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판타지   무협   BL   기타

작품 검색

회고록 서정현 넝마 슈팅스타 그림자 바다야경 하얀 바이앤하이 조선 제인 조이 이예즈 모카커피 방구석 반지 소원 수태고지 그리하여

바닐라 - 1

  • 바닐라.txt (226kb) 직접다운로드

    -사랑이 언제부터 시작되지?

    -지금부터.

    달콤한 그 이름 {바닐라} - 01

    written by 수이 (superj.lil.to)

    극본이 변경됐다. 연출가는 중국집에서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개막일이 이제 겨우 한 달이 남은 시점이었다. 뭐요? 강인은 펄쩍 뛰며 꽥 소리를 질렀고, 정수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규현은 갑자기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주저앉아 버렸다. 되는 일이 없군.

    ‘바닐라’는 세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이라기 보단 출연진이 남자 셋뿐이었다) 옴니버스 식 연극이었다. 외국에서 여러 차례 호평 받은 작가가 극본을 써 처음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한창 홍보를 펴나가고 있었더랬다. 연출가는 변경 사항이 대동소이하다고 말했지만, 새 극본은 상당 부분 달라져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판이었다. 까짓것, 연극 대본 외우는 게 한두 번이던가. 그렇게 마음먹고 시작하는 일은 사실 아주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준비 기간이 지금보다 더 짧았던 때도 있었다. 정작 그들을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세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이 ‘네 남자를 주인공으로 하는’으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더구나 새로운 주인공은 비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할 거라고 했다.

    나이가 어리되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연기자를 발탁할 것. 콧대 높은 작가는 캐스팅 조건을 까다롭게 내세웠다. 영화나 드라마라면 몰라도, 연극계에서 젊고 경력 높은 연기자를 찾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찍이 연극계에 뛰어든 강인이나 정수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합류된 규현은 이제 일 년을 채워가는 중이었다. 그것 때문인가. 규현은 자신의 캐스팅 조건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며 성을 내던 작가를 떠올리며 자책했다. 오디션을 통해 선출이라. 경력을 고집하던 초기의 자세와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규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다시 시작인가.

    “오기만 해봐. 내가, 군기를 빌미로 해서 아주 피똥 싸게 괴롭혀줄 테니까.”

    강인은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나 그의 염려나 기대와 달리, 꽤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류된 연기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예의가 발랐다. 들어오자마자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곤 샐쭉 웃는 얼굴은 귀엽기까지 했다.

    “이성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난 저 새끼 맘에 안 들어.”

    연습실 구석에서 한껏 소리를 낮춘 채 전화를 받고 있는 성민을 노려보며 강인이 불만을 토로한다. 정수가 설핏 웃으며 곁에 앉는다.

    “뭐가 맘에 안 드는데?”

    “새끼가 날 보기만 하면 웃어.”

    “웃는 게 왜에.”

    “그게 비웃는 거야, 비웃는 거.”

    “억지야, 억지.”

    정수가 강인의 말투를 흉내 내며 나무란다. 성민을 탓하고 있지만, 실은 개막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변경된 극본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진즉에 눈치 챘다. 개막 전부터 관심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강인은 긴장을 감추기 위해 가끔 이렇게 허장성세를 부리곤 했다.

    “저 자식은 잔다, 자.”

    강인이 연습실 중앙에 대(大)자로 누워있는 규현을 가리키며 혀를 끌끌 찬다. 쉬었다 하자, 정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눕더니 꼼짝을 않고 있다.

    형광등 또 나갔네. 규현은 천장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막막해서 힘이 쭉쭉 빠진다. 한 번에 열 개씩이라도 다 소화할 수 있었을 것 같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 동안 연습했던 것들 대부분이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니 한숨만 나온다. 규현은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돌린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성민이 눈에 들어온다. 숨까지 죽인 채 조용조용 말하고 있어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물거리는 입 모양만 눈에 들어온다. 윗입술에 잔뜩 힘을 준 채 위 아래로 들썩이는 움직임이 오밀조밀하다. 퍽 귀엽다. 이런 순간에도 누가 귀여워 보이다니, 병이 도졌나. 그나저나 저걸 형이라고 불러야 하다니, 규현은 어쩐지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며 눈을 감는다.

    성민이 통화를 마치곤 쫄래쫄래 정수와 강인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그러곤 정수를 향해서인지 강인을 향해서인지 모를 애매한 방향에 대고 입을 연다.

    “형, 저, 밖에 친구가 왔는데요. 저 정말 죄송한데 친구 잠깐만 만나고 와도 될까요?”

