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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히트 1-385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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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회: Chapter.0 부고訃告 + 이벤트 공지(연기) -->

    “나라가 우리 가문을 버렸다! 정권은 썩었어! 진짜 친일파들은 떵떵거리며 잘사는데, 항일운동하던 증조부를 끝끝내 친일파로 몰다니! 이게 정상적인 나라더냐? 이것이 진정 법치국가더냐?”

    아버지는 그날도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나타났다. 내 기억에 정신이 말짱한 아버지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서울역 노숙자에게서나 나는 악취를 풍기며 집에 들어와서는,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토악질 같은 욕지거리를 쏟아 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지만, 어려서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철이 들고서는 아버지마저 나를 떠날까 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는 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에 신물이 났다.

    “그만하세요, 아버지.”

    “그만하라고? 네놈은 억울하지도 않느냐!”

    억울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자란 것이,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집을 나간 것이, 그런 아버지라도 곁에 있었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던 젊은 시절이,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싫은 소리를 못 했던 자신의 연약함이, 억울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아버지를 노려봤다. 누더기를 걸친 노인의 주글주글한 주름살 사이사이마다 시꺼먼 때가 끼어 있었다. 살아온 삶이 켜켜이 퇴적되기라도 했듯, 더럽고 냄새나는 이물질만 남아 있었다.

    비참한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이를 악물고 공부한 결과,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 휴가가 아니고서는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마저 반납한 채 일하는 나날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아버지와 집에서 마주치게 될 때면 아버지는 만취하여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때마다 내 가슴속에도 답답함이 쌓여 갔다.

    “고조부님이 일본군 함대에 파견된 대한제국 스파이였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도 없잖아요. 이제 그만하세요. 언론에서 아버지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만 같다고요. 저를 위해서 자중해 주실 수 없어요?”

    빨갱이로 낙인찍힌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친일파 후손이라고 승진에 문제가 되는 세상은 아니었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자들이 되레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이었다.

    ‘친일’은 낙인이 아닌, 유야무야 묻힌 과거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수롭지 않은 친일이,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에게는 인생을 내걸어야 할 만큼 치욕스러운 단어였다. 심지어는 가족을 내팽개칠 정도로 말이다.

    “못한다! 절대 못한다, 이놈아!”

    시큼한 위산 냄새가 훅하고 끼쳐 왔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부대에서 회식을 하게 되어도, ‘기독교인이라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내가 부대 교회에 출석한 것은 승진을 위해서일 뿐, 믿음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항상 그런 식이죠. 가족보다는 명예가 우선이죠. 저도 지쳤습니다.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세요.”

    “이한얼!”

    한얼은 우리의 얼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도움이 된 것은 이름뿐이었다. 해군사관학교 면접 때, 내 이름에 담긴 뜻 덕분에 면접관으로부터 좋은 평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계속 연락하신다면, 제 이름을 호적에서 파겠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자란 고아라 생각하며 살겠다고요. 아시겠어요?”

    @

    울컥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목과 눈을 통해 삐져나오려 했다. 나는 그것들을 애써 억누르며,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게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였다.”

    “이 대위님.”

    해군사관학교 후배이며, 초계함인 공주함의 작전관으로 있을 때 함께한 적이 있었던 이재성 중위였다. 그는 나를 친형처럼 곧잘 따르곤 했는데, 내 아버지 장례 소식을 접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마라. 적어도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지는 마라. 평생 후회하게 될 테니까.”

    재성에게 아버지가 있었던가. 가만 생각해 보니, 그에게서 가족 얘기를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몸 상하십니다. 그만 드세요.”

    “한 잔만, 딱 한 잔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접한 술이,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술술 끝도 없이 들어갔다. 두 병을 비운 이후로는 머릿속이 몽롱해져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잔에 소주를 채우고, 그것을 마시는 것만이 내게 주어진 최우선 임무라 여길 따름이었다.

    “필! 승!”

    재성이가 자리에 벌떡 일어나 경례를 붙인 것이었다. 목청이 터져라 필승을 외쳐 대는 걸 보니, 꽤 높은 양반이 온 것 같았다. 그러나 고개를 드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재성이가 날 부축했고, 그제야 나는 눈앞에 선 사람이 대조영함 함장 김대혁 대령임을 알 수 있었다.

    “대령님 오셨습니까? 필승!”

    “고인의 명복을 비네.”

    김대혁 대령은 아버지 영정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한 뒤에 나에게 다가왔다. 그가 내게 절하려 했고, 나는 맞절을 하려다 말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재성이가 나를 부축하려 했지만, 정신을 차리려 애쓸수록 술기운이 올라왔다. 내 팔을 잡고 흔들어대는 재성이 때문에 속이 거북해졌다. 나는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려는 욕지기를 참아내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했다.

    “함선이 정비 중이니, 일주일 더 쉬고 복귀하게.”

