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ppocampus]메마른바다 - 10

167일전 | 112읽음

억제하며 말하는 제하의 음성엔 노여움이 어려 있었다. 유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릴 때부터 봐 왔고 그랬기에 더욱 속일 수 없는, 이 눈치 빠른 친구의 얼굴을 비로소 바라보았다. 며칠간 제하의 잔소리에 시달려 왔다. 드물게 화난 얼굴이었다. 진심으로 분노를 담아 윤승호에게 한 짓을 추궁했다. 윤승호를 그렇게 한 뒤 줄곧 제하와의 진지한 대화를 피해왔지만 이렇게 여행가는 버스에서 한 자리에 앉게 된 이상 회피할 방도는 없었다. 제하는 작고 귀여운 얼굴이지만 상황을 꿰뚫어 보는 훌륭한 통찰력이 있다는 걸 유현은 안다. 특히 자신에게 관한 일이라면 더욱 속일 수 없다. 유현은 제하가 이미 답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진유현 너..."



제하가 유현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정면으로 들여다본 제하의 눈은 유난히 까맣게 느껴졌다. 노여움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에 '설마'하는 의혹의 빛이 어린다. 유현은 제하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면서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너 설마..."



제하의 얼굴에 경악과 의심의 빛이 스친다.



"설마 강간한 건..."



진유현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고개를 돌렸다. 보통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만 제하라면 다르다. 지나치게 눈치 빠른 녀석을 친구로 두는 것도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진유현은 인상을 썼다.



"너 이 자식!"



느닷없이 제하가 유현의 멱살을 잡아 올리던 통에 수런거리던 버스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차가워졌다. 윤승호와 그 친구들은 물론, 한도훈부터 오세준 패거리, 기타 등등 반의 모든 아이들이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온 맨 앞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유현의 멱살을 잡고 있는 제하의 얼굴은 이제껏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못한 무시무시한 표정이었다. 멱살을 잡힌 진유현의 표정은 의자에 가려 아이들 눈에 들어 오지 않았지만 그도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너...네가...네가....결국..."



분노로 파르르 떨리는 앳된 제하의 얼굴은 수척해 보였다. 지난 며칠간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제하의 감은 한가지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설마 했지만 저 빌어먹게 제멋대로인 소꿉친구가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육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것이 이렇게 현실로 드러나자 이제까지의 자제력을 상실하고 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유현의 멱살을 틀어 올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김제하, 진유현! 너네가 왜 싸움질이야 엉?!!"



분위기 파악 못하는 담임이 운전사와 함께 들어오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잖아도 담임의 심사는 요즘 뒤틀릴 대로 뒤틀렸다. 그가 최근 받은 스트레스는 아무리 진유현과 그 집안이 대단하다고 해도 더 이상의 트러블마저 웃으면서 넘어갈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제하는 부들거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킨 뒤 쓰러지듯 자리에 앉았고 잠시 놀랐던 진유현의 표정도 곧 평소의 얼굴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요즘 안 좋은 일이 자꾸 쌓이다 보니까사소한 말다툼 때문에 서로 민감해져서 그래요."



담임은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그래, 네가 제일 힘들겠지. 하지만 더 이상은 말썽 없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며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쌓인 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가 출발하기 시작했다. 1반이라 제일 먼저 출발한다는 기대나 흥분감이 있을 법도 하지만 한 번 찬물이 끼얹어진 관광버스 안은 수군대는 속삭임과 불안한 목소리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야야, 김제하까지 왜 저러냐?"



"쟤네 둘 싸웠나 봐? 평소 얌전하던 제하가 저러는 걸 보면 역시 반장한테 뭔가 있는 거 아냐?"



"아 씨발 분위기 왜 이래. 이게 수학여행이냐? 극기훈련도 이런 분위기는 아니겠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진유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한도훈이 진유현 보다 세 줄 떨어진 자리에 앉아서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고 승호는 아무 말없이 과자를 집어먹고 있었다. 옆에서 민태가 뭐라고 말을 걸었지만 듣는 둥 마는 둥 규칙적인 속도로 과자를 하나씩 하나씩 집어먹는 얼굴에 표정은 없었다. 맨 뒷줄 창가자리의 오세준만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빙글거리고 있었고 다른 패거리들은 자기들끼리 떠들며 천박하게 낄낄대고 있었다. 버스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수십 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시내 외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난 네가 두렵다. 유현아."



두 번째 휴게소를 지나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는 버스 안은 차츰 수학여행 특유의 소란함을 되찾고 있었다. 맨 뒤에서 오세준들이 폼을 잡던 말던 사회자를 자청한 아이가 마이크를 잡았고 한 명, 두 명 분위기에 편승해 장기자랑이나 개그가 펼쳐지고 있었다. 오세준 패거리라고 해서 마냥 폼만 잡는 건 아니라서 반의 분위기 메이커로서 활약하는 임경철 같은 녀석은 다른 애들하고 곧 잘 어울리곤 했다.



어느 정도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꺼낸 제하의 말은 유현 외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줄곧 한마디도 안 하던 제하가 차창을 바라보며 꺼낸 말에 눈을 감고 있던 유현이 그제야 제하를 바라본다. 제하는 유현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슬픈 눈으로 창 밖만 보고 있다.