    강인은 고개를 휙 돌려버리고 정수는 당황한 눈치다.

    “어, 뭐, 그래. 지금 쉬는 시간이니까.”

    “정말 죄송해요. 금방 갔다 올게요.”

    “아니 뭐, 나한테 죄송할 건 없구. 쉬는 시간은 자기 마음대로 써도 되거든. 30분이니까 시간만 지키면 돼.”

    “네, 감사합니다. 저 금방 다녀올게요. 들어올 때 뭐 사올까요?”

    “아냐, 괜찮아.”

    “네, 정말 죄송해요. 다녀오겠습니다.”

    꾸벅꾸벅 허리를 굽혀가며,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계속 인사를 해댄다. 죄송해요, 다녀오겠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금방 올게요. 정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손인사만 하다 성민이 나가자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강인이 질린 눈으로 고개를 든다.

    “뭐 저런 자식이 다 있어?”

    “왜, 왜에, 또.”

    “저거 또라이 아니야? 대체 뭐가 그렇게 죄송해?”

    “왜 그래. 착한 것 같구만.”

    “행동 하나 하나가 맘에 안 들어.”

    강인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누워버린다.

    성민과의 첫 연습은 다른 때보다 일찍 끝이 났다. 성민이 아직 극본을 다 외우지 못한 상태라 길게 연습을 끌 필요가 없었다. 환영식을 해야 했지만, 성민이 극본을 외우는 게 급해 주말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오늘은 이만 갑시다. 연출가의 마무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인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가방을 들고 잽싸게 연습실을 나가버린다. 대체 뭘 넣고 다니기는 하는 건지, 쓸데없이 커다란 가방은 늘 홀쭉한 모양이다.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정수가 가방을 챙기며 인사를 나누고 있으면, 강인은 어김없이 연습실 문을 박차고 들어와 버럭 성을 낸다.

    “빨리 안 나와?”

    “가방 좀 챙기구.”

    “아, 대충 해.”

    정수의 행동이 좀 느린 데가 있기도 했지만, 강인은 도무지 1분 1초도 기다릴 줄을 몰랐다. 바닥에 널브러진 옷과 수건을 대충 정수의 가방에 쑤셔 넣곤 빨리, 빨리, 재촉하며 다시 연습실을 나선다. 성민은 다소 당황한 얼굴이다.

    “맨날 저래.”

    규현이 가볍게 어깨를 치자, 성민은 그제야 웃음을 띤다.

    “규현이는 어디 살아?”

    오랜 친구를 대하듯 살갑게 묻는다.

    “방배동.”

    “어느 역에서 내려?”

    “방배역.”

    “와, 나랑 같은 방향이다. 내가 두 정거장 전에 내린다.”

    뭐 대단한 거라고 손뼉까지 치며 기뻐한다. 상냥한 말투며, 내내 웃음 띤 얼굴이며, 아무래도 애교를 타고난 모양이다. 극본 변경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쌓여온 스트레스가 조금 녹아드는 것 같다.

    둘은 지하철에 올라 문가에 마주 보고 섰다.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안으로 밀려들기만 하고 좀처럼 빠져나가질 않아, 어느새 만원이 되었다. 제기랄. 규현은 성민과의 거리가 좁아질수록 왠지 조바심이 나서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봤다. 퇴근 시간이었다. 여섯 정거장쯤을 지났을 때, 둘은 가슴을 거의 맞붙인 채로 서야했다. 허공으로 시선을 돌려보려 해도 젠장맞을 뒤통수들만 가득이다. 규현은 제 가슴께를 내려다보며 어색하게 묻는다.

    “여기 뽑히기 전엔 뭐했어?”

    “공부했지요.”

    강아지처럼 고개를 갸우뚱 기울인 채 또 활짝 웃는다. 귀엽다. 미치겠다. 규현은 필사적으로 성민의 눈을 피한다.

    “좀 불편하지?”

    “아뇽.”

    아뇽은 뭐냐.

    “규현아, 우리 내일 같이 연습실 갈래? 같이 가면 안 심심하잖아.”

    “뭐, 그러던가.”

    “그럼 몇 시에 만날까?”

    그들이 나눈 대화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혈액형이나 취미 따위를 묻는 게 고작이었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겨우 내린 성민이 바깥에서 크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사라지고 나서, 규현은 그와 나누었던 대화들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했던 말 대신 힘주어 오물거리는 입술만 어른거렸다. 대단찮은 말에도 일일이 반응하던 모습들도 간간이 머리를 스쳤다. 그런 형상들이 너무 아른거려,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정말로 병이 도졌나.

