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어]_내_침실에_원시인이_산다_내_정원~외전 - 11

163일전 | 535읽음

히 남의 장인어른에게 손을 대다니. 빚이 있다면 좋게좋게 5천만 달러 갚아주고 끝내려 했건만. 사채업자들이 알았더라면 땅을 치고 후회 할 생각이었다. 이틀을 못 기다려 5천만 달러가 날아갔다. 현재 환율로 약 550억 원이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하는 법인 것이다.



"찾아내서 소탕한다."


"예, 주인님."



이틀 빨리 움직였다가 550억이 매타작으로 바뀌게 생겼다.






"이 밤에 갑자기 어딜 가자는 거야? 조금 있느면 열한 시인데."



성무는 툴툴대며 차에 올라탔다. 원래 반입금지 생물이기에 여우는 호텔에 두고 왔다. 비페르는 기대해도 좋을 거라며 설명대신 미소만 머금었다. 기뻐하겠지. 무사히 아버지와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유려한 흑색의 차체가 길게 커브를 돌았다. 수도권을 벗어난 외딴 곳에 자리 잡은 버려진 공장 주위를 십여 대의 밴들이 포위하고 있다. 조금 전 무사히 진압을 끝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한무운 씨 역시 상한 곳 없이 무사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점수 따기에 최상의 조건이다. 비페르는 손수 차 문을 열며 성무를 데리고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낯설고 음험한 풍경에 성무의 눈에 불안이 깃들었다. 난데없이 왜 이런 곳에? 설마 내가 지겨워져서 몰레 시멘트에 담가버리려고……. 성무는 걱정스레 비페르를 힐끔거리며 빛이 비치는 커다란 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어?"



뭔가 사람들이 많다. 그 중 십여 명은 무릎 꿇은 채 땅에 머리를 처박고 있다. 기세등등하게 서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비페르를 향해 인사해왔다. 그 광경에 성무는 미심쩍은 시선으로 옆에 선 외국인을 쳐다보았다. 이거… 사업가라더니 조폭이었나! 하긴 요샌 조직폭력배도 다들 자기는 사업한다 그러더라. 면상도 러시아 마피아 같은 거 하면 참 잘 어울릴 거 같긴 하다.



"진짜로 이게 대체 무슨…."


"아버지."


"뭐?"



갑자기 무슨 아버지? 누구 아버지? 설마? 반사적으로 두리번거리던 성무의 눈에 저만치 멍하게 서 있는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아버지!



"진짜 아버지?!"



난데없는 상황에 얼어붙어 있던 소시민 한무운 씨가 익숙한 목소리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저기 저 낯익은 얼굴은!



"서, 성무냐?!"


"아버지! 이 망할 아버지!"



우와아앙! 내 돈 오천만원! 성무는 소리쳤다. 그 뒤를 이어 비페르도 소리치려했다.



"아드님을 제게 줍-."


"허억?!"



비페르의 입을 있는 힘껏 틀어막으며 성무가 괴성을 질렀다.



"카아아아악!!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안하기로 했잖아! 이 사기꾼! 거짓말쟁이!"



비페르는 자신의 입을 막은 성무의 손을 억지로 떼어냈다.



"막상 이렇게 되니 허락을 받고-."


"그 입 다물라! 안 된다! 안 된다고!"


"……."



아무리 부친이 결혼을 반대한다더라도 이렇게까지 난리치며 거부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썩 좋질 못했다. 아니, 솔직히 심히 나빴다. 비페르는 캭캭대며 발악하는 성무의 멱살을 턱 잡았다. 팔딱이던 상대적으로 작은 몸이 바싹 굳는다. 그리고는 그대로 잡아당겨-



"읍!"



키스했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비페르가 고용한 이들은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머리 박은 사채업자 및 폭력배들은 애초에 보질 못하였다. 하지만 장인어른만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하나 뿐인 아들, 장남 놈이 웬 외국 사내놈과 뜨겁게 키스하는 장면을 목도 할 수 있었다. 저거, 저거저거저거…!



"저, 저 새끼가!!"



그는 뒷목을 잡았다. 어이구 혈압이야! 한참 만에 간신히 풀려 난 성무가 벌겋게 부푼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소리쳤다.



"아, 아냐! 이건!"


"저희 곧 결혼합니다."


"뭐시라?!"


"바, 반칙이야! 말 안하기로 했잖아! 헉? 아버지!"



