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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웬돌린] Sunset in Water 외전 이안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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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웬돌린]Sunset In Water (번외 이안류)

    희미하게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지금이 아침인지 낮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정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블라인드 살의 가는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시선을 두었다.

    "9시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장범영은 마치 정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 처럼 대답해 주었다. 정인의 시선이 장범영의 얼굴로 옮겨갔다.

    퇴근하고 들어온 것인지 말끔한 얼굴이다. 밤에 같이 침대로 들어왔고 한두 시간 정도 섹스를 했다. 그리고 거기서 기억이 끊겨 있는 것을 보아하니 섹스를 하다 잠들었던 듯하다. 잠에서 덜 깬 정인이 잠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다녀오셨어요."

    장범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인은 장범영이 침대 위로 올라오는 것을 잠이 덜 깬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범영은 정인의 몸 위로 올라왔다. 다리 사이에 정인을 가둔 그가 넥타이를 끌어내리며 정인을 내려다보았다.

    어릴 때부터 불면증이 있었던 정인인데 섹스 이후에는 정시없이 잠들었다. 섹스를 하다말고 정신을 잃는 것처럼 잠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억눌린 채 쌓여 있던 잠들이 몸에 긴장이 풀리자 일제히 흘러넘치는 듯이 보였다.

    지금도 잠이 눈에 달라붙어서 제대로 눈도 못 뜨는 것 같았다. 장범영은 정인의 목 뒤로 팔을 넣어 정인의 상체를 일으켰다.

    "졸린데……."

    정인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장범영이 멈춰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듯 순순히 입술을 벌렸다. 정인의 몸은 난파선처럼 힘이 없었다. 조류에 떠밀리듯이 정인은 장범영의 힘에 무력하게 흔들렸다.

    장범영은 정인의 입술을 천천히, 길게 맛보았다. 어린애의 맛이다. 정인은 이미 성인이었고 장범영에게 어린애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어린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가볍게 손대는 것만으로도 쉽게 죽을 만큼 약한 데도 마치 저가 세상의 군주라도 되는 듯 의기양양하다.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생물이었다. 단 한 번을 제외하면 장범영은 어린애에게 호의를 품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 단 한번,

    문정인은 그때도 특별한 어린애였다.

    장범영의 인생은 철저히 조부 장진하에 의해 계획되었다. 장진하는 자신의 아들 장학선에 대해 상당히 실망한 상태였다. 장진하는 장학선을 강한 인간을 키우기 원했고 다소의 무도한 행동들을 제어하기는커녕 조금 부추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타고난 성품이 잔인한데 거기에 장진하의 특이한 교육방식까지 겹쳐지자 장학선은 괴물이 되었다. 괴물에게는 이성도 인내도 없었다. 장학선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조직의 간부들이 우려하기 시작했다. 외부적으로는 비밀스러운 조직이던 경성파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부에 있었다. 장학선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간부라 할지라도 거리낌 없이 죽이거나 심한 경우 고문까지 가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은 아버지이자 경성파의 주인인 장진하에게 허라도 받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장학선에게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리고 장학선은 공포를 무기로 사람들을 취두르는 데에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몇몇 간부들이 장진하보다 장학선을 더 무서워하고 그에게 충성을 바치기 시작했다. 장진하는 아들과는 달리 속내를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었다. 아들의 행태에 노여움을 느끼면서도 그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들을 귀해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교육을 빙자해 장범영을 데려왔다.

    갓난아기인 장범영은 자신의 모친을 불러보기도 전에 장진하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장학선은 요조숙녀처럼 구는 아내에게 관심이 없었고 아내도 개망나니 같은 장학선에게 치를 떨었다. 장범영을 내주는 조건으로 이혼을 허락해주자 장범영의 모친은 재빨리 양육권을 포기하고 사이코패스 남편의 곁을 떠났다. 장학선은 아들의 생사에도 관심이 없는 종자였으므로 장범영이 장진하의 슬하로 들어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장진하는 손자 장범영을 자신의 분신처럼 가르쳤다. 장범영은 철저히 훈련받았다. 장진하는 장범영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장범영은 정해진 시간에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그 외에는 장진하의 곁에서 조직의 일을 배웠다. 인형도 로봇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스케이트보드도 만화영화도 알지 못했다. 마약, 매춘, 인신매매, 사채……. 어린 장범영의 세계는 어둡고 피 비린내가 자욱했다.

    19년간 장범영을 분신처럼 다룬 장진하가 어느 날 장범영에게 대학을 가라고 명령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이기도 하거니와 장범영에게 '보통 생활'을 조금쯤은 맛보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장범영에게는 상식이 없었다. 장진하는 사업의 일부를 합법화시키고 있었고 그의 사업체는 장범영이 물려받게 될 것이다. 그럼 장범영은 보통 사람들과도 일을 하게 될 테니 지금붙라도 상식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대학…… 말입니까?'

    조부가 명하는 대로 검정고시를 착실하게 패스해왔지만 대학을 가라고 할 줄은 몰랐다. 반역을 꾀한 하부 조직을 밟아주고 온 터라 장범영의 옷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래. 싫으냐?'

