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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량] 오해하지마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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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하지마! (上)

    (1)

    “야~ 이거 정말 흥미 진진한데요~”

    “정말입니까? 정유원씨~!! 이거 진짜 고백하는 거 아닙니까??”

    “우우~~”

    스튜디오 안은 흥분에 휩싸였다.

    모두의 시선과 카메라가 한곳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저 가운데로 뛰어들어가 다 뒤집어 엎고 싶다!!!!

    이 죽일 놈!!!

    정 유 워 어 어 어 언~!!!!!!!!

    "부탁드립니다. 김PD님~!! 어떻게든 그 장면을 편집하는 방향으로…”

    “아, 이매니저 생각은 알겠는데~ 그래도 어려울것 같어~

    오늘 녹화분 중에 그 장면이 하이라이트 아니야 하이라이트!!

    그리고 정유원이 귀국하고 처음 나오는 버라이어티 쇼인데 아까 몰려든 기자들 못봤어?

    이거 방송 안나가도 다 뽀록나게 되 있는거야~ 그냥 받아들여.”

    “아~ 그래도 시청자들이 눈으로 보는거랑, 그냥 기사로 보는거랑은 임펙트가 다르지 않습니까~ 부탁드립니다. 제발!!”

    김PD의 발걸음이 딱, 멈췄다.

    에고… 드디어 먹힌건가?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굽히고 또 굽히며 매달리며 애원하고 있는데 설마…

    “휴… 내가 민매니저 사정, 모르는거 아니고… 노력은 해 보께.

    근데 진짜 보장 못해. 이번 방송은 위에서도 시청률 기대가 장난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유원이 아니야 정유원이!!

    원래 좀 크다 싶은 애들은 우리 프로같은데 안나오는거는 업계 정설인데,

    얘가 덥썩 나오겠다고 해가지고 귀국하기 전부터 홍보를 좀 해댔나?

    아까 국장이랑 내려와가지고 녹화 하는 것도 보고갔어.

    아무리 내가 이 프로 PD지만 많이 힘들꺼 같어~ 기대는 하지마.”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숙인다.

    상대에게 이렇게 고개를 숙이는 일이 이제는 ‘익숙’을 넘어서 ‘전문’이 됐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 어느 때 보다 진심이다. 제발… 제발….!!!!!

    3일 후…

    “흐엉~~~~~!!! 나 이제 어떻해!!!! 어떻하냐구~~~~ 허엉~~~”

    15평 남짓의 크지 않은 사무실.

    나를 비롯해서 로드매니저 건일이와 코디 명진이 세 사람은 각자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뭐 씹은 표정이다.

    낡은 쇼파에 걸터앉아 미친듯이 울부짖는 소녀는 ‘지안’이란 이름으로 3개월에 데뷔한 신인이다.

    우리 사무실에서 밀고 있는 거의 유일한 연예인이다.

    지안의 울음소리에 파묻혀서 잘 모를수도 있지만 지금 사무실에는 TV가 켜져있는 상태다.

    사흘 전 녹화했던 그 프로가 오늘 방송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네 사람은 사형선고라도 받는 사람 처럼 나란히 TV앞에 모여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방송을 시청했고

    그로부터 이십여분이 지난 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장면은 고스란히 방송되었고,

    한술 더 떠 갖가지 그래픽으로 점칠해서 마치 정유원과 지안, 두 사람이 당장이라도 사귀게 되는 냥 떠들어대고 있었다.

    실제로 볼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밑에 깔리는 자막하며 쇼 특유의 떠들썩함이 더해지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휴우…”

    지안은 그 예쁜얼굴을 엉망으로 일그러뜨려가며 여전히 울고 있다.

    그걸 보는 내 맘도 찢어진다… 어떻게 찾은 신인인데…

    “지안아. 그만 울어. 얼굴 부으면 내일 방송나갈 때 메이크업 어떻게 할려고 그러니… 자 뚝 그쳐.”

    보다못한 명진이 지안을 진정시킨다.

    메이크업 얘기를 하니 지안도 그제서야 좀 진정하는 듯 했다.

    명진이 지안을 데리고 나가고 방에 남은 나와 건일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진짜 미치고 팔딱 뛰겠네…”

    명진은 그렇게 말하며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이미 켜져있던 창을 닫고 검색을 시작한다.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 지안의 홍보용 홈피, 까페 등등등…

    “아… 젠장~ 빠르기도 하다..”

    나도 절실히 당겨오는 담배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건일 쪽으로 다가갔다.

    “……….”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믿고 싶진 않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죽어버려! 지안. 재수없다. 어디서 꼬리를 쳐]

    [청순한척 할때부터 알아봤다. 뒤통수 조심해 XXX]

    [얼굴에 칼자국 낸거 너무 티나. 나올 때부터 재수없었어.]

    [지안. xxx 죽어라!!]

    .

    .

    .

    .

    .

    .

    .

    .

    .

    .

    .

    .

    “으아~ 진짜 미치겠다!!!!!”

    요즘은 이런 반응들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데뷔한지 3개월째인 신인이 이런 반감을 사게된다는건 정말 치명적이다.

