척이나 주의 깊고 경계심 많은 생물이었다. 물새들이 밥으로 여기던 성무에게도 다가가는데 한참이 걸렸을 정도다. 한 번 만만하다 싶은 뒤에는 막나가긴 했지만. 아무튼 낯설고 덩치 큰 생물들이 주위에 우글거리는데 이성을 잃고 발버둥치는 성격은 아니라는 뜻이다.



-크응



그렇다고 이대로 붙잡혀 있을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도망을 치기는 쳐야하는데. 벽을 살짝 긁어 보았지만 턱도 없이 단단하다. 바닥을 파내려는 시도도 해보았지만 돌처럼 단단했다. 그러는 사이 돌연 상자가 크게 흔들렸다. 여우는 데굴데굴 다른 물건들과 함께 구석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키엥!



커다란 상자를 차 위로 밀어 올리던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무슨 소리 안 들렸어?"


"뭐? 무슨 소리?"


"…아닌가."



잘못 들은 건가. 엔진 소리에 섞여 잘 들리지도 않았다. 남자는 착각이겠지, 하고 상자를 마저 밀어 올렸다. 먼저 위에 올라가있던 남자가 줄로 상자를 떨어지지 않게끔 단단히 묶었다.



"이제 비행장으로 옮기기만 하면 끝이로군."


"이 섬과도 작별이지. 여긴 너무 심심해."


"그래도 보너스는 많잖나. 뉴욕에서 한 잔, 어떤가? 내가 사지."


"사는 거라면 야 얼마든지."



밖에서 떠들어대는 목소리와 웅웅거리는 엔진소리에 여우는 몸을 바싹 웅크렸다. 이게 웬 날벼락인지. 다른 물건들과 섞여 구르느라 온 몸이 욱신거린다.



-키잉…



여우는 몸을 작게 말고 큰 귀를 앞발로 내리 감쌌다. 기계소리가 영 듣기 좋지 않다. 그나마 잠시간 움직임은 없다 싶더니만, 이내 차가 달리며 사람들의 손에 들렸을 때 이상으로 덜컹이기 시작했다. 캬앙! 여우 살려!



성무의 짐을 실은 지프는 황무지를 거침없이 내달려갔다.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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