    규현은 집에 도착할 무렵 성민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새로운 친구가 생겨서 완전 행복한 성미니입니닷 ^▽^ 잘 들어가구 내일 봐용♡]

    애교를 타고난 게 분명하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지?

    -바닐라가 끝날 때까지.

    당신을 유혹하는 이름 {바닐라} - 02

    written by 수이 (superj.lil.to)

    버스 만원일 거야. 정수는 일찌감치 시간을 확인하고 강인에게 밥을 먹자고 권했다. 정수야 만원 버스를 곧잘 타곤 했지만, 강인은 견디지 못할 게 틀림없었다. 둘은 근처를 배회하다 자연스럽게 술집으로 향했다.

    “밥 안 먹어도 돼?”

    “응. 괜찮아.”

    “안주 좀 배차는 걸로 시켜. 무식하게 술만 퍼 먹지 말고.”

    “그거야 니 얘기지. 난 안 그래.”

    술집은 한적했다. 한참 장사가 잘 될 땐 나이트마냥 소리를 빽빽 질러야 대화가 가능할 만큼 사람이 붐비는 곳이었다. 사장이 자랑하는 소시지 구이 맛이 그만이었다.

    “이제 안 데려다줘도 돼.”

    나 우울증 도졌나 봐. 집에 가다가 콱 죽어버리고 싶고 그래. 3주 전 정수가 말했을 때, 강인은 선뜻 그를 바래다주겠다고 나섰다. 가끔은 정수와 함께 잠을 자 주기도 했고, 울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요란한 주사까지 고스란히 받아주었다. 그 때만큼은, 강인은 정수에게 조금도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아무리 길어도 우울증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인은 바래다주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았다. 정수를 바래다주고 나면 족히 두 시간은 차를 타고 가야 집에 도착할 만큼 먼 거리였는데도.

    정수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한동안은 강인을 놔두었다. 사람 드는 건 몰라도 나는 건 안댔다. 다시 혼자가 된 귀갓길은 심한 울 상태일 때보다 더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구박하거나 괴롭히는 말을 해도, 곁에 누군가의 체온이 있다는 게 너무 따뜻해서, 정수는 그런 행복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우울증 끝.”

    “맞어?”

    “맞어. 진짜 끝.”

    “넌 대체 뭐가 그렇게 우울하냐?”

    평소엔 우울증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않더니, 우울증이 끝났다고 하자 대번에 그런다. 다행이다, 따위의 좀 더 세심한 말을 해줄 수는 없는 건가. 정수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형이라고 햇, 괜한 트집을 잡는다.

    “강인아, 나 이름 바꿀까봐.”

    “이름은 왜?”

    “넘 흔하잖어. 이특 어때? ‘특이하다’에서 ‘특이’를 뒤집는 거야. 특이특이 이특이에요.”

    “이특? 그게 뭐냐? 그게 사람 이름 이야? 개 이름이지.”

    “그게 어째서 개 이름이야! 그리고 너도 예명이잖어.”

    “강인은 멋있잖아. 이특이 뭐냐, 이특이. 차라리 해피나 메리라고 하지 왜.”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 크으, 시원하게 소리를 낸다. 이제 저녁인데 밖이 벌써 어둡다. 비가 올 거라고 하더니 그것 때문인 듯하다. 우울증 끝났다고 괜히 고백했나. 정수는 혼자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막막해진다. 비도 오고, 눅눅하고, 다시 우울증이 도져버릴 지도 몰라. 정수가 괜한 걱정을 하며 술잔을 입에 털어 넣는다. 천천히 마셔라. 강인이 그러면서도 술잔을 채워준다.

    “오늘까진 데려다줄게. 비도 온다는데, 우울증 도질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홱홱 달아오른다. 정수는 급하게 술을 들이킨다.

    “아, 쫌! 술도 못하는 게.”

    강인이 버럭 소리치며 술잔을 뺏는다. 술기운까지 더해지니 금세 머리에 열이 오른다. 정수는 강인을 가만 노려보다 술을 병째 들고 입에 문다. 당장 못 내려놔? 강인이 한대 칠 기세로 벌떡 몸을 일으킨다. 저렇게 펄쩍 뛰는 모습을 보니 좀 낫다. 정수는 얌전히 술병을 내려놓는다. 그의 목소리가 너무 깊어, 숨이 가빠온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뛴다. 괜찮아. 바닐라만 끝나면, 그럼 그 땐.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를 달랜다.

    지금 출발한다, 규현이 집을 나서며 성민에게 문자를 보내자 얼마 되지 않아 답문이 도착한다.

