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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ppocampus]메마른바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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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마른 바다

    By Hippocampus

    보라색 구름 사이의 태양이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수평선 아래로 가라앉으려 하고 있었다. 바다는 사방을 둘러봐도 똑같은 풍경.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광활했다. 멍하니 보고 있으면 붉게 물든 하늘과 바다의 경계마저 희미해진다. 위 아래의 구별도 없고 좌우 앞뒤의 풍경도 모두 똑같아 마치 사방을 둘러싼 수평선에 갇혀버린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다만 수평선에 반쯤 걸친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만이 이 혼란스러운 공간에서 하나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을 뿐이었다.

    바다. 너무나도 넓은 바다. 그 살아있는 대지 위에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것이 하나 있었다. 이 망망대해 한 가운데서 섬도 아니요, 배도 아닌, 작은 바위 하나가 삐죽 솟아나와 있는 것이었다. 풀은 고사하고 이끼조차 끼어있지 않는 그 메마른 바위 위에 17~18세 가량의 한 소년이 한쪽 무릎을 세워 끌어안고 있었다.

    대해 위에 소년이라니, 엄청난 이질감이 들었다. 그러나 소년은 주위와의 괴리감에 아랑곳없이 무릎에 한쪽 턱을 괴고 자신의 발 아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바위는 별로 높지도, 크지도 않아서 소년이 늘어뜨린 한쪽 발은 조금만 몸을 기울이면 바다에 닿을 듯 가까웠다. 바다는 어디를 봐도 똑같은 풍경이었고 소년에게서 별 움직임은 없었다. 무엇을 그렇게 보는 것인지. 아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에 잠긴 우울한 표정의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 소년은 나였다. 나는 그렇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등을 구부린 채 하염없이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 그런데 이것은 바다가 맞는 걸까. 자세히 보면 아무리 석양에 물들었다지만 지나치게 붉다. 지나치게 선명한 다홍색, 아니, 붉은색? 진홍색?아니다. 석양에 물들어서 붉게 보이는 게 아니라 바다 자체가 붉은 것이다. 성분 또한 물이 아니다.

    물보다는 점액질의, 오히려 젤리에 가까운 점성을 띠는 이것은 엄밀히 말해 바다가 아니다. 수면은 투명한 다홍색으로 빛났고 더 깊어지면 심연 같은 진홍을 띠는 불가사의한 액체였다. 파도도 없다, 해류도 없다. 붉은빛 젤라틴 같은 그것은 단지 미약한 흐름만을 보이며 마치 바다인 양 수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상한 바다다.

    그렇다면 바위 위의 나는 이 진홍의 바다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저렇게 하염없이. 왜 저렇게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 바다 속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 시선을 따라 바위 아래 수면 속을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단지 붉은 색의 바다였지만 가만히 바라보니 그 아래에서 어떤 영상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수면에 동심원이 그려지면서 익숙한 모습이 비춰진다. 그것은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진유현의 얼굴이었다.

    "콜라 두 캔이랑 크림빵 세 개만 사와"

    "껌도 같이 사오고"

    "아, 크림빵 세 개가 아니라 네 개. 김밥도 한 줄 사와야겠다."

    윤승호는 작은 메모지에 뭔가 열심히 적더니 아이들이 내민 동전들을 받으러 손을 뻗었다. --땡그랑.땡.땡땡땡...오백 원짜리와 백 원짜리가 섞인 동전은 넉 잡아 스무 개는 넘어 보였다. 교실바닥을 시끄럽게 울리며 굴러가는 동전들을 보고 당황한 승호는 허둥대며 떨어진 동전들을 주우러 다녔다.

    "아,씨발, 뭐야 그거 하나 제대로 못 받아? 쉬는 시간 안에 못 사오면 뒈질 줄 알아."

    한 아이가 인상을 찌푸리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비웃음기가 배어 있는 목소리는 동전을 흘린 것이 고의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다. 어떤 때는 십 원짜리를 던져주며 심부름을 시킬 때도 있었으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생각한 승호는 열심히 동전만 줍고 있었다. 동전을 줍다가 문득 한 쌍의 다리가 시야를 막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경멸스럽다는 듯 내려다보는 반장 진유현의 얼굴이 보였다.

    "뭐야. 거지 같잖아."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내뱉고는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소리에 오세준과 그 패거리들이 일제히 웃는다.

    "맞아 맞아, 딱 거지네 거지."