"하지만 윤승호는 더 두려워."



승호는 환하게 웃으며 사회자의 무림 개그쇼를 보고 있었다. 거의 두 달 만에 보는 그 천진한 표정은 1학기 때와 하등 다를 바가 없어서 유현의 가슴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른다. 찌푸린 인상을 피면서 진유현은 쓰게 웃었다.



"나도 저 녀석에 관한 거라면 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태연한 걸 보니 확실히 무서운 놈이긴 하군."



자조 섞인 진유현의 미소를 흘끗 보던 제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과 핼쑥한 얼굴이 10년은 더 늙어보인다.



"너는....왜 그렇게 밖에 못하는 거냐....너는...사실 쟤를..."


"쟤를...그 다음엔?"



말을 가로막듯 유현이 웃으며 반문해 온다. 한 꺼풀 가면이라도 쓴 것 같이 웃는 얼굴에 제하는 처연한 표정을 띤다.



"너, 크게 벌 받을 거야."


"나도 이제까지 내가 멀쩡한 것이 신기하긴 해."



제하는 미간을 찌푸렸다.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려는 듯 다시 눈을 감고 팔짱을 끼는 유현을 보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가 윤승호를 무서워하는 건 저 녀석의 알 수 없는 붉은 에너지 때문이야."



제하는 작게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버스가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점 경사가 가파르게 변하는 도로를 달리며 운전자는 아이들에게 안전띠를 맬 것을 당부했다. 처음 분위기는 나빴지만 어쨌든 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 가는 수학여행이었다.아이들은 흥분과 설레임으로 창 밖을 바라보거나 농담을 주고 받았으며 그 중에는 안전띠를 풀고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다가 담임의 호통을 듣고 쥐죽은 듯 자리에 앉아버린 학생도 있었다.



승호는 예감이 나빴다. 버스는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 위에 지어진 2차선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차체가 다소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무시한 채 아이들은 버스의 움직임에 균형이 흔들리면서도 아슬아슬하게 팔걸이에 걸터앉아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었다. 경사가 급하고 커브가 많은 고갯길의 도로라서 담임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제지 하느라 피곤이 쌓여갔다.



창 밖으로 [속도를 줄이시오]나 [사고 다발지역]이라고 표기된 팻말들이 뒤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운전기사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앞으로 15분 남짓. 아찔하던 절벽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면서 목적지가 가까워 지고 있었다. 승호는 괜히 나빠지는 기분을 억누르며 주위를 연신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한도훈은 이어폰을 꽂은 채 눈을 감고 있었고 오세준 패거리들은 얌전히 자신들의 자리에서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다. 가장 신경 쓰이는 진유현과 김제하는 대판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도 없다. 김제하는 창 밖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고 진유현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아까까지 들떠 있던 기분이 거짓말 같다. 무언가에 홀린 듯 굉장히 불안했다.



이 여행, 처음부터 오는 게 아니었다. 기세 좋게 진유현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어버린다고 장담하긴 했지만 약자 혼자만의 원맨쇼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엔 이 불안감이 진유현과 2박3일을 보내야 한다는 것에서 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다. 이건 좀 더 원초적인 공포였다. '싫다.''싫어.'승호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민태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어, 승호야 어디 안 좋아? 멀미할 거 같애?"



양 어깨를 끌어 안으며 달달 떠는 승호를 보고 민태가 얼른 검은 비닐 봉지를 꺼낸다. 승호의 동공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확대되었다. '안돼.' '더 이상 앞으로 가선 안돼!!' ---빠앙 급하게 휘어진 도로의 반대편에서 거대한 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운전기사 아저씨의 다급한 비명과 함께 버스가 급회전했고 2차선 도로의 바깥쪽을 달리고 있던 버스는 그대로 가드레일을 들이 받고 튀어나가 야트막한 낭떠러지를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비명소리와 함께 세상이 회전했다. 순간 승호는 온 세상이 새빨간 핏빛으로 변하는 환각을 보았다. 그것으로 기억은 끝이었다.



또 그 꿈이다. 붉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그런 꿈. 그리고 나는 그 바다 위를 한 없이 날고 있었다. 직접 하늘을 나는 생소한 느낌이 왠지 기분 좋아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목적도 없이 비행을 계속했다. 한참을 날다가 조금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 때쯤 저 멀리에 자그마한 바위가 비죽이 수면위로 튀어 나와 있는 것이 보였다. 아, 그 바위다. 언제나 내가 앉아있던 그 바위야...왠지 반가움을 느끼며 바위를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까워 질 수록 바위는 점점 커졌고 내가 바위라고 생각 했던 것이 하나의 거대한 섬이라는 것을 알았다. 얼마나 멀리 있었는지 섬은 아무리 열심히 날아가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나저나 피곤하다...빨리 쉬고 싶은데...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쑤셔왔고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은 것 같지만 다행히 어디 크게 부러지거나 출혈이 심한 게 아닌걸 보면 큰 상처는 없나 보다. 그동안 잠을 설쳤더니 이 기회에 아주 푹 잔 것 같다.



