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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젯]순정만화가와 어시스턴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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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정 만화가와 배경 어시스턴트

    에이젯 ([email protected])

    시내에 위치한 대형 서점 내, 많은 이들의 눈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움직일 때마다 휘적휘적, 소리가 날 정도로 긴 다리를 움직여 서점의 중앙 통로를 가로지르는 사내에게. 그는 대충 보아도 180은 족히 넘어가는 듯 보였다. 간신히 180에 걸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훨씬 웃돌았다. 어쩌면 190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요새 평균 키가 커졌다, 커졌다 해도 실상 주변을 살피면 170을 간신히 넘는 남자들이 넘치는 상황에서 그의 훤칠한 키는 단연 돋보였다. 거기다 그는 단지 키가 큰 것이 아니라 작은 머리와 넓은 어깨, 긴 다리가 완벽한 모델 체형을 지니고 있었다. 단순한 라운드 형 흰 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엄청난 명품을 둘러 입은 듯한 효과를 지니는 명품 몸매였다. 거기다 마스크는 어떤가. 한눈에도 훈남이다! 싶을 만큼 시원스런 이목구비가 신은 공평하다, 라는 말을 단번에 해치워 날리는 얼굴이었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그다지 꾸미지 않은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신선해 보였다. 특히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겉모습과 달리, 아직 뽀송뽀송한 피부가 정말 한눈에도 상큼한 느낌이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눈 호강을 하게 되었다 여겼는지 많은 이들이 그를 향한 시선을 떼질 못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를 지켜보던 이들은 깜짝 놀랐다. 성큼성큼, 거침없이 걸어가던 그가 걸음을 멈춘 곳이 도무지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코너였기 때문이다. 그곳은 다름 아닌, 왕방울만한 눈을 빛내는 소녀들이 핑크빛, 노란 빛 화사한 파스텔 톤 속에서 웃고 있는 책들이 즐비하게 늘어진 순정만화 코너 앞이 아닌가! 소년 만화도 아니고, 스포츠 물도 아니고, 순정만화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또 그가 그곳에서 진지한 얼굴을 책들을 살피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묘한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저 잘생긴 남자가 성격까지 자상해서 여동생이나 애인의 부탁으로, 혹은 선물을 사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신들만의 착각을 말이다.

    “여기 있다!”

    사내가 막 신간 코너에 진열된 책들을 둘러보다가 반가운 외침과 함께 한 권을 집어 들었을 때, 그의 등 뒤로 교복을 입은 두 소녀가 들어왔다. 소녀들 또한 사내와 마찬가지로 순정만화 코너에 들어서자마자 신간 코너를 살폈다. 자연스럽게 두 소녀가 사내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사내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손에 든 책만 어쩐지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 이거 완결 나왔네?”

    다가온 두 소녀 중 한 소녀가 중얼거리며 사내의 손에 들린 것과 같은 책을 집었다. 순간 사내의 시선이 힐끗 소녀를 향했다. 그때 옆에 있던 소녀의 친구가 물었다.

    “이거 재밌어?”

    “응. 근데 재밌긴 한데 이 사람, 스토리도 잘 그리고 배경도 괜찮은데 인물 작화가 영 부실…….”

    소녀가 딱 거기까지 대답했을 때였다. 갑자기 곁에 있던 사내가 소녀의 어깨를 탁 집었다.

    “이봐.”

    “꺅!”

    “어머!”

    두 사람이 동시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개를 잡힌 소녀는 흠칫 몸을 떨기까지 했다. 하지만 곧이어 확인한 사내의 아름다운 얼굴에 두 소녀는 잠시 얼빠진 얼굴로 그를 보았다. 자신들이 순정 만화를 보며 열심히 상상한 남자 주인공이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 갑작스런 상황전개는, 혹시 나에게도 순정만화와 같은 일이? 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만화는 만화일 뿐.

    “대체 무슨 근거로 이 만화의 작화가 부실하다고 말하는 거야?”

    사내를 백마 탄 왕자님의 캐릭터로 변모시켜 로맨틱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는 소녀들의 기대를 무참히 깨뜨리는 질문이었다.

    “다시 한 번 들여다 봐. 대체 이 인물 작화가 어디가 어떻다고 그러는 거야.”

