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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어]_내_침실에_원시인이_산다_내_정원~외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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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봐라, 장정 열이 들어가도 넉넉하겠다. 심지어 율로 된 벽과 문 너머로 야외 욕조도 하나 있다. 성무는 눈치 살금 살피다가 화려한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

    번들번들한 돌로 만들어진 커다란 욕조 위로 뜨거운 물이 콸콸콸 흘러넘치고 있다. 물이 나오는 곳은 평범하게 볼 수 있는 수도꼭지가 아닌 한쪽 벽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인공 폭포다. 자연보호주의자라면서 물 아낄 줄 모른다. 허리 두꺼운 8자 모양의 욕조의 테두리로는 위를 유리로 막은 수로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화려한 빛깔의 관상어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 밖의 장식물이며 가구며 한쪽에 마련된 세 종류의 사우나실 등등- 여길 꾸미는 데만 해도 10억은 족히 들었을 것이다.

    "여, 역시 전세금 10억……."

    공용 욕실만 봐도 엄청나다! 아마 10세대 정도가 같이 쓰는 곳이겠지. 서로 시간만 잘 맞추면 혼자 이걸 다 쓸 수도 있으니… 엄청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유리 뚜껑이 혹여 깨질까봐 건너질 못하고 헤엄치는 물고기만 멍하니 바라보고 선 성무에게로 비페르가 다가왔다.

    "이리 와, Fesse."

    타인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 직접 씻겨주지. 몸을 감싼, 지저분한 와인색 담요를 걷어내고 찢어진 셔츠도 벗겨냈다. 마지막으로 원시인 룩을 붙잡자 얌전히 있던 성무가 그의 손을 턱 막아섰다.

    "내가 해!…요, 내가!"

    나도 손 있음. 허둥지둥 벗고서는 욕조로 걸어…들어가려다가 멈췄다. 발가락 바로 앞을 막아 선 것은 유리수로다. 폭이 1미터는 넘음직해 보이는 널찍한 수로. 이거… 밟아도 안 깨질까? 성무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수로를 내려다보았다. 비쌀 것처럼 보이는데. 깨져도 물어 낼 돈 따윈 단돈 백 원도 없다. 역시 못 밟겠어. 성무는 수로를 뛰어넘기로 결심했다. 고작 2미터도 안 되는 거리다. 그쯤이야 도약도 필요 없다. 제자리서 뛰어도 충분히 넘을 수 있다. 성무는 무릎을 살짝 굽히며 두 팔을 앞뒤로 흔들었다.

    "헙!"

    뛰었다! 그리고-

    "으어어어억?!!"

    발이 미끌. 이곳이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욕실이란 사실을 까맣게 잊은 대가였다. 성무는 뒤로 넘어지려는 몸을 안간힘을 다 써 앞으로 숙이려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뒤는 안 된다, 뒤는 유리수로다! 깨먹어도 물어 줄 돈 따윈 없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힘차고도 눈물겨운 파닥거림 끝에 그의 몸이 뒤쪽에서 앞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아아, 다행이다. 앞은 욕조다. 비록 물속에 그대로 머리박고 고꾸라지겠지만 유리 깨부수는 것보다야 백배 낫다. 성무는 눈을 꼭 감았다. 숨도 흡 들이마시고 멈추었다. 나 이제 입수합니다아아…

    "아…?"

    기울어지던 몸이 50도 즈음에서 정지했다. 허리를 감싸 넘어지는 걸 막아 준 팔이 그대로 몸을 안아든다.

    "조심해."

    외국인이다. 성무는 뺨을 조금 붉히며 고개를 끄덕했다.

    "네… 고, 고마워요."

    들린 몸이 욕조 속으로 내려앉혀졌다. 따끈하니 딱 좋은 온도였다. 온수에 몸을 담그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무인도…라고 착각했던 곳에 조난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도 목욕비가 너무 비싸 자주 가질 못했었다. 그냥 찬물로 등목하고 말지. 성무는 따뜻한 물속에 길게 늘어졌다.