    "기어 다니면서 돈 줍는 꼴이 꼭 병신 같다 야."

    윤승호는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시려오는 게 느껴졌다. 우물쭈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내 돈으로 사올게." 하고 황급히 교실을 나가려고 했으나 패거리 중 한 명이 못 가게 막는다.

    "새꺄 우리가 거진 줄 알아? 니 돈으로 산 거 안 먹어. 돈 줬으니까 그걸로 사오라구.씨발 쉬는 시간 다 가잖아. 빨리 하지 못해?"

    승호는 그 소리에 엉거주춤 뒤로 물러났다. 반 아이들이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도 느껴졌다. 유독 날카롭게 쳐다보는 건 김제하와 부반장. 그 둘이 빤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창피해서 죽을 거 같은데 시간은 자꾸 가고 동전들은 흩어져서 어디로 굴러 갔는지도 모른다. 매일 창피를 당하고 시도 때도 없는 구박과 조롱에 자존심은 남아 나질 않았다. 더 이상 상처 받을 자존심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너덜너덜해진 가슴은 아직도 아픔을 느낀다. 차라리 돈을 원했다면 나았을 것이다.

    진유현이 교실 내에서의 폭력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윤승호를 장난감 삼으며 놀려먹는 재미로 오세준 패거리들은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얻어 맞는 일은 없었지만 정신적인 수모는 구타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윤승호가 폭력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현은 교실 내에서의 폭력만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니까. 학교 밖으로 나가면 반장의 가식을 벗은 모습이 승호를 숨막히게 만들었다. 어디서 찾아냈는지 모를 허름한 아파트 건물 뒤편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승호의 몸은 발길질과 주먹세례를 겨우 견뎌내고 있었다.

    재건축을 앞두고 주민들이 모두 이주한 텅 빈 아파트는 곧 허물어져 새로운 건물로 지어져야 하거늘 중간에 무언가 트러블이 생겨 한동안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중이다. 때문에 유령 아파트가 된 이곳을 찾는 이들은 길을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동네의 시시껄렁한 불량배들 정도가 다였다. 그리고 가끔 오세준과 진유현에 의해 끌려온 윤승호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얻어맞는 곳이기도 했다.

    "이 새끼야! 심부름 하나 제대로 못해!3교시가 시작되고 나서 사오면 어쩌란 말야!"

    "그래, 너네 집 부자라 이거냐? 바닥에 떨어진 백 원짜리는 돈도 아니야?누가 니 돈으로 빵 먹고 싶댔어? 아 존나 재수없어! 이게 요즘 점점 기어오르려고 그러네."

    2교시째 쉬는 시간, 차마 동전을 다 주울 수 없어서 황급히 매점으로 달려가 먹거리를 사 들고 교실로 왔지만 이미 수업은 시작한 상태였다. 3교시가 끝나서야 부들거리는 손으로 간식들을 오세준에게 건네 줄 때만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길래 승호는 안심하고 있었다.오늘 하루는 그렇게 무사히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6교시가 끝나고 도살장 소 끌려가듯 억지로 이곳까지 왔을 때 나머지 수업을 빼먹은 변명을 담임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몸뚱어리의 상처는 곧 낫는다.하지만 자신이 맞고 다닌다는 사실이 선생이나 부모님께 알려지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야야, 얼굴은 건드리지마. 유현이가 얼굴 건드리면 우리부터 조진댔어."

    "씹, 까대다 보면 건드릴 수도 있지. 어떻게 면상만 피해서 까대냐? 하여간, 반장이 머리 쓰는 건 알겠는데, 때리는 우리 입장 좀 생각해 주라구"

    패거리들은 넝마조각이 되어 바닥을 뒹구는 승호를 내버려 두고 품에서 담배 한 가치씩 꺼내고 있었다.아직 학교 수업이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진유현을 기다리는 것이다.진유현이 올 때까지 멋대로 승호를 가지고 놀다가 유현이 오면 다시 승호를 괴롭히던가 그대로 저들끼리 어디론가 놀러 가거나 하기 일쑤였다.바닥에 주저앉거나 화장실 폼으로 각자 앉아 담배를 피워대는 다섯 명의 꼬락서니는 길거리 양아치나 다를 바 없었다. 덩치도 크고 발육상태도 좋아 학생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는 아이도 있다.오세준이 심심한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승호에게 다가 왔다.