    사내는 말과 동시에 자신의 손에 든 만화책을 소녀의 얼굴에다 바짝 들이밀었다.

    “왜, 왜 이러세요?”

    소녀가 당황해선 사내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친구도 함께 물러섰다.

    “그러니까 이 만화 인물 작화가 대체 어디가 이상하냐니까.”

    재차 반복되는 사내의 끈질긴 물음에 두 소녀가 바짝 달라붙었다.

    “야, 저 사람 이상해.”

    “무슨 일 당하기 전에 가자.”

    두 사람은 불안한 듯 속삭이고는 서둘러 두 소녀는 서로 불안한 듯 속삭였다. 자신들이 마주했던 사내는 비록 외모야 더 없이 완벽한 훈남이었지만, 속은 좀 이상한 것 같았다. 아무리 껍데기가 훌륭해도 속이 엉망이면 소용없는 일 아닌가. 두 소녀는 조금 전 깨어진 기대를 미련도 남김없이 탈탈 털어버린 채 뒤도 안 돌아보고 그곳을 떠났다.

    “저 녀석들…….”

    재빨리 도망가 버리는 소녀들을 사내가 조금 당황스런 눈길로 바라보다가 이윽고 자신이 들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내린다. 그의 비친 것은, 아기자기하다고 매끄럽게 예쁜 그림체라기에는 2% 부족한 듯한 다소 밋밋한 얼굴의 소녀가 환히 웃고 있는 책의 표지였다. 하지만 그것이 눈을 통과해간 그림이 사내의 뇌에선 조금 다르게 입력된 모양이다.

    “아니, 이 정도면 충분히 예쁘구만. 어떻게 이보다 더 예쁘게 그려? 아주 완벽한데, 퍼펙트야!”

    남자가 절대로 빈말이 아닌, 진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신이 들고 있던 것과 같은 책을 두 권이나 더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쯧. 자기들이 보는 눈이 없으면서. 정말, 저런 바보들은 우리 선생님을 모를 수밖에!”

    계산을 끝낸 사내는 서둘러 책에 포장된 비닐을 뚫고 책을 휘리릭 훑어보며 다시 한 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거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 책을 넘기던 손을 멈췄다. 만화가가 특별히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후기 코너였다. 사내는 잠시 그 페이지의 내용을 샅샅이 훑는가 싶더니, 이윽고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었다.

    ‘항상 수고하는 진수군, 너무 고마워♡’

    사내의 눈 안에 넓은 페이지 중 단 한 줄의 글자만이 비치는 듯 큼지막하게 박혀 들어왔다. 글자를 눈에 새겨 넣은 사내의 몸이 잠시 부들부들 떨렸다. 이윽고,

    “으아아아아아!”

    사내가 마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내질렀다. 반짝반짝, 촉촉이 젖어 빛나는 눈이 무한한 감격을 담고 있었다. 사내는 잠시 더 울먹거리는 듯한 눈으로 책을 한 번 내려다보고는 책을 가슴에 꼭 끌어안는다.

    사실 책에 쓰여 있는 ‘진수군’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이 바로 이 사내였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만화 작가의 문하생 겸 어시스턴트였다. 하지만 그에게 이 만화작가는 단순히 자신의 선생님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은 역사를 가진 상대였다

    진수가 처음, 순정만화를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도 전이었다. 그리고 진수는 9살 때 우연히 자신의 누나가 사다 둔 순정만화책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아주 흠뻑 빠져들었다. 다른 친구들은 순정만화의 비현실적인 그림이나 닭살스런 내용에 기겁을 하고 아주 지루해마지 않는데, 자신은 너무 재미있고 즐거운 거였다. 물론, 친구들이 즐기는 영웅 만화나 스포츠 만화가 재미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보다 순정만화가 비교할 수 없이 더 재미있었을 뿐이다. 언젠가 자신도 이런 만화를 그려보아야지, 하고 생각할 만큼.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런 진수의 취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무시하고 폄하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진수에게 있어 단지 취향만이 비하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이 짓밟힌 것이었다. 특히 오덕후라는 존재가 아주 부정적인 대상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진수는 남들과 다른 취향으로 오덕으로 매도되었고, 가족들까지 그런 변태 같은 취향은 버리라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진수 또한 자신이 잘못된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을 때. 순정만화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남자 만화가가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바로 성호민. 그는 도무지 남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섬세한 감수성으로 가득 찬 내용을 그릴 줄 알았다. 또 그리 예쁘장한 그림체는 아니나 따뜻함이 엿보이는 정감 가는 그림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시 모두가 하나같이 예쁘게, 예쁘게를 외치가 결국 너무 비슷비슷해진 만화가들의 그림에 식상해 있던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이미 처녀작으로 대 히트를 기록해 많은 팬을 확보했고, 그 뒤 발표한 두 작품 또한 연달아 인기를 얻어 명실공이 우리나라 순정만화계의 거목이 된 것이다.