    "으아… 조오타!"

    그래, 나쁘지 않다. 비록 내가 남자지만 남자 잘 만나서 팔자 고치는 것도 괜찮지 뭐. 물질적인 풍요 앞에 남자로서의, 노말로서의 성정체성이 바람 앞의 갈대처럼 흔들거렸다. 어쩌면 이미 꺾어진 걸지도 모른다. 상대가 몸만 노리는 나쁜 놈이라면 또 모를까, 친절하고 잘 대해주니까 더 그렇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옆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외국인도 목욕 할 모양이다. 성무는 옆을 돌아보았다. 얼굴은 제쳐둬도 몸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저 외국인에 비하면 어린애까지는 아니어도 청소년 쯤 된 것 같다. 잘난 놈.

    "저기, 어…."

    옆에 앉은 남자를 부르려던 성무는 이제껏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하나 떠올렸다. 저 남자 이름을 모른다. 플러스로 저 외국인도 내 이름을 모른다. 서로 이름도 모른 채 A부터 Z까지 진도 다 나가버렸다니! 약간의 충격을 먹은 성무가 비페르에게 물었다.

    "저기요, 이름이 뭐예요?"

    "……."

    비페르는 무어라 오물오물 말하는 엉덩이를 바라보았다. 욕실이다보니 통역기도, 전자 사전도 없다. 요 귀여운 것이 뭐라고 말하는 것일까. 성무는 다시금 말했다.

    "어, 이름이요. 그러니까… 네임!"

    이 외국인이 한국말을 종종하기는 하는데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네에임. 성무의 발음을 어찌 알아들은 비페르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았군.

    "비페르 루프스. 비페르다."

    "아, 비페르! 씨. 나는 한성무야…요. 성무. 외국식으로 하면 성무 한!"

    "그래, Fesse."

    "성무라니까. 페슨지 프리민지가 아니라 성무!"

    암만 소리쳐봤자 Fesse는 Primi고 원시인은 엉덩이다. 내 귀여운 엉덩이. 계속해서 다른 호칭만 입에 담는 비페르의 태도에 성무가 입술을 조금 삐죽거렸다.

    "거 참, 성무라니까. 디게 못 알아듣네."

    만약 성무의 프랑스어 실력이 좀 더 뛰어났더라면 투덜거리는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야 이 변태새끼야! 하고 펄펄 날뛰었겠지.

    "이리 와라, Fesse."

    해석하자면 이리 온 엉덩이. 엉덩이 쫑쫑. 비페르는 팔을 뻗어 성무의 맨 허리를 감싸며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힘에는 못 당한다는 사실을 몇 번의 경험 끝에 잘 알고 있는 성무가 순순히 끌려왔다. 또 엉덩이를 주므르는 손길에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양 눈꼬리만 샐쭉 한다. 그래, 만져라 만져.

    "귀엽군."

    "…느끼하군이다. 읏-."

    탱탱한 엉덩이를 주물 거리던 손이 갈라진 틈새로 들어간다. 비페르는 반사적으로 들어 올려 지는 허리를 다른 손으로 붙잡아 아래로 내렸다. 어제 하고 제대로 빼내주질 못했다. 대충 긁어는 냈지만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작은-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몸을 품으로 바싹 당겨 안고는 입구 안쪽으로 손가락을 넣었다. 어제 그렇게 괴롭혔어도 늘어짐 하나 없이 바싹 조여 온다.

    "아웃, 야-! 외국인 너……."

    대낮부터! 도망치고 구출되어 오는 소동을 벌이느라 시간이 꽤 지체되긴 했지만 아직 늦은 점심을 먹을 만한 시간이다. 즉, 해가 중천에 떠있다. 아무튼 이 파렴치한 변태 놈의 새끼가. 성무는 엉덩이를 들썩들썩 거렸다. 야, 넣지 마, 넣지 마-

    "으읏, 응…."