그런 자신이 조금 어이없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 속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공기는 다소 불쾌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본 나는 소름 끼치는 느낌을 받으며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습한 안개만이 자욱할 뿐 버스도 반 아이들도 아무것도 없었다.혹시 버스에서 나만 튕겨 나온 걸까. 하지만 그랬다면 내게 상처가 없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위를 뛰어다니며 잘 보이지 않는 시야를 헤치고 미친 듯이 다른 아이들을 찾아 보았다. 아무리 안개가 짙다 하지만 앞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님에도 내 눈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사고 난 파편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혹시 내가 너무 많이 자버린 걸까. 이런! 대체 얼마나 퍼잔 거야! 황급히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지만 시계는 금이 간 채 사고 난 당시의 시간에서 멈춰 있었다.



"설마...다들 나를 버리고 간 건 아니겠지..."



설마...아니야,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진유현이 무슨 조치를 취했다면? 오싹하는 한기가 허리에서부터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에이...아무리 진유현이라도 그런 상황에서..."



하지만 어쩌면...진유현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나를 숲속에 던져버리고 갈 인간일지도 모른다. 유능한 반장의 모습과 오세준 패거리들을 조종하는 이중적 모습을 가진 녀석이 정말로 맘을 먹고 나를 버리고 갈 생각이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른들과 구급대원들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도와주는 척하면서....



아니야 아니야....아무리 녀석이 대단하다 해도 그 큰 사고에 상처하나 입지 않을 리 없다. 자기 몸 챙기기 바쁠 상황에 무슨....그러나 나는 곧 소름 끼치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큰 사고가 있었지만 진유현이 별 상처를 입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은 같이 사고를 당한 내가 무사하다는 사실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에 전신이 떨려왔다. 나는...정말로 버려진 건가?



숲속을 미친 듯이 헤집고 다녔다.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뛰어 다녔다. 숲의 나뭇가지에 긁혀 생채기가 나고 넘어져 무릎이 까졌지만 그런 것에 연연할 여유가 없었다.아무도 없는 숲속의 적막감이 나를 미칠듯한 기분으로 몰아넣었다.



"아무도 없어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선생님!!! 1학년 1반!!! 아무도 내 소리 안 들려!!!!!"


"정민태! 김형석! 안진영!!!"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내가 알고 있는 반 애들 이름을 외치며 끝에는 오세준 패거리와 진유현에 대한 욕설로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진유현 이 나쁜 자식아!! 야 이자식아!! 어딨어!! 진유현!!! 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무서워서 죽을 것 같다. 어딘가에서 진유현이 비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녀석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숲은 고요했다. 미치도록 고요하고 음습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울부짖으며 숲을 헤치던 나는 전신이 상처와 흙먼지투성이었다. 바지와 셔츠에는 풀물이 들었고 얼굴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지저분했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어머니.....아버지......"



어머니의 차분하고 고운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세련되면서도 인자한 얼굴이 떠올랐다. 평소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못해본 부모님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미치도록 보고 싶은 건 두 분의 얼굴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한참을 뛰고 울고 소리지르던 터에 체력도 떨어지면서 더 이상 패닉에 빠질 기력도 없었던 탓이리라. 습한 이끼에 엉덩이가 축축하게 젖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멍하니 안개 낀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길이 잘 보이지 않는 걸까. 여기는 어디쯤일까.



아무리 진유현이 나를 숲속에 버려뒀다 하더라도 그 수라장에서 그리 멀리 오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실종자 명단에 내 이름이 올라 갔을테고...지금쯤 구조대원들이 날 찾아 산을 뒤집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어디서도 사람을 찾는 외침은 들리지 않고 오싹하리만치 고요한 안개만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해....



"우웨엑! 웨엑! 으웩!!"



굶주림에 못 이겨 풀 더미에 매달린 열매 비슷한 것을 먹고 15분도 안되서였다.엄청 시고 떫어서 먹기 괴로웠던 열매였는데 하도 배가 고파서 몇 알 따먹었더니 점점 속이 쓰려 오기 시작했고 결국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을 느끼며 냇가에 고개를 처박은 채 누런 신물만 토해냈다.악취를 풍기는 위액을 토해내다가 한참을 헛구역질로 눈물콧물을 쏟아낸 뒤에도 고통은 가시지 않아 그대로 배를 감싸 안고 냇가를 뒹굴었다.창자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명치끝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팠다.



"흐으으윽...흐으윽...."



끅끅대며 눈물을 흘려보냈다.숲을 헤맨 지 사흘째.풀 뿌리든 나무 등껍질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버리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어느 것이 먹을 수 있는 풀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아무거나 먹었다가 속이 뒤틀리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그래도 이번 열매는 새빨갛고 구슬처럼 투명한 게 너무 예쁘게 생겨서 먹어도 될 줄 알았는데 이제까지 덥석 입에 넣었던 다른 풀들보다 더 고약하고 더 끔찍한 복통이 뒤따랐다.이런 식으로 가다간 먹어도 되는 풀을 찾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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