    진수는 단번에 그에게 매료되었다. 그의 만화도 만화였지만 무엇보다 그의 존재자체가 진수에게는 더 없이 빛났다. 그의 등장은, 순정만화는 감히 남자가 넘보기 힘든 영역인 것인가,를 고민하던 진수에게 단번에 고개를 저었고. 그로인해 자신이 그만 포기하려했던 꿈을 되찾아 주었던 거니까.

    진수는 그를 알게 된 순간, 곧바로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답장이 왔다! 인기 작가라 수많은 팬들에게 편지가 올 거고, 여러모로 바쁠 텐데도 고이 손으로 쓴 답장이 왔을 때 진수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사정을 듣고 자신도 어릴 때 비슷했다면, 비록 힘들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 섞인 문장에 진수는 정말 마음을 뭉클할 정도로 감동했다. 그렇게 시작된 진수의 편지는 그 후로도 꾸준히 계속되었다. 그리고 호민의 답장 또한 더디지만 끊이지 않고 도착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팬으로서 작품의 내용들만 다루던 편지가,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시시콜콜한 개인사도 조금씩 적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걸 알게 되었다. 호민은 순정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반대하는 집에서 뛰쳐나와 혼자서 갖은 알바를 해가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꼬박 2년을 투자한 끝에 처음 데뷔작을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는 스토리 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그림을 유독 힘들어하고. 특히 배경에 아주 젬병이라 배경을 그릴 때마다 아주 힘겨워 한다는 것. 하지만 진수의 경우는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각종 사물이나 건물 같은 배경을 오히려 다른 이보다 손쉽게 그렸고, 도리어 인물 그리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진수는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내심 생각했다. 자신이 그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호민을 도와 배경을 그려주고, 대신 자신은 인물을 그리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고. 하지만 당시 그는 그런 바람을 실천하기에는 아직 어렸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꼭꼭 숨겨두고 실력을 갈고 닦았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 자신이 원하던 대학의 만화애니메이션 학과에 입학이 확정된 순간 무작정 짐을 챙겨 호민에게로 갔다. 진수가 가게 된 대학은 타 지역이라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자취를 해야 했는데, 그곳이 마침 호민이 살고 있던 지역이었으니 갈 이유도, 여건도 충분했다.

    그렇게 진수는 무작정 호민을 찾아가 문하생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 걱정이 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자신이야 오래전부터 그날만을 기다려왔다고 하지만, 호민에게는 전혀 느닷없는 이야기였다. 비록 꽤 오래 편지를 주고받은 사이였지만 두 사람은 단지, 그뿐이었다. 단 한 번 만나거나 전화조차 해본 적 없는 사이였다. 아무리 사적인 이야기들을 나눈다 해도 호민과 진수의 관계는 엄밀히 따지면 팬과 작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진수 또한 단지 오랫동안 알아왔던 팬이라는 이유로 호민이 자신을 채용해주리라 물렁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그의 편지에서 자신을 도와주던 배경 어시스턴트가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을 모집해야 하는데, 아직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공개공고를 낼까 고민 중이라는 상황을 알려줘 알고 있었다. 거기에 희망을 걸고 간 것이었다. 자신이 입학한 대학이라면 분명 실력이 부족하다는 소리를 듣진 않을 거라고 믿으며.

    ‘앗, 진수군? 정말? 와! 반갑다! 진짜 반가워, 나 정말 보고 싶었는데! 일단 들어와, 들어와.’