    "야. 너도 피울래?"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몸은 죽은 듯이 미동도 않는다.얼굴은 건드리지 않는 다고 해도 상처 한 둘씩은 나기 마련이다. 머리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별로 대단한 건 아니라고 판단한 오세준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승호를 자꾸 건드린다.

    "무시하냐? 내 말 안 들려?"

    쳐다보기도 싫은 얼굴이 눈을 뜨자마자 능글스럽게 웃고 있었다.

    "...못...펴.."

    "헤에~ 그럼 이 기회에 펴봐."

    오세준은 자신이 피우다만 담배를 승호의 터진 입가에 갖다 대며 눈을 휘었다. 승호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주춤주춤 물러나 보았지만 등 뒤엔 아파트 건물에 막혀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이렇게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오세준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는 것은 곤욕스러웠다.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땅을 바라보았다.승호 입에 물려진 담배가 다 타들어가자 오세준은 새로운 담배를 꺼내어 승호에게 권한다. 승호가 고개를 젓자 오세준의 입가가 웃음으로 번진다.

    "직접 피우는 게 신상에 이로울텐데."

    아까 맞은 상처는 아직도 욱신거렸다. 제대로 걸어서 집에 갈 수 있을지 걱정되는 몸 상태에 오세준의 으름장은 무서웠다. 아픔 때문인지 무서워서인지는 몰라도 담배를 받는 승호의 손이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꼬리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하지만 막상 담배를 받아 들어도 승호는 머뭇거리고만 있었다.오세준은 지겹다는 듯 그런 승호를 흘끗 쳐다보더니 손에서 담배를 낚아채어 필터를 자기 입에 갖다 댄다.한숨처럼 담배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오세준의 작은 장난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승호는 고개를 돌리고 숨을 골랐다.

    담배냄새는 기분이 나빴다. 아버지가 담배연기로 거실을 한 가득 메울 때는 언제나 집안에서 싸움이 일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크게 싸운 뒤에도 집안에는 담배냄새가 가득했다.기분 나쁜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했을 즈음 오세준의 손이 승호의 턱을 붙들고 약 45도 위로 치켜 올렸다.

    "......!"

    입안 가득 담배연기가 번졌다.커다랗게 뜬 승호의 눈에 오세준의 웃고 있는 눈이 보였다.주변의 야유와 환호성이 멀리 꿈결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쿨럭! 쿨럭! 쿨럭!"

    "직접 피우는 게 이롭다고 했잖아."

    담배를 끼운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며 오세준이 말했다. 승호는 오세준이 자신의 입에 담배연기를 불어 넣었다는 사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뜬 채 입을 막고 바라보기만 했다.

    "여어~ 나만 빼놓고 재밌게 놀기야?"

    진유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세준은 고개를 돌리더니 싱긋 웃으며 "왔냐?" 하고 반겼다. 수업을 끝내고 과외가 있다며 일찍 학교를 빠져나온 진유현은 단정한 교복차림 그대로였다. 넥타이도 없고 지정된 와이셔츠가 아닌 각각의 티셔츠를 입은 오세준 패거리들하고는 대조된다.

    "오세준. 이 멍청이한테 친히 키스까지 베푸시는 거냐?"

    기분이 나쁜지 미간을 찌푸리는 유현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비아냥거렸다. 비슷한 체급의 오세준이 껄렁거리며 다가가 담배 한 개피를 진유현에게 물려준다. 불까지 붙여주는 폼이 매우 익숙해보였다.

    "키스라니. 이 미련한 도련님이 담배 피우길 거절하시길래 몸소 담배연기를 넣어 준 것뿐이지."

    "하지만 저 도련님은 첫 키스 당한 중딩처럼 입 틀어 막고 우는 걸?"

    진유현과 오세준이 울고 있는 승호를 놀리던 말던 어떤 다른 애들은 "울지마 재수없어 새꺄" 하며 승호의 뒤통수를 쳐대고 있었다. 두어 명은 유현과 세준의 대화 내용이 재밌는지 귀를 쫑긋거리기도 하고 마저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며 새 담배를 찾기도 했다.

    "김제하는?"

    오세준이 유현의 등 뒤를 흘끗 바라보며 물었다.

    "제하랑 같이 여기 올 리가 없잖아. 나 대신 담임 심부름 좀 시켰어."

    "그 눈치빠른 녀석이 모를 리 없을 텐데. 그 녀석은 니가 윤승호 밟는 거 싫어하잖아. 순순히 니 말을 듣든?"