    더구나 우리 처럼 약소하디 약소한 사무실에서 이건 진짜 날벼락치고도 너무한 날벼락이다.

    “이건 완전 테러구만 테러야. 아… 정유원 그 개새끼…”

    건일의 입에서 정유원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건일이 마우스를 던지듯 내 팽개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형! 정유원 그 새끼 도대체 어떤 새끼야? 예전에 형이 키운 걔 맞지?

    벌써 몇 년째 이 바닥 물 먹는 새끼가 지 입장을 그렇게 모르나?

    그리고 어제 그거는… 솔직히 장난 같지가 않더라. 내가 봐도!!

    아~ 씨발… 왜 하필이면 우리 지안이냐고 지안이!!”

    아아…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형!! 뭐라고 말 좀 해봐! 이 사태를 어떻해야해?!”

    덩치도 큰 건일이 좁은 사무실 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자 정신이 혼란스럽다.

    “진정하고 자리에 좀 앉아라.”

    “아~!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그 새끼 목이라도 조르러 갈판이구만~!!”

    “그만해.”

    “형!”

    “네가 아니라 내가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심정이야.”

    좀처럼 쓰지 않는 살벌한 표현에 건일이도 입을 다문다.

    “나 나갔다 올게. 지안이랑 명진이 들어오면 일단 집으로 가 있으라고 해. 연락할게.”

    “형! 규영이 형!!”

    좁은 사무실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자 좀 숨이 트이는 것 같다.

    문득 뒤를 돌아보자 아직 간판도 채 달지 못한 허름한 사무실 현관이 보인다.

    내게 남은 마지막 꿈과 열정의 결실.

    지난 1년간 까마득하고 암울한 길을 걸어오다 겨우 빛이 보이나 했더니

    다시 고꾸라질 형편이라는 게 믿기질 않는다.

    그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정.유.원… 그 자식 때문에…

    사실 정유원과 나는 보통 인연이 아니다.

    아무렴, 보통이 아니라 끈질기고도 끈끈하게 얽히고 얽혀서

    차마 풀지 못하고 끊어내야 했던 지긋지긋한 인연…

    2년 전 정유원이 이곳을 떠나 던 날.

    나는 붙잡지 않았고, 그것으로 우리의 인연은 완전히 끝나는 줄 알았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질질 끌려다니던 운명으로부터 해방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보기 좋게 나의 패배다.

    (2)

    내가 처음 그 녀석을 만난건 강남의 유명한 룸살롱에서 였다.

    당시 국내 최대이자 최고의 연예기획사 캐스팅 디렉터로서 활동하던 나에게 룸살롱은 친숙한 사무실이나 다름 없었다.

    새로 키워내는 신인들을 방송에 내보내기 위해 방송국의 간부들과 로비를 벌이고 접대를 하는 화려하면서도 추악한 그런 사무실 말이다.

    “이번에 아주 제대로 잡아주셨더라구요~ 역시 PD님 밖에 없다니까요~”

    “으하하하~ 내가 민매니저 부탁 들어주느라 얼마나 힘뺐는지 알아?”

    “아~ 알다마다요~ 그래서 제가 오늘 이렇게 쏘는거 아닙니까~ 맘껏 즐겨주십시오~”

    잔뜩 각이 잡힌 내 허리는 펴질 줄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이 업계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혀 무슨일을 해도 두렵지 않았다.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들을 능글맞은 아저씨들 옆구리에 끼워주는 것도,

    점점 잊혀져 가는 연예인을 다시 일으켜 새우기 위해 관계자들과 다리를 놓아주는 것도

    나의 도덕심이나 양심을 일깨워 줄 수는 없었다.

    나에게 연예인들은 단지 내 성공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고,

    그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에 가까웠다.

    “후아…”

    온갖 감언이설과 과장된 몸짓으로 분위기를 띄워 준 후 한숨 돌리려고 룸 밖으로 나왔다.

    어둡고 묘한 빛의 조명이 비추고 푹신한 양탄자가 깔린 복도는

    제각각의 유희를 즐기는 방들 가운데에 핏줄처럼 뻗어있었다.

    워낙에 술이 쌘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좀 무리를 한 터라

    의도하지 않아도 절로 몸이 벽쪽으로 기울어졌다.

    담배 한 개피를 빼어물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다.

    회사에서 거의 내놓다 시피 한 여배우 하나를 다시 한번 태풍의 눈으로 만들어낸 나다.

    오늘은 바로 그걸 축하하기 위한 자리인 거다.

    이제 그녀에게는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 거고,

    나에게는 회사 내에서 충분히 간부 급에 오를 수 있는 승진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에 한껏 도취되어 두 눈을 감고

    희뿌연 연기를 힘껏 빨아들여 폐를 채우고 다시 길게 뿜어냈다.

    “쿨럭!!”

    순간, 바로 코앞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에 눈을 떴다.

    눈에 보이는 건 흰색 셔츠를 걸친 남자의 건장한 어깨부분.