    하지만 손가락은 포인트 잡는 것에 능숙했고 몸은 과하게 솔직했다. 깊이 들어간 손가락이 흔적을 긁어내느라 조금 난폭하게 움직이자 그 통에 허리가 자르르 떨린다. 성무는 비페르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리듯 기대었다. 망할 놈.

    "으아, 야, 임마-."

    아우- 이 자식이 감질나게! 성교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손가락의 움직임은 많이 부족했다. 성무는 눈앞에 보이는 어깨를 까득 깨물었다. 어제는 잘만 해대더니만, 제대로 하지 못해?! 안 할라면 말고 할라면 제대로 합시다.

    "보기보다 음란하구나."

    비페르는 어깨를 깨물어오는 성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씻어주려고만 했는데 그새를 못 참아서. 하지만 원한다면 응해주는 것이 신사의 도리다. 씻어내는 데만 열중하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변화했다. 개수도 늘어난다. 한 손으로는 쫀득쫀득한 엉덩이를 주므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입구를 넓히는 데에 집중했다. 탄탄한 허리가 구부러졌다가 반대로 휜다.

    "으앗, 으… 외국, 인…!"

    이름이 뭐였더라?! 정신이 오락가락하다보니 달랑 두 번 들은, 그것도 낯선 외국이름 따위 떠오르지 않는다. 비- 뭐였는데. 비, 비-

    "비, 비, 뷔패!"

    아, 배고프다. 아직 점심도 못 먹었는데. 성무가 잘못 기억해낸 이름에 허기를 느끼거나 말거나 비페르는 엉덩이를 벌리는데 여념 없었다. 얼른 들어가서 우는 소리를 자아내고 싶다. 깊숙이 들이박혔던 손가락을 일시에 빼내며 성이 난 남성기를 단번에 밀어 넣었다.

    "아으읏!"

    물속인지라 젖기는 했다만 윤활제는 아니다. 마찰을 줄이고 잘 미끄러지도록 만든 전문적인 물품에 비하면 훨씬 성능이 떨어진다. 같으면 누가 돈 주고 젤이며 크림 따위를 사겠는가. …향이 좋아서?

    "어억, 윽!"

    살과 살이 뻑뻑하게 비벼지며 열 덩어리가 뱃속을 가득 채운다. 성무는 발끝을 잔뜩 오므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개새끼, 아프잖아!

    "으윽, 흑… 잠, 잠깐- 천천히-!"

    "Fesse-."

    나직하게 그르렁대는 목소리가 귓가에 바싹 붙는다. 이어 질척이는 혀의 물소리가 청각을 온통 차지했다. 한계까지 팽팽하게 벌어진 입구로 홧홧대는 몽둥이가 빠르게 들락거린다. 물은 찰박찰박 맨몸뚱이를 후려치지만 살과 살이 맞붙어 비비는 소리는 온수에 잠겼다. 대신이랄까, 난폭해진 숨소리가 수면을 떠다닌다.

    "아…아…그, 윽! 하윽!"

    "음…후, Fesse…."

    눈물을 매단 채 끅끅거리는 몸을 꽉 붙잡고 온습한 내벽을 짓누르며 밀고 올라갔다.

    "아아!"

    뽀얀 엉덩이가 허벅지에 납작하게 눌러진다. 뿌리 끝까지, 음낭까지 비집고 들어갈 정도로 깊숙이 박아 넣은 채 제 영역을 표시하듯 진한 정액을 흩뿌린다. 몸속 가득 사내의 흔적을 받아들인 채 성무는 딱 벌어진 어깨에 쓰러지듯 기대었다. 깨끗했던 물속으로 뿌옇게 흐린 액이 흐늘거린다.

    "하아…으……."