한무운 씨는 결국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날뛰는 성무를 붙잡아 끌어안으며 비페르는 진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쨌거나 반대의 말은 없었다. 침묵은 즉 긍정이니 이걸로 장인어른의 허락도 받은 것이다. 비페르는 119를 외치는 성무의 뺨에 키스했다.



"귀국하면 바로 식을 올리자."


"야 임마! 지금 그딴 소리가 나오냐! 우리 아버지 쓰러졌다고!"


"특실에 입원시켜드리지."


"그, 그래도…."


"저택에 집사와 가정부, 매달 생활비."


"어, 그, 그건…."



꽥꽥대던 성무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조, 좀 좋은데…? 자신에게 준다했으면 됐다고 거절했겠지만, 아버지다. 아버지한테 잘해준단다. 하기야 식 올리면 남도 아니고… 오갈 데 없는 분이시니 부양의 의무도 있긴 하고. 성무는 애인에게 명품 핸드백을 사달라고 조르는 소심한 아가씨처럼 눈치 보며 제시했다.



"그럼… 생활비 매달 이, 이백 만원!"


"…원?"



달러가 아니라? 성무가 당황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많이 불렀나… 그냥 백오십 할 걸. 비페르가 작게 소리 내어 웃으며 성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원하는 대로, 내 사랑."


"지, 진짜?"


"물론."



성무는 답삭 비페르의 목에 매달려 그의 뺨에 입 맞췄다. 우와, 진짜 통 크다! 월 이백이나 주다니, 우리 아빠 대박 났네! 기뻐서 팔짝팔짝 뛰며 성무가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부탁 하나만 더 들어주라!"


"뭐든지, 귀여운 내 Primi."


"빨간 라면 사줘! 봉지랑 컵으로 다섯 개씨만!"



봉지 라면과 컵라면. 비페르는 다정하게 미소하며 대답했다.



"안 돼."


"어, 어째서!"


"몸에 안 좋아."



기쁨으로 가득 찼던 얼굴 위로 슬픔이 찰랑찰랑 차올랐다. 라면… 나의 라면…….



"그, 그럼 삼겹살이라도! 이것도 못 먹으면 나 결혼 안 해! 못 해! 삼겹살! 반드시 길거리 식당에서!"



삼…뭐? 비페르는 이제는 제 몸과 같이 된 전자 사전을 꺼내었다. 돼지고기로군. 길거리 식당의 음식상태가 걱정되긴 했지만 인스턴트식품보다는 괜찮을 듯했다. 게다가 멋 먹으면 결혼 안한다지 않는가. 비페르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앗싸! 나 소주도, 소주도!"



그러는 사이 정신을 차린 장인어른이 무어라 소리치려 했지만 노련한 집사 젤먼이 재빠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가엾은 장인어른은 그대로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 특실로 직행하게 되었다. 당분간 혈압이 쉬이 떨어지지 않을 듯하지만 최소한 노후대책만큼은 완벽하게 갖추어졌다. 애초에 아들 놈 없었다 치고 시집 잘 간 딸자식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나.



그리고 자정을 넘긴 시작 모 고기 집. 술이 떡이 된 원시인은 잔소리하는 늑대에게 홀라당 잡아먹혀버리고 말았다.






"으어어어어어어……."



시체가 일어나서 걸어간다. 흐느적 흐느적거리던 워킹 데드는 제 발에 걸려 카펫 위를 굴렀다. 비페르가 짧게 혀를 차며 맨바닥에서 접영 중인 성무를 일으켜주었다.



"적당히 마실 것이지."



술이 조금 들어가자 하도 귀엽게 애교를 떨어 대서 차마 말리질 못했더니 이 모양 이 꼴이다. 미리 준비해둔 숙취 해소제를 마시고 나서야 성무의 몸이 겨우 똑바로 섰다.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헤벌레 비페르를 쳐다보았다.



"씻어야겠다. 괜찮아, 씻고 나면 멀쩡해 져!"



비틀비틀 걸어가는 것을 따라가 도와주겠다 했지만 막무가내로 괜찮단다. 아직 술이 덜 깼나. 노래까지 부르는 것이 기분은 좋아 보이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어 욕실로 들어가려는 비페르의 눈에 무언가를 가지고 놀고 있는 꼬마 여우의 모습이 들어왔다. 입에 네모난 종이 같은 것을 물고 있다. 그게 뭐가 좋은지 물고는 이리저리 폴짝폴짝 거린다.



"여우."


-끼앙?



멈춰선 여우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다. 비페르는 여우의 주둥이 사이로 반만 내밀어진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사진이다. 엉덩이와… 다른 누군가다. 비페르가 여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컁!