    내가 작년에 배속된 대조영함은 스텔스 기능을 탑재한 4,500톤급 한국형 구축함이었다. 대조영함과 같은 대형 함선에 배치되려면, 탄탄한 경력은 물론 어느 정도의 인맥이 있어야 했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인맥을 넘어설, 해군사관학교 수석 입학과 졸업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이 있었다. 또한 군 교회에서 만난 김대혁 대령이 나를 좋게 봐주었기에, 인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도 없었다. 그 덕에 나는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조영함에 오를 수 있었다.

    얼마 전, 동남아 해역에서 실전 훈련을 마친 대조영함은 진해 기지로 복귀했었다. 정비에 들어간 대조영함의 출항은 기약이 없었다. 적어도 3개월 동안은 공식적인 일정이 없기에 대원들은 진해항에 대기 중이었고, 나 역시도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던 참에 아버지의 죽음을 접했었다.

    김대혁 대령이 장례식장을 떠난 이후의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 재성이 말로는, 내가 하루를 꼬박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동안 재성이와 아버지 친구분이 상주 역할을 대신 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돌아가신 이후로도 아버지는 나와 맞질 않았다. 빌어먹게도 말이다.

    * Chapter.1 유산遺產

    유산상속 포기 신청을 하고 대전행 버스에 올라탔다. 내게 주어진 일주일의 휴가 기간 동안, 아버지가 남긴 과제를 해결할 계획이었다.

    ‘돈벌이도 안 하시면서,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끌어다 쓰신 건지…….’

    아버지는 나에게 빚을 남기셨다. 할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업을 크게 벌이셔서 성공하셨다고 했는데, 해방 후에 사업체를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신 이후로는 돈벌이를 했다는 얘길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흥청망청 돈을 써 댔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친일’과 ‘독립운동’이 있었다.

    아버지의 주장에 따르면, 고조할아버지는 독립 운동가였다고 한다. 일찍이 일본을 오가며 해상무역을 했던 고조부는 한일 합방 이후 일본군으로 복무했는데, 그것이 사실은 독립운동을 위한 일종의 스파이 활동이었다는 것이었다. 이를 증명할 근거가 없었기에, 결국 고조부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의 앞잡이로 활동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에서 벌어들였다는 돈은 고조부의 누명을 벗기는 일에 쓰였고, 결국은 공중분해 되었다. 그 결과, 내 손에 주어진 것은 자그마한 수첩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열쇠가 전부였다.

    <-- 2 회: Chapter.1 유산遺產 (1) -->

    대전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시꺼멓게 그을린 사내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달려왔다. 이재성 중위와 동기로, 해군사관학교에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 송시열 중위였다.

    “선배님! 필승!”

    “필승. 바쁜데 불러내서 미안해.”

    “아닙니다. 선배님께서 부르시면 언제 어디서든 출동해야죠. 하하!”

    “이것 좀 봐줄 수 있을까?”

    송 중위가 몰고 온 소나타에 올라타자마자 수첩을 꺼내 든 것은, 그만큼 내 마음이 급하단 뜻이었다. 송 중위는 규칙을 무시하는 돌발 행동 때문에 상사와의 관계가 악화되어서 진급이 어렵게 되었지만, 암호 해독 능력만큼은 발군이었다. 본래 그는 연합사령부 소속 정보 장교였는데, 지금은 좌천되어 제주방위사령부에서 행정 일을 맡고 있었다.

    송 중위는 내가 건넨 수첩을 스윽 훑어보며 내게 물었다.

    “이게 뭡니까?”

    “아버지 유품. 해독해 줄 수 있겠어? 내가 보기에는 암호문 같은데.”

    “아…….”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이내 수첩에 시선을 고정하는 송 중위였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녀석이었다. 뭔가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올 줄 모르는 탓에,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버릇없는 놈으로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이것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단서는 없습니까?”

    “다른 페이지에 그것과 비슷한 문자들이 나열되어 있기는 한데…….”

    문제는 아버지가 메모를 중구난방으로 해 두어서, 다른 문자를 확인하려면 수첩 전체를 살펴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마음을 다잡았다. 그동안 지인들에게 가족사를 말한 적이 없었지만, 사람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책만 파고드는 송 중위라면 비밀을 털어놓아도 될 것 같았다. 또한 그가 아니면 아버지가 남긴 메모의 비밀을 알 수 없었으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실, 수첩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그것은 내가 보기에 일기였고, 정부를 향한 원망과 독설로 가득한 배설물이었다. 한데, 그 사이사이에 아버지가 ‘조어도 보물’을 언급해 두었다. 고조부가 일본에서 스파이로 활동할 당시, 몰래 빼돌렸다는 보물 지도가 조어도钓鱼岛를 가리켰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설령 조어도 인근에, 조선에서 약탈한 보물을 싣고 가던 배가 침몰되어 있다 할지라도, 중국과 일본, 대만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분쟁 지역에서 보물을 인양해 낼 방법이 없었다.

    “그래. 대신 이 안에 적힌 내용은 비밀로 해 줘.”