    [응응! 나도 나갈게요 ^- ^// 우리 가면서 호떡 먹자♡]

    하트를 보자 기분이 묘해진다. 근데 웬 호떡. 한 여름에 호떡 파는 데가 어디에 있다고. 규현은 한 번 받아칠까 하다가 관둔다. 어젯밤 내린 비 때문인지 아침부터 몸이 뻐근해 손가락 놀리기도 귀찮다.

    “호떡이 왔어여.”

    지하철 맨 앞 칸.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던 성민이 지하철에 올라 호떡을 건넨다. 방금 한 건지 뜨끈뜨끈한 게 먹음직스럽다. 규현은 호떡을 받아들며 일어나 자리를 내어준다.

    “나 괜찮은데.”

    “앉아.”

    몸을 배배 꼬는 성민의 어깨를 눌러 억지로 앉힌다. 괜찮긴, 얼굴에 ‘나 앉고 싶어요’라고 써 있구만. 규현은 피식 웃으며 호떡을 반으로 찢어 입김으로 식힌다. 설탕이 참 넉넉하게도 들어있다. 조금만 기울이면 밑으로 뚝뚝 떨어질 것 같다.

    “맛있어?”

    아직 먹지도 않았거든. 규현은 급하게 호떡을 식히곤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맛있네.”

    그러자 성민이 활짝 웃는다.

    “나 호떡은 처음 해본 건데.”

    “이걸 직접 만들었다고?”

    국이나 찌개 따위를 직접 만드는 건 봤어도 호떡을 직접 해먹는 사람은 또 처음이다. 군고구마나 오징어 튀김 같은 것도 해먹으려나? 길거리에 널려 있는 군것질 거리들을 혼자 해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앞치마 두르고, 한 손에 국자 들고. 왠지 어울린다.

    “규현아.”

    성민이 규현의 옷자락을 잡아끌더니 제 허벅지를 탕탕 친다.

    “요기 앉아요.”

    쿨럭. 규현은 하마터면 씹고 있던 호떡을 통째로 뱉어버릴 뻔했다. 손으로 입술을 닦으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제기랄.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남은 호떡을 몽땅 입에 밀어 넣는다. 귀여운 것들은 죄다 싫어.

    규현과 성민이 연습실에 도착했을 때, 정수와 강인은 기자 몇몇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너네도 해야 돼. 연출가의 지시에 규현은 한 쪽에 가방을 풀고 기자들에게 향했다. 잠시 눈치를 보던 성민이 뒤를 쫓았다. 기자들의 관심은 대부분 변경된 극본과 성민에게로 쏠렸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정수나 강인, 규현도 그랬지만 성민은 그야말로 신데렐라였다. 연극계에 있는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바닐라’에서 역을 따내길 바랐다고 했다.

    “기분 넘 좋아요. 첫 작품인데, 이렇게 관심도 많이 가져 주시구. 또 좋은 사람들하고 같이 하니까 더 좋아요.”

    성민은 어떤 물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대답한다. 연신 웃으며 좋다는 말만 할 뿐이지만, 첫 인터뷰인데 조금도 긴장하질 않는다. 맑게 빛나는 두 눈에 시선이 잡혀, 규현은 제게 날아오는 질문에 아무렇게나 답해버린다.

    연습 내내 규현의 눈이 성민을 좇는다. 난 왜 귀여운 것만 보면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릴까. 주먹으로 머리를 툭툭 때리면서도 그를 바라본다. 성민은 제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상대의 연기를 진중하게 살핀다. 어쩐지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오고도 틈틈이 극본을 확인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않는다. ‘팔랑팔랑’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한 가벼운 걸음으로 연습실을 휘젓다 강인에게 괜한 소릴 들어도 헤헤, 웃어넘긴다. 귀엽다. 진짜 세상 살면서 봐온 것들 중에 가장 귀여운 것 같다. 규현은 이제 스스로를 자제시키지도 못하고 넋을 놓는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불에 덴 것처럼 놀라 고개를 돌리고 시치미를 뗀다. 짝사랑에 빠진 여고생이라도 된 기분이다.

    연습은 밤

작품 리스트

요청게시판

옵션



Business Adress : Hannam-dong, Yongsan-gu, Seoul (Daesagwan-ro 961gil)

Headquarter Adress : 97 Lillie Rd, Earls Court, London SW71 1UD UK

CEO : Edward Choi

Business Number : 211-17-34675 (KR)

Company Name : LL Company

CS center : 21:00~05:00 (GMT+9)

CS number +44) 20 7610 0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