    야, 이제 좀 빼라. 배고프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늘어진 몸을 만족스럽게 주물거리고 키스까지 진하게 쪽쪽거린 뒤에서야 겨우 비페르의 물건이 탱탱한 엉덩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물이 한차례 더 더러워졌지만 이내 흘러넘쳐 깨끗해진다. 어깨에 뺨을 눌러 기댄 채 쉬던 성무가 웅얼대듯 말했다.

    "배고파… 외국인아."

    밥 줘-. 비페르는 칭얼칭얼 거리는 엉덩이의 엉덩이 속을 씻어 낸 뒤 남성 청결제와 바디 스크럽, 바디 워시를 가지고 왔다. 젖 먹던 힘도 다 빠진 알몸을 끄집어내다가 손수 씻겨주신다. 사랑이란 게 뭔지. 평생 할 일 없었던 것을 자진해서 하고 있다.

    "우어엉, 아파! 작작 문질러! 밥 줘!"

    코리아 전매특허 초록색 때수건은 없었지만 거품 솔로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팠다. 힘이 아주 장사다. 비페르는 바동거리는 성무의 허리를 발로 꾹 내리밟은 채 솔로 갈빛도는 등을 벅벅 문질렀다. 연갈색이었던 피부가 순식간에 붉게 물이 든다.

    "으아악! 피부 다 벗겨져! 아프다고! 악! 악!"

    내 등이 껌 딱지 덕지덕지한 바닥인 줄 아냐! 악악대며 발버둥 쳤지만 비페르는 엄살이니 하고 무시했다. 목욕용 솔이 아파봐야 얼마나 아프다고. 평생 남의 살결 문질러줄 일이 없었던 재벌가 가주다. 제 살결도 남이 밀어주는 일이 허다했으니 힘의 조절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죽을 정도는 아닌지라 은근히 시원하기도 했다. 결국 1년 치 때 죄다 벗겨낸 성무는 흐물흐물 거리는 몸으로 욕실을 탈출했다.

    "밥……."

    뽀송한 목욕가운을 걸쳐 입고 머리에는 큼직한 수건 하나, 발에는 슬리퍼를 딸딸거리며 성무는 중얼거렸다. 이봐, 외국인 씨. 밥 줘, 밥. 목욕까지 했더니 더더욱 배가 고파졌다. 배꼽이 등뼈와 포옹하게 생겼다. 비페르는 꿍얼대는 성무를 욕실 옆에 붙어있는 휴식실로 데리고 갔다. 목욕 또는 사우나를 즐기다 지치면 쉴 수 있는 장소다. 혹은 혼욕 중에 끌리면 들어가서 뒹굴어도 된다. 때문에 커다란 침대도 떡하니 놓여있다. 성무는 침대를 보자마자 구르듯 달려가 뛰어들었다. 코끼리가 밟아도 끄떡없는 과학적인 침대가 출렁거린다.

    "크으~ 진짜 푹신해! 역시 침대는 좋구나…."

    배만 안 고프면 이대로 꿈나라 직행하고 싶다. 비페르는 침대 위를 뒹굴 거리는 엉덩이의 모습에 만족했다. 본가도 아니고 주로 사용하는 침실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자신의 침대다. 귀여운 엉덩이를 저렇게 올려다 놓으니 참으로 보기 좋지 않는가. 베개를 끌어안고 물 밖으로 끄집어 낸 생선처럼 펄떡거리는 것이 명화 속 큐피드만큼이나 사랑스럽다. 왕콩깍지 눈에 낀 비페르는 흔들거리는 엉덩이로부터 시선을 떼지못한 채 젤먼에게 연락했다.

    "점심을 준비해오게."

    허약한 엉덩이를 오래도록 귀여워해주려면 잘 먹여야지.