    '상관없습니다.'

    장범영의 얼굴에 희미한 의아함이 깃들었지만 순간뿐이었다. 곧 장범영의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계집애도 좀 사귀고 그래.'

    '명령이십니까?'

    장범영이 물었다. 장진하가 손자인 장범영에게서 유일하게 불만스러워 하는 게 있다면 장범영의 이런 점이었다. 철저하게 비인간적인 부분. 장진하 자신이 그렇게 키웠기에 불평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명령은 아니야.'

    장범영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물어볼 만한 소리였다. 장범영은 조부의 어린 정부와 첫 경험을 치렀다. 조부의 명령에 의해서였다. 조부가 보는 앞에서 섹스를 교육받은 뒤 조부의 명령에 의해 일정한 정부들을 거느렸다. 조부는 조직의 인간이 되려면 정부를 거느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강조해왔었다.

    '필요해지면 말씀대로 하겟습니다.'

    안사귀겠군.

    장진하는 장범영을 손짓으로 나가게 했고 장범영은 허리를 숙여 보인 뒤 사라졌다.

    장진하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장범영은 여자는 고사하고 그냥 친구조차 사귀지 못했다. 같이 다니는 무리는 있었고 그들은 장범영에게 제법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정작 장범영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처음 장진하는 그런 장범영을 아쉽게 생각했다. 일흔이 넘은 장진하가 생각하기에 장범영은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카리스마라는 건 인간적인 부분이 극대화되는 것인데 장범영에게는 아예 그런 부분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 비하면 사업을 족족 말아먹는 장학선에게는 실력은 없어도 추상적인 카리스마가 잇었다. 하지만 카리스마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간은 장범영의 편이었다. 장진하는 자신의 분신 같은 손자가 자신을 배신한 아들을 거꾸러트릴 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인내심 강한 노인인 장진하는 아들 장학선이 조금씩 압박받으며 미쳐가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다니기 시작한 뒤 장범영에게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세계를 맛본 장범영이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토록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줄은 몰랐다. 장범영이 삶을 선택하려 든 것이다. 집을 알아보고 직업을 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장진하의 입장에서는 배신과 같았다. 장범영은 장진하의 분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생을 바꾸겠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장진하는 분노했고 장범영은 조부의 명령대로 군대에 입대했다.

    그리고 스물 셋, 장법영이 제대하던 날.

    "장 실장님, 여기에요!"

    더운 날이었다.

    장범영은 활짝 웃으며 자신을 부르는 여자를 흘끗 바라보았다. 잠시 여자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던 장범영이 이윽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김사라."

    "건강해 보이시네요."

    김사라는 고급 룸살롱의 마담이었다. 그해 그녀는 장범영 나이의 두배가 되었다. 마흔여섯 살, 화류계에서는 퇴물 중의 퇴물이지만 스무 살도 안 된 장범영의 정부가 되어 다시 한번 강남 화류계를 주름잡는 여인들 중 한명이 되었다.

    "제대 축하 드려요."

    김사라가 활짝 ŸS었다. 마흔여섯이라고 해도 남자의 정력을 빨아먹으며 살아온 여자답게 온몬에서 색향이 뿜어져 나왔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김사라의 메인 타깃은 닳고 닳은 오십 대 육십 대 늙은이들이 아니었다. 김사라는 애송이만 노렸다. 제 또래의 미숙한 여자들만 경험한 어리숙한 남자들을 대상으로 치마폭을 휘두르는 게 김사라의 특기였다. 오빠, 오빠, 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지친 남자들을 엄마처럼 품어주면서도 섹스에서는 못할 짓이 없어 노골적이 되는 김사라의 손아귀에서 신세 망친 남자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 남자들에 장범영은 포함되지 않았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장범영은 차가웠다. 열일곱살 어린애가 저런 눈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감한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섹스는 잘했다. 소문에는 장범영을 훈련시키고 있는 조부 장진하가 섹스까지 가르쳤다고 했다. 그 소문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몰라도 그럴 수 도 있겟다 싶을 정도였다.

    "아니."

    "그럼 지금 하실래요?"

    "여긴 웬일이지?"

    장범영이 물었다 아무런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에 김서러 "보고 싶어서 왔지요."라며 생긋 웃었다. 장범영이 마치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김사라의 뒤로 시선을 돌렸다.

    "아우디가 아니군."

    대부분의 마담들이 그렇듯 김사라도 명품에 사족을 못 써다. 샤넬 가방, 페라가모 구두, 아우디……. 그런데 오늘은 김사라가 몰고 온 차가 국산이었다.

    "너무 눈에 띌 거 같아서요."

    김사라는 눈에 띄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여자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감이 좋은 여자기도 했다. 장범영은 뒷좌석으로 걸으며 뒷목이 당긴다는 기분이 들었다. 김사라가 뭐라도 꾸미고 있는 것일까? 2년은 길었다. 누가 배신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러나 김사라라……. 이 조심성 많은 여자가 배신을 한다면 뒷배에 제법 단단한 인간이 있다는 뜻이다. 사장일까? 회장일까? 사장인 부친과 회장인 조부를 떠올리며 장범영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가늠해보고 있었다. 마지막 휴가 때까지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었는데.