뭐 하려고! 여우는 본능적으로 풀쩍 뒤로 뛰어 물러서며 털을 세웠다. 저리 가, 이 살벌한 놈!



"……."



그냥 손으로 잡기엔 빠른 동물이다. 그렇다고 엉덩이의 애완동물을 다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깐 생각하던 비페르가 호텔 룸서비스를 호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큼직한 쟁반을 든 호텔 직원이 방문했다.



"주문하신 특등급 한우 꽃등심 생고기입니다."



새하얀 마블링이 그야말로 겹겹의 장미꽃처럼 기막히게 들어간 큼직한 살코기다. 비페르는 바닥에 꽃등심이 얹어진 쟁반을 내려놓았다. 여우가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바꾸지."



오오, 콜! 여우는 사진을 물고서 풀쩍 뛰어왔다. 이놈도 알고 보니 봉인가보다. 심심풀이 장난감과 고기를 바꾸자 하다니. 꼬마 여우는 얼른 사진을 퉤 뱉고선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물어들고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비페르는 떨어진 사진을 주워들었다.






"흐아, 조오타!"



뜨신 물 펑펑 써가면서 샤워하니 숙취 해소는 물론이요 아주 훨훨 날아갈 것만 같다. 성무는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타랄 닦아 말리며 욕실을 걸어 나왔다. 머리도 좀 다듬긴 해야겠는데. 어디 가위 없나?



"다 씻었어~ 이젠 멀쩡하다고!"



성무는 수건을 흩날리며 비페르에게로 뛰어갔다.



"다행이군, 그런데 내 사랑."



비페르가 화사하게 웃었다. 너무 화사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 덜컥 두려워질 정도다. 허나 눈치 없는 성무는 그 웃음이 마냥 좋다고 따라웃으며 대답했다.



"왜?"


"이것 좀 봐라."


"응? 뭔데?"



우아하게 뻗어진 손가락 끝에 붙잡힌 한 장의 사진. 여우에게 꽃등심을 주고 교환한 바로 그 사진이다.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은 수수한 차림의 여자. 그리고 그 여자 옆에서 V자를 그리고 있는 평범한 외모의 청년. 성무가 아, 하고 생글거렸다.



"미숙 씨!"



예전에 사귈 뻔했던 미숙이 사진이다. 성무는 턱 끝을 빳빳이 쳐들었다. 원래 이럴 때는 자랑 좀 해줘야 하는 법이다. 나도 이래봬도 말이지, 왕년에 인기 깨나 있었거든.



"나 좋다고 따라다니던 여자야. 원양어선 안 탔으면 지금쯤 결혼했을지도 모르지."



살짝 왜곡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상당부분 진실이기도 했다. 빚쟁이들에게 털리지만 않았어도 무사히 사귀고 결혼에 골인했을 가능성도 제법 있었으니까. 비페르의 손가락이 사진을 테이블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얼굴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다.



"그렇군. 네 Fesse와 사귀었던 여자로군."


"지금도 나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좀 아쉽기도 하네. 그래도 좋은 여자였는데~."



아아, 이 죄 많은 몸! 성무는 멋도 모르고 자랑 질을 해댔다. 사실 자랑 할 만 한 게 그것 밖에 없었다. 그거 말고는 회 써는 것 정도? 아니면 낚시? 주위 온도가 서서히 하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히죽히죽 거린다.



"아쉽다, 라."


"그렇지 뭐~. 이왕 온 김에 한 번 만나나 볼… 어엉? 표, 표정이 왜 그래……?"


"이리 온, Fesse."



뭐야 저거, 무섭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얼음장이야! 성무는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내, 내가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 연애경험 전무의 앞은 여전히 숫총각인 한성무 씨가 막다른 벽에 부닥친 채로 발발 떨었다. 내, 내가 왜! 내가 왜! 왜 그렇게 노려보는 건데! 비페르의 손이 궁지에 몰린 원시인을 덥석 붙잡았다.



"내일 아침, 혼자 걸어 나갈 수 있다면 보내주지. 만약 침실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Primi… 우리 행이다."



동물원에 특별히 마련해 둔 자리가 아직 남아있다더군. 나직하게 가라앉은 소름 돋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성무는 비명을 질렀다. 사람 살려! 이 변태가 나를 복하사 시키려고-! 하지만 들어주는 이 없는 비명은 이내 꼴깍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내 침실에 원시인이 산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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