    12첩 수라상? 24첩 재벌상이다. 밥 한 공기 앞에 두고 반찬 한 젓가락씩 집어먹으면 밥그릇 빌 밥상이었다. 물론 한창때의 건장한 남자가, 그것도 걷고 도망치고 나무 오르고 잉야한 끝에 허기진 사내가 밥 한 공기로 끝날 일은 만무하다. 최소한 두 공기, 넉넉잡아 세 공기지. 그렇다고 해도 반찬 하나 당 젓가락이 다섯 번은 가지 않을 으리으리한 상차림이었다. 성무는 헤죽, 나 그냥 이 외국인이랑 평생 살래~하고 헤죽 웃었다.

    "이게 다 뭐냐… 대단해, 대단해!"

    국과 김치는 기본이다. 김치도 빨간 김치 하얀 김치 초록 김치해서 세 종류다. 세 종류를 세 칸으로 나뉜 그릇에 담아서 1첩이었다. 가운데엔 실제론 구경도 못해본 신선로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고 색색의 구절 편에 삼이 큼직하게 들어간 갈비찜도 보인다. 새우부터 호박, 감자, 오징어 등 갓 튀겨 따끈따끈 바구니 가득이요 숯불 향 끝내주는 너비아니며 시금치, 콩나물, 톳, 숙주, 가지 등 각종 나물 무침도 한 접시 고운 색을 이뤄내고 있다. 요쪽에는 탕평채요 저쪽에는 동파육이요, 이쪽에는 해산물 냉채다. 구운 것으로 치자면 통째로 벌거벗은 닭이 한 마리에 굴비, 대하, 연어, 참치가 큼직한 한 접시에서 서로 머리며 몸을 맞대고 있었다. 꿩을 넣어 빚은 만두에 소는 물론이요 말육회까지 보인다. 부드러운 달걀찜 옆에는 번들번들 붉은 등갑 자랑하는 바다가재가 등을 잔뜩 구부린 채 엎드려 있었다. 24첩 채우려면 몇 더 남았지만 그냥 넘어가자. 아무튼 굶주린 장정 열이 덤벼들어도 한 그릇 남을 음식들이었다.

    "아, 아! 뭐부터 먹어야할지 모르겠어!"

    이것이 바로 행복한 고민. 자리가 모자라 두 개를 이어 붙인 식탁 앞 의자에 앉아 성무는 다리를 동동 굴렀다. 뭐부터 먹지, 뭐부터 먹어 볼까! 마음을 가다듬으며 숭늉부터 한 모금 마셨다. 크으, 이 구수한 맛!

    "하아,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더니. 단칸방에서 가스버너로 라면 끓여먹을 적에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봤던가. 당연히 못해봤지. 이젠 아주 몰래 빚보증 세운 아버지가 고마울 지경이다. 그대로 뒀으면 끽해야 서민층 가장노릇하다 삶을 마감하게 되었겠지. 알콩달콩한 가정을 꾸리지 못하게 되었다는 건 좀 많이… 아쉽지만……. 세상 사 뜻대로 흘러가진 않는 법. 알콩달콩한 가정은커녕 법원 들락거리며 위자료 소송하게 되었을지 누가 알겠나. 성무는 결론지었다. 역시 이게 최선이다. 내 인생 최선의 선택이다.

    "아우 야- 이거 진짜 맛있네! 근데 라면은 없어…요? 봉지 라면이나 컵라면이나. 아니면 혹시 섬 나갈 일 있으면 삼겹살 집 가고 싶은데. 뒷 고기도 좋고."

    몸에 좋은 것만 먹다보니 불량식품이 끌린다. 섬에서 보낸 지 1년여, 먹은 것이라곤 죄다 무공해 무첨가 자연식품뿐이었다. 비페르가 가져다 준 음식들도 인공 감미료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오직 몸에 좋은 것! 그렇기에 맛있는 거 볼이 미어지도록 집어넣으면서도 불량식품이 그리웠다.

    "…라멘?"

    일본식 라멘은 먹어 본 적 있는 비페르가 되물었다. 물론 봉지 라면도, 컵라면도 아닌 육수 내어 온갖 고급 재료 집어넣은 고급 라면이다. 그 말에 성무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일본식 말고, 한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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