    내가 아무리 벽에 기대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대체…

    천천히 시선을 위로 향하자 잔뜩 찡그린 표정을 한 얼굴이 보인다.

    내 키가 175로 딱 표준인데 이 정도면 190은 너끈하겠다 싶었다.

    “아.. 죄송합니다.”

    내가 제대로 얼굴에 담배연기를 뿜은 것 같았다.

    그는 찌뿌린 표정을 풀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무의식중에 그의 포지션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이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몸매는 완벽했다.

    진회색의 정장 바지와 얇은 줄무늬가 들어간 와이셔츠 차림이었지만

    분명 회사원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얼굴은 키가 워낙 커서인지 조명이 비추는 지점을 약간 어긋나 있어서

    좀처럼 자세히 볼 수 가 없었다.

    “저, 잠깐…”

    직업병은 어쩔 수 없다.

    눈에 띄면 확인 하고 봐야하는 직업병이다.

    순간순간 지나치는 사람마다 좋은 먹이감이 아닌지 구분해 내야만 직성이 풀린다.

    덥썩 그의 팔을 잡아서 조명이 좀더 확실한 곳으로 끌어 당겼다.

    손에 잡힌 팔뚝도 엄청나게 단단했다.

    내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건지 성큼 한걸음을 내 딛는다.

    그리고 나는 할 말을 잊었다.

    바로 이거다!!!!!

    캐스팅 디렉터라는 직업은 공부나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직업 중에 하나다.

    사람을 만나보면 그 사람이 적절한 재목인지 아닌지 아니,

    노골적으로 말해서 얼마나 ‘뜰’ 만한 소재인지 한눈에 알아본다는 것이

    노력해서 되겠는가?

    나는 그 재능을 가진 몇 안되는 사람들 중에 하나다.

    이 업계에 처음 들어와서 뭐가 뭔지 잘 모를 무렵에도

    사무실에 들락거리는 연예인들 혹은, 연예인 준비생들을 보면 그게 거의 한눈에 보였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내 발언권이 좀 세진 이후에는

    마치 날개라도 단 듯 상품들을 높은 가격에 팔아치웠다.

    내 능력을 인정받는 만큼 나의 열의는 불타 올랐고,

    언제 어디서든 더 나은 재목을 발견하기 위해 눈에 불을 키고 다녔다.

    그런 나에게 정유원이 발견된 것은 정말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유원은 나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스타감’ 그 자체였다.

    나는 거의 뭔가에 사로잡힌 것 처럼 그의 손을 끌어 당기고

    비어있는 룸을 찾아 무작정 들어갔다.

    엄청난 체격의 그는 왜인지 별 저항없이 끌려 들어왔다.

    뭔가에 홀린 것 같은 나의 행동에 당황해서였던 것 같다.

    일단 그를 안쪽으로 밀어 앉히고 나도 그 옆에 앉았다.

    아무 말도 없이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전신을 세세히 훑어보았다.

    긴 다리와 넓은 어깨, 탄탄한 가슴은 아까 봤어도 또 한번 감탄스럽다.

    보기 좋게 뻗은 목과 오똑하게 솟은 모양 좋은 콧날.

    적당히 도톰하고 감 좋은 입술과 요즘 여자들이 선호하는 갸름하고도 날이 선 턱은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 했다.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은 것은 오묘한 선으로 그려진 것 같은 눈매에 쌓인

    깊고 검은 눈동자였다.

    대체 이런 인물이 왜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던 걸까?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 금광을 찾은 광부가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일 것이다.

    “이름이 뭐지? 나이는? 지금 하는 일이 뭐야?”

    나도 모르게 다급한 질문이 쏟아진다.

    빨리 알고 싶고 빨리 사로잡아서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만이 간절했다.

    “정유원. 19세. 운동선수.”

    망설임 없이 흘러나오는 대답.

    울림이 깊으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어쩌면 현대극 뿐만 아니라 사극에서도 먹힐 수 있는 목소리다.

    얼굴이 워낙 받쳐주니 목소리가 안 좋으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그것도 싹~ 날아갔다.

    “역시~ 운동을 했구나. 무슨운동? 그런데 열아홉살?”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깜짝 놀랐다.

    저 정도 포지션에 행동거지를 가진 열 아홉살은 찾기 힘들다.

    내가 예상했던 나이는 22~24세 정도였지만 그 정도라 해도 놓치기 아까웠기 때문이었는데

    이건 좋아도 너무 좋은 상황이다.

    내가 오늘 돼지꿈이라도 꿨던가?

    “그럼 운동을 계속 할 생각인가? 다른 일 해볼 생각 없어?”

    상상이상으로 잘 흘러가는 상황에 나는 신이 나서 물었다.

    이런 일을 권하는 데는 나이가 어릴수록 더 잘먹히는 법이다.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

    “?”

    아까와는 다르게 별 반응이 없는 그를 보고 내가 다시 묻듯이 눈을 크게 뜨며 눈짓을 주었다.

    “..당신.. 나 몰라?”

    “뭐?”

    예상밖의 대답에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모르다니 뭘?

    “아니,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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