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pocampus]메마른바다 - 2

167일전 | 196읽음

져서 조금 머쓱해졌다.



"야, 그만 만져. 닳겠다."



그러나 쉬는 시간 끝나는 종이 울릴 때까지 유현이 하도 진지하게 만지작거려서 승호는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른 여름의 체육시간은 덥고 땀나고 괴로운 것이었지만 학생들은 공하나 던져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운동장을 종횡무진이다. 남학교라서 눈치 볼 것도 없는지 웃통도 벗은 채 다리 털이 숭숭 달린 사내 아이들이 반바지 체육복을 입고 열심히 뛰어 다녔다. 한참 뛰다가 지쳐버린 승호는 스탠드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승호와 자주 어울리던 다른 세 명의 친구들은 덥다며 수도가로 가더니 서로 물싸움하기에 여념이 없다.



"여름체육복이 반소매여서 정말 다행이야."



승호의 옆에 수건을 목에 두른 진유현이 와서 앉았다.



"여름 체육복은 당연히 반소매 아냐?"



양 손을 바닥에 짚고 어깨로 숨을 몰아 쉬던 승호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우리 형이 다녔던 학교는 남녀공학이었데. 여름에도 윗도리만 반팔이고 바지는 남녀 모두 긴 체육복이었대."



"더운 여름에 긴바지를 입고 뛰게 한단 말야?"



승호가 손으로 부채질 하며 유현을 바라보았다. 유현이 승호의 다리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되게 웃겨. 그 학교 선생님들 생각하기엔 남자애들 다리 털 때문에 여자애들 보기 민망해서 그렇대. 또 여자애들이 반바지를 안 입는 건 남자애들이 딴 맘 먹을까 봐 아예 긴바지 입혀놓은 거고."



"에엑! 그 학교 선생님들 정말 이상하다. 아예 여자애들한텐 바지교복 입히라지."



"그치? 웃기지?"



둘은 서로 키득대며 유현의 형이 다녔다는 학교를 맘껏 비웃어줬다. 더불어 운동장을 뛰어 다니는 친구들을 보고 저 녀석은 그 학교 가면 반팔도 못 입겠다는 둥, 저 정도 다리면 여자애 들도 뻑 갈텐데 라는 둥, 시시한 농담을 하다가 서로 다리 털에 많네 어쩌네 하는 얘기까지 나왔다.



"승호 넌 털이 별로 없다. 오올~ 이제 보니 다리선도 죽이는데~"



"이게 정말, 너야 말로 키나 덩치에 비해 매끈하지않아? 생각보다 털도 적잖아. 은근히 너 발육 부족아냐?"



승호가 받아쳤다. 유현이 눈썹을 장난스럽게 꿈틀거리며 "어쭈~ 누구 다리가 발육부족인지 재볼래?" 하고 자신의 다리를 쭉 핀다. 운동보다는 공부파라고 생각했던 진유현이 체육에도 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괜히 심술이 난 승호는 "오냐, 그 잘난 다리 털, 내가 다 뽑아 주마!"하고 털 몇 가닥을 뽑는데 성공하자 유현이 죽을 상을 짓는다.



"어? 진짜 아파?"


"니 다리 털도 그렇게 무식하게 뜯어 봐라 안 아픈가. 죽었어, 니 다리 이리 내!"


"으하하, 장난이야 장난! 봐. 세 가닥 밖에 안 뽑혔잖아."


"그래. 그 세 가닥, 내가 뽑아주지!"



승호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아 다리를 쫙 편다. 아까 유현이 어지간히도 아파 보였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승호는 "딱 세 가닥만이야." 라고 선심 쓰듯 얘기했다. 유현이 의아한 표정을 하다가 이내 씨익 웃는다. "조~오 았어! 아주 굵직한 놈으로 세 가닥 뽑아주마!"하더니 승호의 다리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한다.



더듬거리는 유현의 손은 부드러웠다. 가끔 종아리에 느껴지는 숨소리가 승호를 조금은 낯간지럽게 만들었다. 승호보다 두 계단 아래에 앉아 유심히 다리 털을 고르는 모습은 마치 털 골라주는 원숭이 마냥 우스웠지만 진유현 본인은 진지하다. 승호는 웃으며 유현을 내려다보다가 햇빛이 쏴하게 비치는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이런 친구가 생기면 학교 다니기도 즐거울 것 같았다. 체육시간이 끝나기까지 유현은 승호의 다리털 중 굵고, 뽑으면 아플 것 같은 것을 고른다며부드러운 종아리를 심각하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기말고사를 얼마 앞두지 않은 야간 자율 학습시간, 가끔씩 치는 천둥번개 소리에 환호하던 남학생들은 학생주임이 몽둥이로 내려치는 소리에 입을 다물고 다시 문제집에 열중했다. 오늘의 자율학습 감독을 맡은 학생주임 덕분에 교실은 조용했고 그 조용함과 미친 듯이 퍼붓는 창 밖의 빗소리가 어우러져 분위기는 묘했다.