    "뭐, 담임 앞에서 부탁한 일인데 어떻게 거절하겠어? 제하한텐 미안하지만 걔랑 있으면 잔소리가 많아서 말야."

    싱글싱글 웃으며 유현이 구석에 웅크려 있는 승호에게 다가갔다.

    "어때? 내가 건드릴 자리는 남겨놨어?"

    "글쎄, 한번 확인해 봐."

    오세준은 느긋하게 팔짱을 끼며 벽에 기대었다. 진유현이 승호에게 다가가자 주변에서 승호를 면박 주던 패거리들이 쭈삣쭈삣 하며 아는 체를 한다. 진유현과 오세준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라고 하지만 오세준의 패거리들과도 그런 건 아니다. 생전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없다가 윤승호를 밟으면서 얽히게 된 인간관계였다. 어색하게 손을 흔드는 패거리들을 향해 유현도 웃음으로 대꾸하며 손 인사를 하고 발 밑에 있는 승호를 바라보았다. 반에서 중간은 되는 키였지만 저렇게 몸을 말아 놓으니 정말 작아 보였다. 결 좋은 생머리는 어느새 부석부석해졌고 몸은 처음 입학했을 때보다 마른 것 같았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흙먼지 달라붙은 여름 교복은 조만간 새로 사야 할 것 같다.

    "야, 윤승호."

    무릎 사이로 파묻은 얼굴을 머리카락을 잡아 억지로 들리게 했다.

    "청승은 혼자 다 떠는구나."

    무표정으로 말하는 유현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진유현이 괴롭히는 건 다른 애들의 몇 배나 고통스럽다. 때리는 것도, 조롱하는 것도, 한마디 한마디가 승호의 가슴을 후벼 파 놓는다.

    "아...정말 재수없어."

    쫙-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따귀를 맞았다. 그 한 방에 코피가 흘렀다.

    "얼굴은 건드리지 말라며. 맞은 티 나면 귀찮다고."

    옆에서 세준이 참견한다.

    "아. 실수. 이 자식 얼굴 보니까 갑자기 화가 나서 말이지."

    유현은 웃으며 구둣발로 승호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으악"소리를 내며 몸을 둥글게 하려는 승호의 배를 기어코 짓누르며 아파서 신음하는 그 얼굴을 표정 없이 내려다 보았다. 승호는 무서웠다. 땅바닥에 드러누워 배를 짓이기는 구둣발도 아팠지만 표정 없이 빤히 바라보는 유현의 얼굴이 더 무서웠다. 해부 당하는 개구리가 메스를 든 실험자를 올려다보는 것과 같은 끔찍한 기분이었다. 승호는 수없이 되뇌었다. 진유현은 왜 이렇게 나를 싫어할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어째서 나는 진유현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승호는 지난 밤 꿈을 떠올렸다. 시뻘겋게 물든 바다에서 수면에 비친 잠든 모습의 유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꿈이었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그 꿈은 아직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듯했다. 꿈을 꾸고 나면 늦잠에, 지각에 하루 전체가 무기력해지는 것은 자신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더해 오늘처럼 진유현과 오세준 패거리에게 걸리는 날은 최악의 하루가 된다.

    "너 귓불이 생각보다 두껍다?"

    "응? 귀, 귀?"

    아직 봄의 향기가 완연한 5월의 어느 오후였다. 교실바닥에 떨어진 지우개를 줍던 승호에게 진유현이 뜬금없이 말했다.

    "어디 봐봐. 귀 자체는 별로 안 큰데...뭐, 귓불이 두툼하면 복이 있는 거라니까 좋은 거야."

    유현은 승호의 귀를 보더니 대뜸 그렇게 말했다.

    "아. 그래? 그럼 잘 된 거네."

    "그렇지. 덕분에 이런 유능한 짝을 만났잖아. 만져봐도 돼?"

    승호는 피식 웃으며 "유능은 무슨..." 하고 장난으로 넘겼지만 귀를 만지는 유현의 손을 내치진 않았다. 아마도 4월이 다 끝날 때쯤. 진유현과 짝이 되었을 때만해도 승호는 그저 좋은 친구와 짝이 되었다고만 생각했었다. 조금은 부러워했고 조금은 멋진 녀석이라 생각하며 호감을 갖고 있던 반장이었다. 귀를 만지는 유현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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