    장범영이 뒷문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김사라가 뒤에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지금 이목을 좀 끌고 있는데."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해도 김사라는 오십에 가까워가는 여성이었고 장범영은 이십 대 초반이었다. 김사라의 외모는 누가 봐도 화류계 여성으로 보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범영과 김사라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불편하십니까?"

    장범영이 뒷문을 여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선팅을 하지 않은 차인데다 김사라가 이런 과격한 방법을 취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일반인들과 규칙적인 집단생활을 하다보니 감이 좀 녹슨 탓도 있었다. 차 안에서 튀어나온 놈의 얼굴을 보는 것과 동시에 장범영은 몇만 볼트의 전기 충격을 받으며 정신을 잃었다.

    "좀 불편해지실 테지만 익숙해지셔야죠."

    김사라의 얄미운 목소리가 마지막 기억에 희미하게나마 남았다.

    장범영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창고에 갇혀 있었다. 먼지가 엄청난 곳이었다. 손은 앞으로 묶여 있었다. 발에도 쇠사슬이 걸려 있었다. 너저분한 물건들은 원래 창고에 있었던 물건처럼 보였다. 장범영을 위한 물건은 요강과 생수 한 병 뿐이었다.

    장범영을 가둬 둔 놈들은 하루에 두세 번씩 와서 장범영을 향해 주먹을 휘드르거나 이죽거렸지만 그뿐이었다. 장범영의 머리는 어지럽게 돌아갔다. 현재 자신의 상테는 무엇인가? 유괴. 유괴라면 무언가를 목적으로 하기 마련이다. 일단 장범영 자신에게 목적하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외부의 누군가에게 장범영의 일신을 빌미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일단 외부의 누군가는 조부인 회장일 테지만, 문제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갇힌 지 사흘째. 온몬의 피가 안 도는 듯한 불편한 기분과 함꼐 슬슬머리가 멈추기 시작하고 있었다. 공복, 더위, 어둠, 무엇보다 묶여있는 몸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다. 계속 자고 싶어졌다.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게 아니라 몸이 생존을 위해서 수면을 유도하고 있다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기 때문에 잠을 자는 수밖에 없었다. 살아나가려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한다. 언제 무슨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일단은 자자. 장점영은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뭔가가 얼굴에 떨어지고 있었다. 장범영은 결국 눈을 떳다. 무시하기에는 어지간히 걸리적거린 탓이었다.

    어린애가 있었다.

    꿈인가? 어릴 때도 꿈과 현실을 혼동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창고에 왜 어린애가?

    "……현실이군."

    장범영은 몸을 일으켰다. 꿈속의 어린애도 지금 이 아이처럼 울어줄 수는 있겠지만 침까지 흘리진 않을 테니까.

    "안…… 죽었어?"

    어린애는 너무 더러웠다. 냄새 나는 꼬맹이는 꾀죄죄한데다 멍청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별 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아이가 울다 말고 웃었다.

    "다행이다."

    얼굴에는 뭔가가 잔뜩 묻어 있었지만 자세히 보니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장범영은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이는 마치 저가 살았다는 듯이 기쁘게 웃고 있었다.

    살아 있는 게 뭐가 대단하다고 이렇게 웃는지 장범영은 알 수 없었다. 어린애란 본디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이지. 그렇게 생각한 장범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저, 저기, 저기."

    "……."

    "왜 자꾸 자기만 해? 어디 아파?"

    너도 눈이 있으면 사람의 상태를 좀 보지그래. 사흘간 묶여 있어서 피가 안 통할 지경인데다 밥도 못 먹었는데 그럼 자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겠어? 장범영은 어린애를 무시하고 자려다 갑자기 눈을 번쩍 떳다.

    "너."

    장범영이 똑바로 사람을 쳐다보면 사람들은 움찔 굳고는 했다. 하지만 어린애는 굳지 않았다. 방긋거리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고작 '너'라고 불러준 것에도 무척 기쁜 듯한 얼굴이었다.

    "어디로 들어왔지?"

    아이의 얼굴이 미묘해졌다. 당황한 듯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확신이 섰다. 아이는 몰래 들어온 것이다. 아이가 뒤로 물러나려는 순간 장범영은 손을 뻗어 아이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어디로 들어왔어?"

    "그……그게."

    아이는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커다란 눈동자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장범영은 확신했다. 아이는 뒷문을 알고 있었다.

    "어디로 들어왔냐고."

    "그, 그, 그게."

    아이가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아픈가 싶어서 장범영은 손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울 것 같은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어린애는 질색이다. 장범영은 어린애를 다뤄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눈앞에 있는 어린애는 더럽고 말귀도 안 통할 것 같았다. 고문이든 뭐든 말귀가 통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 어린애는 한국어를 하고 있는데도 너무 어눌해서 마치 외국어를 듣는 듯했다.

    사업 때문에 영어와 일본어를 그럭저럭 하고, 중국어와 러시아어도 일정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장범영이었지만 어린애의 말은 외국어보다 더 알아듣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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