"내가 얼마 전에 사주카페를 가봤는데..."



아무리 무서운 선생님이 감독한다 한들 수십 명의 남학생이 바글바글한 교실의 고요함이 오래갈 리가 없었다. 그 웅성거림을 틈 타 유현이 승호에게 슬그머니 잡담을 꺼내기 시작했다.



"너도 그런 델 가?"



승호가 눈을 빛내며 조그맣게 대답했다. 유현이 싱긋 웃자 승호는 키득대며 얘기해 보라고 했다.



"내 전생이 고양이였대."



승호는 친구가 진지한 눈으로 말하는데 웃을 순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너무했다.



"푸웃-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니가 고양이였으면 참도 귀여웠겠다.차라리 곰이나 대머리 독수리가 낫지."



"내가 곰이나 대머리 독수리 같단 말야?"



승호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며 유현을 달랬지만 유현은 어울리지 않게 삐친 것 같았다. 굳이 유현을 짐승에 비유한다면야 표범이나 맹금류가 떠오르는 승호였지만 가끔씩 보이는 유쾌한 모습엔 팬더나 너구리도 어울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분명 평소의 유현은 이렇게 편한 분위기가 아니다. 가장 친한 김제하와 있을 때조차도 장난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가끔 오세준과 무언가 대화할 때면 분위기가 험악해서 반 아이들 모두 긴장한다. 물론 대화 내용이야 일상적인 것에 불과하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선 그렇게 보이지 않는가 보다. 어떤 애는 저런 평범한 대화 속에 서로의 기를 제압하려는 고수들의 눈빛싸움이 있는 거라고 말해서 주위 애들에게 빈축을 샀지만 일부의 아이들은 조금 공감하는 눈치다.상황이 그러다 보니 승호는 유현과 자신이 굉장히 친한 사이 같아서 조금 머쓱하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했다.



"그런데 말야..."



잠시 상념에 젖어 있던 승호를 유현의 목소리가 깨웠다.



"사람들은 전생에 한번쯤은 동물이었대. 그래서 불교에선 육식을 안 하잖아.저 돼지가 전생의 아버지였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응. 그런가. 그럼 나도 전생에 무슨 동물이었겠네?"



"그래서 말인데..."



유현의 목소리가 은근해졌다.



"사람마다 어떤 행동을 하면 자기도 모르게 전생에서의 버릇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대."



주위의 소란은 점차 커져 갔고 창 밖에선 하늘을 찢을 듯이 벼락이 떨어지고 있었다.유현과 승호의 뒷자리 학생들은 아예 다른 분단으로 가서 떠들었고 바로 옆 분단 학생들은 시디를 듣거나 먹다 남은 빵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승호는 이 재밌는 이야기를 다른 애들도 같이 들었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유현의 말에 집중했다.



"그 점장이한테 몇 가지를 배워 왔는데 한번 실험해볼래?"



승호는 진지해진 유현의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도 긴장해버렸다. 승호의 바로 옆 자리는 창가. 울부짖는 바람소리와 천둥소리가 시끄러운 반 분위기와 어울려 이런 미스테리어스한 이야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해봐 해봐, 어떻게 하는 건데? 무슨 동물인지 어떻게 실험하는데?"



"에이, 미리 얘기 하면 소용없지. 이건 무의식의 반응을 살피는 거니까일단 내가 너한테 어떤 행동을 하면 네가 보이는 반응을 보고 알 수 있는 거라고."



승호는 그렇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시작한다"



라고 말하곤 유현의 표정은 마치 오세준과 있을 때처럼 변해버렸다. 조금은 무섭다고 생각하면서 유현이 뭘 할지 가만히 기다렸지만 기껏해야. 머리를 슥슥 쓰다듬는 정도였다.



"이게 뭐야? 이게 끝이야?"


"좀 기다려봐, 다 순서가 있어."