    마땅한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온 자신을 그는 생각보다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안. 이런 것밖에 대접할 게 없네. 미리 말했으면 뭐 좀 준비해뒀을 건데.’

    ‘아니요! 제가 무작정 쳐들어온 걸요. 그, 실례가 아닌지…….’

    ‘아니야, 아니야. 어제 마감도 끝내고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잠만 자고 일어난 데다, 딱히 할 일도 없어 무료하던 참이야. 오히려 이렇게 놀러와 줘서 내가 고맙지.’

    그는 진수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 어떤 상대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혼자 멋대로 기대를 키우기 마련이었고, 그러다 실제 만나게 되면 실망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호민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진수가 기대했던 이상으로 멋지고 따듯한 사람이었다.

    ‘근데, 진수군 정말 잘 생겼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기대 이상인데? 정말 멋지다. 만화가 하기엔 아까울 정도인 걸? 모델이나 탤런트 해볼 생각 없어?’

    호민 또한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줬을 때, 진수는 진심으로 기뻤다. 태어나 자라면서 지금껏 그 비슷한 칭찬의 말들을 꽤나 듣고 자랐지만, 그 어느 때도 그토록 기쁜 적은 없었다. 자신의 외모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진수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자신의 훌륭한 겉모습이 고마워질 정도였다.

    ‘선생님도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우세요.’

    ‘에? 아하핫. 고마워.’

    그때, 호민은 진수의 칭찬에 익숙지 못한 듯 어색하게 웃었지만, 사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호민 또한 진수 만만치 않게 빛이 나는 외모였다. 훤칠한 키와 넓은 어깨를 지닌 진수의 사나이다운 남성미와는 달리, 호민은 평균 정도의 키에 보통의 체격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작은 얼굴에 남자치고는 가느다란 선을 가진 얼굴이 조금 중성적인 미를 지녔다고 할까. 그 덕택에 호민에게는 만화가로서만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팬클럽 또한 존재했다.

    ‘문하생?’

    ‘네, 역시 안 될까요? 제 솜씨로는 선생님께 폐만 끼치겠죠.’

    ‘아, 아니야! 진수군 솜씨가 오히려 나보다 더 뛰어나지. …… 근데, 괜찮겠어? 올해 대학 들어갔잖아. 거기 과제만 해도 엄청날 테고…… 사실 진수군 실력이면 굳이 나 같은 사람 밑에 들어올 필요는 전혀 없을 텐데. 그냥, 대학에서 착실히 배우는 게…….’

    ‘아니요, 꼭꼭꼭! 꼭 하게 해주세요! 꼭 하고 싶어요! 문하생이 안 된다면, 그냥 도우미라도 괜찮아요! 어차피 학교도 근처니까, 여기 오는데 큰 시간 안 빼앗겨요. 저 학교생활도 열심히 할게요. 네? 네, 선생님? 아니면, 학교 다니면서 알바 한다고 생각해도 되고…….’

    ‘그, 그렇게까지 나온다면야…… 나야, 그저 고맙지.’

    ‘와앗, 감사합니다, 선생님!’

    ‘근데, 그래도 혹시 힘들면 그땐 꼭 말해줘. 해보다가 힘들어지면 그만둬도 돼. 나 절대로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알았지?’

    ‘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절대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앗, 선생님 저녁 드실 시간이다.”

    한참 감격스런 얼굴로, 처음 호민을 만나던 그 꿈같던 순간을 회상하던 진수가 문득 정신을 차려 시계를 확인하고는 서둘러 발걸음을 뗀다. 그리고 진수가 도착한 곳은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이제 주위를 거의 아파트가 뒤덮다 시피한 동네에, 아파트의 틈바구니에 끼인 주택단지의 좁은 골목을 진수는 걷고 있었다. 진수는 걷다 말고 문득 할인마트에 들려 양손가득 찬거리를 구입하고는 신난 얼굴로 휘파람을 불며 걸었다. 그리고 그가 멈춰선 곳은 주택단지 내에서도 가장 변두리에 위치해 있는, 지은 지 꽤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의 반지하방 앞이었다.

    “선생님!”

    진수가 씩씩한 외침과 함께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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