    “알겠습니다, 선배님.”

    송 중위는 수첩을 첫 장부터 빠르게 넘겼다. 녀석은 어떤 책이든 몇 분 내로 읽어 내는 가공할 속독 능력을 지녔다. 그의 성장 배경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송 중위의 속독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안타까워했지만 말이다.

    송 중위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헌책방을 운영했는데, 송 중위를 돌볼 사람이 없어서 어린 그를 헌책방에 가둬 뒀다는 것이다. 송 중위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활자에 중독되었으며, 사교성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송 중위가 암호 해독에 특출한 능력을 보인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몰랐다.

    그는 짧은 순간에 수첩을 다 읽어 내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가 눈동자를 굴릴 때마다 얇은 눈꺼풀이 덩달아 움직였다.

    “형수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겠지.”

    객소리였다. 그것은 송 중위가 나에게 던지는 유일한 우스갯소리이기도 했다. 송 중위가 형수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내 일생 중에 단 한 번도 없었던 까닭이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거 아무래도 숫자 같은데요? GPS 좌표 아닐까요?”

    송 중위는 수첩 여백에 2개의 숫자를 기록했다. 보통은 아버지 유품이라고 하면 함부로 필기를 할 수 없을 터인데, 송 중위는 그런 면에서 거침이 없었다. 머리에 든 것이 많기는 하지만, 한번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까닭이었다.

    ‘33.22362와 126.655957라…….’

    “GRS80 기준일까?”

    GRS80은 유럽과 미국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좌표 체계를 의미했다. 우리나라는 베셀Bessel 좌표 체계를 사용했는데, 근래 들어서는 세계화에 발맞춰서 GRS80과 베셀을 동시에 쓰는 추세였다.

    “그렇겠죠. 혹시 모르니까 베셀로 전환해서 좌표를 구해 보겠습니다. 최대 400미터까지 오차가 날 수 있으니, 해당 좌표에 원하는 것이 없을 경우에는 주위를 둘러보도록 하십쇼.”

    “아무튼 고마워.”

    송 중위는 내 말이 귀에 안 들어오는 눈치였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검색하는가 싶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이 좌표, 제주도 남쪽에 위치한 섬으로 표시되는데요? 여긴 무인도라 별것 없을 텐데, 해독이 잘못됐나?”

    순간,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반복적으로 늘어놓았던 조상들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니. 네 해석이 맞는 것 같다. 6.25 때 증조부께서 할아버지를 데리고 제주도로 피난 가신 적이 있거든.”

    @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성남에서 수송기를 타고 제주도로 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민항기를 택했다. 내 평생에 민항기를 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가 떠오르고 30분 만에 비행이 끝났지만, 민항기는 소음과 떨림이 거의 없다는 소문이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송기에 비하면 민항기는 안락한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기분이었다.

    현역 대위가 급작스레 제주도로 옮겨 가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김대혁 대령님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나는 육지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령님 덕분에 해군 콘도에서 묵게 되었고, 남은 엿새를 아버지의 유산 찾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송 중위 말대로 해독이 잘못된 것이었나?’

    날씨가 받쳐 준 덕에 모터보트를 타고 GPS 좌표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송시열의 말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은 제주도 남부에 위치한 무인도였다. 사람이 살기 힘든 구조의 바위섬이었지만, 낚시꾼들이 뜨문뜨문 다녀갔던 탓인지 구석에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뭔가 있다.’

    감이었다. 어쩌면 뭔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것도 없더라도, 이곳을 지나쳐야만 했던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되돌아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점심 무렵 도착해서 한참을 둘러봤으나, 좌표 지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바위로 뒤덮인 지형이었고, 좌표 지점 부근에 깎아 지르는 절벽 형태의 거대 바위가 있었기 때문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절벽 앞으로 파도가 몰아쳐서 보트로는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결국 바위 주변만 살펴야 했는데,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금만 더…….’

    수평선에 해가 걸리면서 노을이 섬을 붉게 물들였다. 자연이 만들어 낸 광경에 압도되어 전율이 일었으나, 내게는 이런 것들을 오래토록 즐길 여유가 없었다.

    ‘어?’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바위 그림자가 평평한 바위 위에 아치형의 문양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문처럼 보였고, 손잡이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위치 부근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열쇠 구멍?’

    얼핏 봐서는 화산섬을 이루는 현무암의 구멍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 인위적으로 파낸 구멍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구멍 안쪽에 빛을 비추자, 은색 빛이 반짝였다. 내부에 철로 만들어진 인위적인 구조물이 있다는 뜻이었다.

    철컥.

    <-- 3 회: Chapter.1 유산遺產 (2) -->

    아버지가 남긴 열쇠가 구멍에 빨려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잠금장치를 풀었다. 하나 변하는 것은 없었다. 열쇠를 다시금 돌려 빼려 했지만, 그것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우르르르릉!

    섬이 요동쳤다. 절벽 아래 바다에서 기포가 올라왔고, 지축이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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