생머리라서 결은 좋지만 비죽비죽한 승호의 머리를 가만히 쓸어 내렸다. 그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고 흐트러뜨리기도 하면서 머리카락에 장난을 치던 유현의 손은 얼굴선을 따라 승호의 턱으로 내려왔다. 승호의 턱밑을 고양이 구슬리듯 가만가만 어루만지던 유현의 표정이 심각해서 승호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점점 턱선을 따라 귓가로 가는 손의 감촉이 미묘하게 기분 좋아서 조금 마음을 놓아버렸다.그리고 창 밖이 환하게 빛나면서 학교 전체가 정전되어 버렸다.



"앗싸! 정전이다아!!!!!"



이 교실 저 교실에서 괴성이 튀어나왔다. 정전 때문에 집에 일찍 간다는 것이 좋았고 정전이라는 깜깜한 상황이 아이들에게 묘한 스릴감을 불러 일으켰다.



"어? 정전이네."



조그맣게 중얼거리던 승호는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목덜미를 깨무는 것이 느껴졌다.



"으와앗!!"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고막을 찢을 듯 떨어지는 우레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유, 유현아?"



까슬한 혓바닥이 목덜미를 훑었다. 등골부터 꼬리뼈까지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지만 유현이 어깨를 단단히 잡고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딱딱한 이빨이 목의 여기저기를 훑고 가자 간지러움을 못 참은 승호가 화를 내며 몸을 빼려 했지만 화내는 소리조차 하늘을 찢는 천둥소리에 묻힌다.



"이게 네 전생인가 봐."



부드럽게 귓바퀴를 씹던 유현이 조용히 말했다. "뭐?" 라고 물으며 몸부림을 멈추던 승호는 차분히 유현의 말을 기다렸다.승호의 목에서 떨어진 유현은 어둠 속에서 진지하게 말했다. 어두웠지만 유현의 눈은 빛났고 이따금 치는 번갯불은 진지한 유현의 표정을 더욱 진지하게 만들어 주었다. 승호는 무슨 말이 나올까 긴장했다.



"고양이인 나한테 목을 물려 반응했으니. 넌 쥐다."


".....뭐,뭐,뭐,뭐어어어?"



순간 불이 들어오고 생글생글 웃는 진유현의 얼굴이 눈에 잡혔다. 승호의 얼굴이 새빨개지고 약이 있는 대로 올라 폭발해버렸다.



"진유현 너 주욱었어어어~~~!!!!!!"



"거기 빵 먹는 놈! 창가쪽 서 있는 놈! 책상 위에 앉은 놈! 교탁 위에서 춤추는 놈! 다 나와!!!!"



언제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학생주임이 몽둥이로 철로 된 문을 땅땅 치면서 가장 눈에 띄는 학생들을 호명했고 호명된 학생들은 대단한 벌은 아니지만 복도에 꿇어 앉아 손 들고 있어야 했다.승호는 [창가 쪽 서 있는 놈]이었다.그 후 진유현은 미안하다며 싹싹 빌었지만 승호의 화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선생님한테 혼난 게 문제가 아니였다. 기분 나쁜 장난에 홀려 매일 밤 진유현이 핥았던 목덜미를 부여 안고 끙끙대야 하는 자신이 화가 나는 것이다. 왜 화가 나고 목덜미가 자꾸 뜨거워지는지 알 수가 없어서 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정말 미안. 장난이였어. 내가 그런 장난을 칠 사람이 너 말고 누가 있겠어?"



미안한 듯 멋쩍게 웃으며 그렇게 말을 하는데 계속 화내기도 그렇고 해서 점심 한 끼에 용서해 주기로 했다. 더구나 천하의 진유현이 유치하게 장난질 칠 상대는 자신 뿐이라고 생각하니 은근히 우쭐해지는 기분도 있었다.승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조금 찐한 장난에 놀란 것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목덜미의 열기도 식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후 윤승호가 진유현의 행동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생각보다 유현과 자신의 스킨쉽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자연스러운 어깨동무도, 볼 살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괜히 허리께를 더듬는 것도 모두 진유현다운 일이 아니었다. 승호는 쑥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런 사소한 행동들에 마음이 놓이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해주지 않았던 따스한 접촉이었다. 그 따뜻함에 조금 기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승호는 종종 유현의 어깨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곤 하는 것이다.



그 후 여름방학이 왔고, 방학 보충수업 기간이 끝나고 2주가 약간 넘는 진정한 여름방학이 끝났다.겨우 2주 조금 넘게 못 본 사이에 진유현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가끔 승호는 생각한다.꽃가루 때문에 한참 재채기 하면서도 알록달록한 산등성이의 풍경이 예뻐서 찬 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니던 시골 황톳길.푸르게 자라난 이름 모를 잡초들이 바람에 풀 내음을 실어주던 여름 들판.누렇게 익은 벼들이 석양에 물들어 황금빛을 이루는 외갓집의 널따란 가을 논.얼어붙은 계곡의 고드름이 주렁주렁 벼랑에 매달린 채 하얀 눈과 함께 햇빛을 받아 오색으로 빛나던 겨울 계곡.



어렸을 때, 잠시 살았던 시골의 풍경은 승호의 기억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그때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사이가 좋았을 때였다.어린 승호를 무등 태우며 놀아주던 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힘 세 보일 때.챙이 넓은 밀집모자를 쓰고 냇가에서 발을 담그며 함빡 웃으시던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을 때. 형도 동생도 없지만 외롭다고 느껴본 적 없던 어린 승호는 여름날의 외갓집에서 많은 친척들에 둘러싸여 언제나 웃고 있었다.



돈이란 것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외갓집 식구들이 그랬고 어머니 아버지가 그랬다. 승호는 어두운 집안에 발을 들여 놓으며 그렇다면 대체 유현을 변하게 한 것이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피냄새를 풍기며 행여나 들킬까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들어서지만 싸한 냉기가 스며드는 집안엔 평소처럼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다.이제 곧 가을이라지만 이 집은 너무 추웠다.



"세 식구가 살기엔 너무 커."



승호는 절룩거리며 이 층의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일단 상처를 무시하고 흙먼지를 뒤집어쓴 몸을 씻어내었다. 옷을 갈아 입은 후 약 상자를 찾아 익숙한 솜씨로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그렇게 맞고도 부러지거나 내장의 손상이 없다. 차라리 어딘가 살짝 잘못되서 병원신세를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지만 그 정도로 맞는 것은 무섭기도 했다.승호는 마르지 않은 몸을 뉘어 그대로 잠을 청했다. 숙제는 많았고 아직 초저녁에 불과했지만 피곤하고 너무 아팠다. 감정 없는 눈으로 발길질 하던 진유현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걸 애써 떨쳐내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 땅이 당신 거예요? 당신 거냐구요! 누구 맘대로 팔아요!!!"



"아, 내 명의로 된 땅을 내가 파는데 누가 뭐라고 해! 다 내가 쓸데가 있어서 판 거 아니야!"



"그럼 왜 얘기 안 했어요? 그 땅 판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아무 말 안 하다가 내가 추궁하니까 어디서 큰소리예요 큰소리는?! 그 돈 어디다 썼길래 이제껏 아무 말 없었어요!"



"지난번에 K사 주식 산다고 말했잖아!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물어!내가 바빠서 잠시 잊을 수도 있는 거지! 그런걸 일일이 마누라한테 고해다 바쳐야 해?"



"당신 미쳤어요? 그 땅이 당신 거예요? 어머니가 남겨주신 걸 당신 멋대로 왜 파냐구요!!!게다가 K사 주식을 사요? 나이 들더니 머리가 돌았어요? 그 망해가는 회사 주식을 왜 사요!!"



"당신이야말로 말버릇이 그게 뭐야! 젊은 사내 새끼들이랑 어울려 놀아나더니 남편이 남편으로 안 보여?!!"



"뭐라구욧!!!"



머리가 웅웅 울린다.제발 조용히 잤으면 하는 승호의 바람과는 달리 부모님의 싸우는 소리는 더욱 더 귓속을 파고 들기만 한다.언뜻 보니 시계는 벌써 새벽 1시. 이웃집에서 신고가 들어와도 할 말 없는 시간이다.자고 있던 승호가 부모님의 싸움소리에 깨는 것은 예전부터 종종 있어 왔던 일이었다. 승호는 서랍에 준비해둔 주황색 귀마개를 찾으러 더듬더듬 손을 움직였다.그 사이에 부모님의 싸움은 돈 문제에서 어머니가 운영하는 화랑의 단골 손님들과의 관계를 들먹이더니 아버지가 승호 중학교 때 바람 피던 다방 레지얘기까지 나오며 원색적인 대화가 오고 가고 있었다.한숨을 쉬며 귀마개를 귓가로 가져가려던 찰나 승호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승호가 내 새낀지 남의 새낀지 누가 알아!!"


"여봇!!!!"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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